한국은 라이프스타일 혁명 중입니다.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들이 골목길에서, 로컬에서 그리고 인터넷 공간에서 취향과 가치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변화를 주도합니다. 재미있는 일, 아름다운 일, 의미 있는 일의 창출이 라이프스타일 혁신가의 일입니다.
그동안 이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가 궁금했는데 전정환의 신간 ‘밀레니얼의 반격’이 궁금증을 단번에 해소해줍니다. 한국 라이프스타일 혁명은 밀레니얼과 영포티가 주연으로, 뉴식스티가 조연으로 참여한 공동 작품임을 깨달았습니다. 한국에서 ‘밀레니얼의 반격’이 시작된 배경을 저의 강연자료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도래
라이프스타일은 기성세대에게 익숙한 단어가 아닙니다. “재들 왜 저리지, 아직 고생을 안 해 배부른 소리 한다, 겉멋 부린다,” 이리 말합니다. 하지만 기성세대가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라이프스타일 경제는 세계적인 현상이고, 한국이 번영하려면 라이프스타일 경제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소비분야에서는 라이프스타일 단어를 자주 접합니다. 소비 트렌드를 추적하는 트렌드 보고서가 매년 수많은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발굴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신조어가 필요한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보긴, 큰 흐름은 하나입니다. 우리 사회가 탈물질주의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탈물질주의는 경쟁, 성장, 노력, 신분과 반대되는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입니다. 키워드는 개성, 다양성, 삶의 질, 행복, 윤리적 가치입니다. 개인이 조직에 구애받지 않고, 의존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사는 그런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개인주의의 무안한 확장이 탈물질주의입니다.
탈물질주의 확산함에 따라, 소비자도 모던 소비자에서 포스트모던,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 소비자는 기본적으로 모던 소비자입니다. 가격, 품질, 편리성, 다시 말해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입니다. 그중 일부는 소비를 통해 부를 과시하는 과시형 소비자입니다.
2000년대부터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차별적, 심미적 소비를 선호하는 포스트모던 소비자가 나타났습니다. 나는 좀 다른 사람과 다른 소비를 하고 싶다,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다, 그리고 물리적 품질보다는 문화적 가치와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는 소비자들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다른 소비행태가 부상합니다. 소셜적 소비 성향이라고 하는데, 소비를 통해 친구를 만나고, 연결하고 유대관계를 맺는 그런 소비자입니다. 어떻게 보면 가게를 중심으로 생산자-상인-소비자가 취향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자기가 아는 사람이 만든 제품,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만든 상품을 선호한다면 바로 소셜적, 연대적 소비자입니다. 소비를 통해서 사회와 소통하고 자기 이상을 실현하려는 소비자를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소비는 주로 일본을 통해 수입합니다. 일본 소비 트렌드는 고도 성장기를 지나면서 크게 변합니다. 고도 성장기에는 일본에서도 모던 소비자가 주류를 이루었는데 안정 성장기, 잃어버린 20년, 현재로 가면서 차별적, 심미적,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로 바뀝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는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실 미래를 움직이는 트렌드는 크게 기술과 문화 트렌드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우리나라가 유독 기술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4차 산업 혁명을 이렇게 걱정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가 유일할 것입니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이 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저는 4차 산업혁명은 미국이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발하는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연 그 세상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인지를 질문하지 않고 그냥 미국 기술을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미국이 원하는 세상을 뭘까요? 이는 미국의 가치 변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미국은 1970년대 이후 가장 먼저 탈물질주의를 수용하고 이에 따라 산업과 경제 체질을 개편합니다. 결국, 개인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조직이나 집단의 의존하지 않고 개인이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기술이 4차 산업혁명 기술입니다.
