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란 단어는 1930년대 ‘여성 재즈 댄서’를 지칭하는 낱말로 처음 사용된다. 1940년대에 들어오면 이 단어의 의미가 ‘흑인 재즈 음악을 좋아하는 백인 중산층 젊은이들’로 확대된다. 1940년대 힙스터가 흑인 문화를 좋아하는 청년 중심의 하위문화였다면, 현대 힙스터는 좀 더 주류에 가깝고 독립 상점, 로컬 비즈니스, 로컬푸드 등의 새로운 산업을 개척한 소상공인이다.
힙스터와 다른 반문화의 가장 큰 차이는 창업 친화성이다. 힙스터도 다른 반문화와 같이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에 대해 적대적이지만, 집단주의를 기피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 좋아하는 일을 혼자 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은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1인 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이다.
힙스터는 또한 미래의 대안문화와 대안산업을 주도할 위치에 서있다. 역설적으로 가장 개인주의적인 힙스터가 다른 반문화보다 먼저 경제적인 독립을 성취했다.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로컬 경제, 도시문화와 도시산업을 개척하는 힙스터가 부르주아를 견제하고 보완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세력이다.
지구적 위기가 힙스터 문화의 확산을 촉발
현대 힙스터는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 브루클린과 포틀랜드 중심으로 출현한다. 1990년대까지 이들 도시는 근처에 위치한 중심 도시에 문화적으로 의존했다. 이들을 압도한 도시는 각각 맨해튼과 시애틀이었다. 중심 도시에 대해 일종의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도시였던 만큼 새로운 문화로 차별화하려는 열망도 그만큼 컸다. 먼저 힙스터 문화가 자리 잡은 곳은 브루클린이다. 브루클린에서는 이미 2003년에 힙스터 핸드북(The Hispter Handbook)이 출판될 정도로 힙스터가 새로운 지역 문화로 각광을 받는다. 주류 언론이 힙스터를 공인한 시기는 2000년대 후반이다. 2009년 7월 타임지는 힙스터 특집을 발행한다.
포틀랜드도 1980년대 말부터 커피, 유기농, 베이커리 등 독립 가게 중심의 상권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당시 ‘힙스터’ 가게들이 모인 곳은 NW 포틀랜드와 호손 거리였다. 포틀랜드는 2011년 시작된 드라마 포틀랜디아의 방영으로 힙스터 도시 이미지가 각인된다. 포틀랜드 문화를 풍자한 이 드라마의 첫 장면의 제목이 "90년대 꿈이 포틀랜드에선 살아있다 The Dream of the 90s is Alive in Portland"다. 여기서 1990년대는 조지 W. 부시가 2000년 대선에서 당선되기 전인, 카운터 컬처가 주류 문화로 진입하기 시작하고 그런지(Grunge) 뮤직과 룩이 지배하던 시대다.
2000년대 중반 포틀랜드와 브루클린 중심으로 형성된 힙스터 문화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된다 (사쿠마 유미코, 힙한 생활 혁명).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자본주의 체제에 대해 회의를 느낀 미국 젊은이들은 삶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편리하고 화려하지만 낭비적인 소비보다는 자신이 진짜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거나 아니면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직접 만든 상품을 소비하길 원한다. 물건이 생산되는 과정을 배우거나 직접 체험하는 데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 미국과 동일한 가치 변화를 경험한다. 전통적으로 자연주의와 공동체주의가 강했던 일본이 더욱 환경과 공동체 친화적인 삶을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변화를 주도한 세력이 일본의 힙스터다. 지역으로 돌아간 일본 힙스터들이 일본 전역에서 지역을 재생하고 지역 브랜드를 개발한다. 대기업도 탈물질주의 트렌드에 동참했다. 무인양품, 유나이티드 애로우스, 요지 야마모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의 미니멀리즘 브랜드가 2010년대 일본에서 급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0년대는 미국과 일본의 힙스터 문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시기다. 한국에도 상륙했고 성수동, 을지로, 대현동 등에서 일반 골목상권과 다른, 배타적이고 숨겨진 공간으로 구성된 새로운 유형의 상권을 개척한다. 2010년대 중반까지 서울의 골목상권에서 활동하던 로컬 크리에이터가 한국의 1세대 '힙스터'라면, 그 후 미국 힙스터의 영향을 받은 로컬 크리에이터가 2세대 힙스터라고 말할 수 있다. 미국의 힙스터 문화가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에 시작된 골목상권과 결합해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역동성을 발휘한다.
