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17. 2021

사회의 비인간화를 우려하나요? 코엘료의 히피 추천합니다

한국 사람은 히피를 거의 괴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대안문화, 반문화, 저항문화 같은 단어에 대해서는 개방적인  MZ세대도, 이들 단어의 동의어로 히피를 쓰면 도망가듯이 경계한다. 한국이 언제까지 히피 운동을 기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라이프스타일 강국이 되길 원한다면, 히피 운동을 새로 시작하진 못해도 최소한 그 가치와 유산을 수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히피 운동은 어떤 운동이었을까? 방대한 1960년대 반문화 문헌을 공부하기가 어렵다면, 2018년 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자전적 소설 '히피'를 추천한다. 히피로 생활한 젊은 시절, 정확히 1970년 파울로는 세계의 중심지로 생각한 런던의 피카딜리서클과 암스테르담의 담스퀘어를 방문하는 여행을 떠난다. 무사히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지만, 우연히 담스퀘어에서 암스테르담에서 네팔의 카트만두까지 가는 히피 순례 여행의 동반자를 찾는 네덜란드 여성 카를라를 만나 예정하지 않은 '매직 버스'에 탑승한다.



소설의 플롯은 파울료와 카를라가 자신과 그리고 사랑을 찾는 과정이다. 하지만 작가는 두 주인공의 경험, 그리고 버스에 동승한 프랑스인 자크, 버스 드라이버 마이클의 수기를 통해 1960년대 유럽에서 벌어진 반문화 운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특히, 순례길 참여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순례 경유지 이스탐불을 찾아온 프랑스 통신사 기자가 자크와 대화하면서 히피 역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 필자도 이 대화에서 히피 사상의 기원을 마즈닥이라는 사람이 창시한 페르시아 종교 집단이나 고대 그리스의 키니코스학파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p256-265).


키니코스학파를 대표하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존재의 유일무이한 목적이란 불필요한 것에서 해방되어 매 순간, 매 호흡에서 기쁨을 찾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p.263).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그는 평생 집이 아닌 나무통에서 살았다고 한다. "단순해져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라고 가르친 키니코스학파 사상이 미국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나 인도의 해방자 간디와 같은 근대 사상가들을 통해 히피 운동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1960대 반문화를 연구한 다른 문헌은 반문화의 기원을 초월주의 외에 18세기와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와 사실주의에서 찾는다 (Roszak, 1968).


하지만 기성세대의 획일적 문화를 거부하며 다른 대안을 찾는 MZ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히피 사상의 기원이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비인간적인 방향으로 흐르는 하이테크 사회, 날로 심화되는 경제 불평등, 산업사회가 요구하는 획일적인 일과 커리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찾는 방법이다. 아쉽게도 코엘료의 소설도 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한국 MZ 세대가 부러워할 것이 있다면 1960년대 유럽의 풍요와 사회보장이다. 주인공 카를라가 말하듯이 1-2 세상을 등지고 돌아와도 당시 네덜란드 사회는 카를라에게 충분한 기회를 제공했다. 한마디로, 자신찾기 위한 시간과 여유를  사회였다.


필자가 부러운 것은 파엘료와 카를라의 용기와 호기심이다. 아무리 사회 환경이 우호적이어도, 영혼과 이상을 찾기 위해 사회를 잠시라도 떠나는 행동은 적지 않은 용기와 호기심이 필요하다. 이들에겐 왜 이런 도전 정신이 있었을까? 이 질문은 결국 히피의 세계관과 연결된다. 막연하나마 그들에겐 그들이 원한 세상이 있었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 강령이 있었다.

 


1960대 히피 운동의 세 축


히피는 1960년대 미국에서 처음 출현한 자연주의 저항문화다. "기성의 사회통념, 제도, 가치관을 부정하고 인간성의 회복, 자연에의 귀의(歸依)등을 강조하며 반사회적인 행동을 하면서 평화주의를 주장했다.”사회의 지배적인 문화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저항문화의 일종이다. 인간성 회복, 자연 귀의, 평화주의, 창의성, 공동체 가치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기본적으로 히피와 친화적인 사람이다.


1960년대 미국 히피 운동은 세 축으로 움직였다. 첫 번째 축이 반전, 평화, 인권, 평등을 추구한 정치운동이다. 히피 운동이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시작됐지만,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청년층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전 사회적인 운동으로 확대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 이념적으로는 "자본 대 노동이라는 구좌파적 계급론에서 벗어나 정치적 권위주의와 경제적 불평등뿐만 아니라 미시적 불평등과 일상의 권위주의, 인간 소외"를 주목한 신좌파(New Left)와 맥을 같이 한다.