저도 탈물질주의를 지지하는 편이라 미국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원하는 세상이 모두 우리에게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개인이 아닌, 가족 중심의 세상을 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우리에게 개인보다는 가족이 중요하다면, 가족 중심 사회를 건설할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맞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사회를 원한다면 공동체를 위협하는 기술은 경계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유차량 서비스인 우버를 혁신 기업이라 생각하는데, 도시 공동체 관점에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도시가 걷고 싶은 도시라면 보행길과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이 우버 서비스보다 더 중요합니다. 걷기 편하고 대중교통이 잘되어 있는 도시에서 과연 우버 같은 서비스가 필요할까요? 오히려 우버는 편리성과 규모를 강조하는 자동차 도시에 적합한 교통수단입니다.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진원지
세계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중심지는 미국입니다. 미국의 라이프스타일 강국이 된 것은 큰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결과입니다. 미국은 1960년대 반전운동, 평화운동, 히피 운동 등 사회 전체를 뿌리째 흔든 큰 혼란을 겪습니다.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를 거부하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국도 세대 간 가치 차이를 그대로 방치하면, 미국의 1960년대와 같은 혼란기를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결국 1960년대 정신을 수용했습니다. 1970년대 시작된 이 수용 과정이 유럽, 일본 등 선진국 확산합니다. 탈물질주의 확산 과정을 연구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미국 미시간 대학의 로알드 잉글하트입니다. 5년마다 한 번씩 ‘세계 가치 조사’를 합니다. 50여 개 국가의 가치관을 두 축으로 측정합니다. X축이 생존가치-자기표현 가치입니다. 자기표현 가치가 개성, 다양성, 삶의 질을 강조하는 탈물질적 가치입니다. 생존가치는 경쟁, 성공, 신분, 노력, 조직을 강조하는 물질적 가치입니다. Y축은 전통가치-세속 합리성 가치입니다. 전통가치는 종교의 영향이 큰 가치이고, 세속 합리성 가치는 이성과 법에 근거한 사회 질서를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그림에서 보실 수 있듯이 미국을 필두로 서구사회는 생존가치에서 자기표현 가치로 이동합니다. 서구사회 전체가 탈물질주의 성향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 패턴이 다릅니다. 유럽, 특히 북유럽이 자기표현 가치, 세속 합리성 가치 모두 신장했다면, 미국은 자기표현 가치만 늘어납니다. 기독교 전통이 강한 미국 사회가 유럽보다 세속 합리성 가치를 수용하는데 소극적이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산업화도 미국에서 시작됐습니다. 나이키, 홀푸드마켓, 스타벅스, 애플 등 현재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모두 70년대 창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나이키, 홀푸드마켓, 스타벅스 모두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를 구현한 브랜드입니다.
동아시아의 라이프스타일 변화
동아시아 패턴이 흥미롭습니다. 잉글하트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은 나라에 속합니다. 1981-95년 사이 우리의 세속 합리성 가치와 자기표현 가치가 변화지 않았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세속 합리성 가치가 높은 나라입니다. Y축으로 보면 북유럽 모델에 근접했습니다. 우리나라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전통문화를 많이 정리하고, 종교도 세속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세속 합리성 가치가 늘어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표현 가치입니다. 한국의 자기표현 가치는 중국과 대만 수준, 그러니까 아직 집단주의 성격이 강한 사회로 남아있습니다.
중국은 집단주의 문화를 유지하면서, 전통문화를 수용한 특이한 사례입니다. 사회주의 실험을 하면 전통문화를 봉건 문화로 부정했기 때문에 1980년대에는 무척 세속 합리성 가치가 높았습니다. 개혁개방을 하면서 전통문화를 복원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전통문화가치가 높아진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일본이 예외적으로 북유럽 모델을 따라 보다 세속적이고, 보다 개인주의적으로 이동했습니다.
일본이 먼저 라이프스타일 경제로 전환하면서 환경산업, 고령화산업, 문화산업, 패션산업 등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개척합니다. 라이프스타일 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국 라이프스타일 소비자를 적극적으로 공략합니다. 일본 관광포스터입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일본을 더하라? 일본에서 나답게, 더 나답게?” 일본에서 자신을 찾고 해방감을 느끼라는 말인데, 한국인에게는 불쾌할 수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일본에서 자신을 찾아야 하나요? 한국이 그렇게 개인 자유와 정체성을 억압하나요?
여행 분야뿐만이 아닙니다. 콘텐츠 분야 전역에서 일본이 뜨고 있습니다. 한국이 반일 감정이 강한 나라지만, 젊은 사람들은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 책 많이 읽고 일본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고 일본으로 취업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중국어를 배우지만, 사회 나가면 일본어를 배웁니다.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경쟁력이 높다 보니, 비즈니스를 하려면 일본어가 필요합니다. 특히, 생활산업, 골목 산업, 지역산업에 관심 있는 사람, 그 분야에서 창업하려는 사람에겐 일본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세대
일본 서점 츠타야를 창업한 마스다 무네야키는 '라이프스타일을 팔다'에서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인 단카이 세대(1947-1956년생)를 '생활의 패션화'를 이룬, 한마디로 멋과 좋은 삶이 무엇인지 아는 프리미어 에이지로 부릅니다. 일본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역사는 그의 평가를 지지합니다. 1969년 꼼데 가르송, 1971년 이세이 미야케, 1974년 빔스, 1980년 무인양품, 1983년 츠타야, 1984년 유니클로가 단카이 세대가 창업한 기업이다. 일본의 세계적인 브랜드는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장인정신과 더불어 일본 전통문화의 간결함과 소박함, 일본 도시의 자연과 공동체 친화성과 개방성, 일본 애니메이션과 오타쿠 문화의 상상력에서 수월성과 차별성을 확보했습니다.