두 번째 축이 쾌락주의와 신비주의다.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문화에 반발한 히피는 인간성과 감성을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마약, 음악, 섹스, 대안 종교에 심취했다. 특히, "LSD 등의 환각제를 복용한 뒤 생기는 일시적이고 강렬한 환각적 도취 상태 또는 감각체험을 말하는" 사이키델릭은 단순한 개인적 일탈을 넘어 문화운동으로 번졌다. 사이키델릭 상태나 체험을 재현한 그림, 포스터, 패션, 음악, 영화, 사진이 당시 대중문화를 휩쓸었다.


세 번째 축이 라이프스타일 운동이다. 생활 분야에서 히피가 추구하는 가치는 자연, 친환경, 자급자족, 공동체, 사회적 경제다. 반전운동, 사이키델릭, 록앤롤이 히피 운동의 전부가 아니다. 창조 커뮤니티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히피문화가 DIY와 메이커 문화다. 히피 공동체는 자급자족 경제 체제를 지탱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창의성과 기술을 강조했다. '권위적인' 기업 조직은 거부했으나 DIY, 공예, 기술을 통한 개인의 창조적인 경제 활동은 권장했다.



히피의 라이프스타일 혁명


1960년대 초 샌프란시스코 하이트 애쉬베리에 모여 대안적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 히피들은 1968년에 열린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페스티벌을 기점으로 상업화된 도시를 떠나 캘리포니아, 오리건, 콜로라도 등에서 전원 공동체를 구축한다. 전원 공동체를 이상으로 삼은 히피는 되도록이면 자연과 가까운,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주거지로 선택했다. 히피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는 자연주의와 공동체이었다. 플라스틱과 인조(Synthetic) 세계를 거부하고 자연과 교감(Commune)하며 살기를 원한 히피들은 의식주 모든 영역에서 친환경적인 삶을 선호했다.


히피가 어떤 삶을 추구했는지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미니멀리즘과 슬로 라이프로 설명할 수 있다. 미니멀리즘은 “더 적은 것이 더 많다” 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심미적 원칙에 기초를 둔 예술 경향이다 (김욱동). 생활에서 미니멀리즘은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과잉 소비를 최소화하고 환경 친화적인 상품 중심으로 소비하는 문화를 말한다. 곤도 마리가 시작한 정리 수납법 열풍도 미니멀리즘의 영향력을 반영한다.


슬로 라이프는 과다한 도시의 경쟁사회를 벗어나 자연에서 자연의 템포로 천천히 사는 것을 의미한다. 슬로 라이프는 전원생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음식문화에서 슬로 라이프는 화학 첨가물이 들어간 가공 식품이 아닌 자연 발효와 숙성 음식, 집에서 직접 요리한 음식 중심의 식습관을 말한다.


생활의 지속가능성은 개인 윤리를 넘어 공동체 문화를 요구한다. 히피는 노동의 소외를 초래하는 대량 생산, 대량 소비도 거부했다. 음식과 식량을 재배했고, 생활에 필요한 도구와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자급자족 체제를 지향했다. 히피가 기존 자본주의 체제를 피해 건설한 전원 공동체는 이윤 추구와 자본 축적에 적대적이었다. 시장경제 대신 사회적 경제를 선호했으며 협동조합 형태로 살림살이를 꾸렸다.



주류로 진입한 히피의 생활운동


반문화로 시작된 히피의 생활혁명은 이제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됐다. 2017년 4월 4일 뉴욕타임스의 헤드라인 제목이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뉴욕타임스는 좋은 삶, 건강, 식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아이디어나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는 최근의 현상을 1960년대 ‘히피문화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현대인은 흔히 히피의 유산을 요가와 명상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인들이 즐겨 소비하는 그래놀라, 콤부차(홍차버섯), 아몬드 우유 등 요즘 유행하는 식품 대다수가 히피문화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유기농, 로컬푸드, DIY, 핸드 메이드, 천연 염색 등 실제로 선진국에서 주류 문화로 자리 잡은 의식주 트렌드도 그 기원을 히피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유기농의 예를 들어보자. 친환경 농업의 역사는 길지만, 유기농을 산업화한 데에는 히피 운동이 기여했다. 히피가 유기농의 주요 소비자이기도 했지만, 히피 사업가들이 협동조합과 슈퍼마켓을 창업해 유기농 유통시장을 개척했다. 미국에서도 히피 출신 사업가 존 맥케이가 1980년 홀푸드마켓을 창업하지 않았다면 유기농이 1990년대 주류 문화로 진입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로컬푸드도 서브컬처에서 주류문화로 발전하는데 히피 사업가의 역할이 컸다. 1970년대 버클리에서 프랑스 음식점 셰 파네즈(Chez Panaisse)를 창업한 앨리스 워터스가 반경 60마일 이내에서 생산된 농산품만 사용하는 로컬푸드 음식점을 표방함으로써 외식업계에서 로컬푸드 트렌드가 시작됐다. 앨리스 워터도 1960년대 히피 운동에 적극 참여한 히피 출신 사업가다.


한국에서 메이커로 알려진 DIY 운동 또한 히피 운동의 영향을 받았다. 20세기 초 주택 개선(Home Improvement) 트렌드로 시작한 DIY 문화는 1960년대의 카운터 컬처와 결합돼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으로 부상한다. 1968년 히피들의 생활 가이드로 시작된 잡지 <전지구 목록 The Whole Earth Catalog>이 DIY 운동을 확산하는 중요한 매체가 된다.


히피문화의 영향이 의식주 생활문화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하이테크 산업, 캘리포니아의 라이프스타일 산업도 히피문화가 영향을 미친 산업이다. 애플, 홀푸드마켓, 벤 앤 제리 등은 히피가 직접 창업한 기업이다. 애플은 "다르게 생각하자(Think Different)", 홀푸드마켓은 "경영하며 공헌하자(Balance Business with Social Impact)" 캠페인을 통해 수익과 이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기업 문화를 강조한다.


몇몇 기업인의 사례로만 히피 자본주의를 논하는 것은 히피문화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하는 일이다.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 존 마코프(John Markoff)는 2006년 저서 '도마우스가 한 말(What the Dormouse Said)'에서 PC (Personal Computer) 산업이 히피문화에 기반해 발전했다고 주장한다. IBM, DEC 등 기존 미국 동부 메인프레임 컴퓨터 산업과 비교할 때, PC 산업은 태생적으로 저항적 성격을 지닌다. 메인프레임 컴퓨터가 대기업의 권력을 상징한다면, 개인이 독립적으로 정보를 보관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PC는 자유와 탈권력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항 정신과 맞닿아 있는 PC 산업이 그 문화의 중심지였던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히피문화 산업화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한 분야가 공유경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하지 않고 필요에 의해 서로 공유하는 활동을 의미하는 공유경제도 과소비를 줄이고 합리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생활을 추구한 히피 운동에서 유래한다. 공유경제의 원조는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커뮤니티 WELL(Whole Earth Lectronic Link)을 창업한 사람이 바로 전지구 목록을 출판하고 PC 콘셉트를 이론화한 히피 운동 지도자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다. 인터넷이 세상에 등장하기 전인 1985년에 그는 온라인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한 것이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IT기술의 발전은 개인 대 개인과의 거래를 편리하게 만들어 히피가 꿈꾸던 공유경제의 활성화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히피문화가 하이테크 산업에 미친 영향이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되는 것은 아니다. 창업자 영웅주의가 히피 자본주의가 초래한 폐해 중의 하나다. 창업자를 영웅으로 대우하는 문화로 인해 실리콘밸리의 많은 기업이 창업자의 독선과 권위주의로 어려움을 겪는다. 기업을 통해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하는 히피 창업가가 이런 영웅주의에 빠지기 쉽다.



공동체주의가 히피가 제안하는 대안일까?


히피의 전원 공동체 생활이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비현실적인 일탈에 불과할까? 많은 히피가 전원 공동체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대부분의 전원 공동체가 실패했다고 해서 전원 공동체 운동이 중단된 것은 아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을 공동체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더 나아가 공동체 실험이 도시 단위로 확산되고 있다. '힙한 생활 혁명'의 저자 사쿠마 유미코는 포틀랜드, 베를린, 브루클린 등 최근 생활 혁명을 주도하는 도시는 공동체를 통한 지역 생산과 지역 소비, 필요한 것은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는 DIY 정신, 소상공인 창업을 통한 독립적인 경제 활동을 지향한다고 설명한다. 생활혁명을 선도하는 도시가 히피의 전원 공동체 정신을 도시 단위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히피가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공동체 중심의 라이프스타일은 저성장과 고령화로 수축하고, 기후변화와 대기오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야 하는 선진국 사회에서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미래에도 라이프스타일과 생활문화 혁신에 대한 욕구가 계속 증가한다면, 자연과 공동체 기반의 히피 라이프스타일은 많은 사람에서 매력적인 대안으로 남을 것이다.




*히피 정의와 역사의 출처는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2020)입니다.

이전 04화 라이프스타일 혁신가들이 몰려온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