일본에 단카이 세대라면 미국에는 '침묵의 세대 The Silent Generation'(1928-1945년생)와 베이비부머 세대(1943-1960년생)가 있습니다. 침묵의 세대가 1940-1950년대 개척한 카운터 컬처의 토대 위에 베이비부머 세대가 1960년대 히피 운동, 1970년대 라이프스타일 혁신과 산업화를 주도했습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창업의 역사에서 이두 세대의 업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38년생 스튜어트 브랜드가 1968년 전지구 목록(Whole Earth Catalog)을, 1938년생 필 나이트가 1971년 나이키를, 1944년생 앨리스 워터스가 1971년 셰 파네즈를, 1955년생 스티브 잡스가 1976년 애플을, 1953년생 존 맥케이가 1980년 홀푸드마켓을, 1953년생 하워드 슐츠가 1987년 스타벅스를 창업했습니다.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세대는 누구일까요?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생)도, 386세대(1963-1968년생)도 라이프스타일 혁신의 기회를 놓쳤습니다. 트렌드 전문가 김용섭은 사운즈 한남, 피크닉 등 서울에서 밀레니얼이 열광하는 공간을 건축한 '영 포티'를 주목합니다. X세대(1970년대생)로 알려진 영 포티는 K-Pop, 골목길 등 한국의 문화산업이 태동한 1990년대 초반에 20대와 10대를 보낸 세대입니다. 서태지, 오렌지족, 클럽문화가 X세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입니다. K-Pop 산업에 대한 X세대의 기여는 두드러집니다. 1952년생 이수만이 1995년 SM을, 1972년생 박진영이 1996년 JYP를, 1969년생 양현석이 1998년 YG를, 1972년생 방시혁이 2005년 빅히트를 창업했습니다.
X세대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톱클래스 편집장김민희는남다른 밈(meme·문화 유전자)의 세대, 사회학자 김호기는 한국 최초의 개인주의 세대, 경영학자 이은형은 윗세대와 아랫세대를 모두 이해하는 포용적 세대로 평가합니다.
X세대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을 획기적으로 혁신한 세대로 기록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라이프스타일 소비를 주도한 것은 확실하지만, 광범위한 창업을 통해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라이프스타일 산업을 건설했다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X세대가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세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선진국의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 잡은 탈물질주의를 더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밀레니얼의 반격
X세대가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장을 열었다면, 이 장의 중심세력은 단연 밀레니얼입니다. 밀레니얼은 2010년 전까지는 X세대가 개척한 골목상권과 문화산업을 단순히 소비했다면, 2010년 이후에는 창업과 혁신을 통해 라이프스타일 경제를 주도합니다.
‘밀레니얼의 반격’은 밀레니얼이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현장과 인물을 설명합니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독서 클럽 스타트업 트레바리, 직장인들이 일과 병행하며 참여할 수 있는 대안대학 낯선 대학, 제주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인디 뮤지션 요조, 로컬숍 연구 잡지 ‘브로드컬리’를 발행하는 조퇴계, 외국인 디지털 노매드를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 하이브아레나, 국내 최초로 전통시장 콘텐츠를 사업화한 전통시장 도슨트 이희준 등이 라이프스타일 혁신을 주도하는 밀레니얼 창업기업과 창업가들입니다.
창업가뿐만이 아닙니다. 공공 영역과 학계에서 밀레니얼의 반격을 후원하는 응원하는 다양한 경계인도 소개합니다.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들은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축해 상호 지원과 연대를 추구합니다. 그중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네트워크가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의 ‘J-Connect Day’와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협회가 후원하는 ‘로컬 크리에이터 페스타’입니다. 이 두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경계인이 바로 ‘밀레니얼의 반격’의 저자 전정환 제주창조경제혁신 센터장입니다.
이제 전세대가 참여해야
라이프스타일 경제가 중요한이유는 4차 산업혁명 사회에서 인간이 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많은 사람들이 다르게 표현했지만,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재미있는 일, 의미 있는 일, 아름다운 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결국 라이프스타일 창출 능력입니다. 라이프스타일 경쟁력이 미래 산업을 주도한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래에는 매력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창출할 수 있는 개인, 기업, 도시, 국가가 잘살게 됩니다. 기술은 장기적으로 수렴합니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계속 창출하고, 이를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획득하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입니다.
라이프스타일 혁신은 X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한국의 모든 세대가 삶의 질을 높이는 라이프스타일 혁신에 동참해야만 21세기에 국가, 도시, 산업, 기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르주아 라이프스타일에 보다 많은 보헤미안, 히피, 보보, 힙스터, 노매드를 더해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이 서로 경쟁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한국이 라이프스타일 강국이 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