그 결과 한국에 많은 힙스터 지역이 자리 잡았다. 세계의 힙스터 도시 순위에도 한국 도시가 곧잘 등장한다. 홍대, 이태원, 을지로, 성수동은 세계적인 힙스터 성지다. 2017년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Telegraph)는 홍대를 세계 2위의 힙스터 지역으로 소개했다. 미국의 여행 잡지 타임아웃(TimeOut)이 2018년 선정한 세계 50대 쿨한(Coolest) 동네에 을지로가 당당히 2위에 올랐다.
힙스터와 히피의 차이
거시적 관점에서 힙스터는 1960년대 히피의 후손이다. 둘 다 자신의 시대를 대표하는 탈물질주의 중심의 저항문화다. 하지만 히피와 힙스터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정체성이 뚜렷한 히피와 달리 힙스터의 힙스터 정체성은 모호하다. 히피가 스스로를 히피로 부른다면, 힙스터는 본인을 힙스터로 부르길 거부한다. 히피 사이에 히피의 의미에 대한 합의가 존재한다면, 힙스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논쟁 중이다.
사회 개혁에 대해서도 차이를 보인다. 힙스터가 개인 취향과 차별성에 몰입한다면 히피는 사회 개혁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 유토피아 건설, 평화 정착, 비폭력, 인종 평등 등 히피가 추구한 가치는 힙스터의 관심사가 아니다. 힙스터는 주류사회에 대해서 상대적으로 온건한 자세를 취한다. 히피가 주류사회를 배격했다면 힙스터는 주류사회와의 공존을 모색한다.
생활 문화의 차이로는 음식문화를 들 수 있다. 히피가 간단하고 건강한 음식으로 만족했다면 힙스터는 다양한 식재료로 요리를 하길 좋아하는 미식가다. 유기농, 글루텐 프리(Gluten Free), 동물 인권 등 식자재 생산 과정의 윤리에 대해서도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보인다. 예술에 있어서도 힙스터가 미니멀리즘을 선호한다면 히피는 사이키델릭 등 혼미할 정도로 화려하고 원색적인 디자인을 좋아한다. 선호하는 주거 환경도 다르다. 히피가 자연 친화적인 공동체를 이상향으로 추구하지만, 힙스터가 선호하는 지역은 도시다. 히피는 자연 공동체에서 의도적으로 가난하게 살려고 노력한다면 힙스터는 가난을 일종의 스타일로 소비한다.
힙스터와 히피의 가장 큰 차이는 직업이다. 히피가 직업을 거부했다면, 힙스터는 기업가를 선택했다. 1968년 이후 자연으로 돌아가 자본주의와 결별한 히피와 달리 힙스터는 자본주의의 중심지인 도시에서 둥지를 튼다. 히피가 기업의 거부로 저항했다면, 힙스터는 창업과 기업가 정신으로 저항한다.
힙스터의 기업가 정신
소상공인 창업에 적극적인 힙스터는 문화를 창출할 수 있는 지역에서 모여 사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힙스터 지역에는 힙스터가 창업한 업종이 일종의 클러스터를 형성한다. 독립서점, 수제 맥주, 스페셜티 커피, 레코드 가게, 비건 음식점, 타투 스튜디오 등 힙스터들이 개척한 새로운 도시산업이다. 2018년 이삿짐 운송 회사 무브허브(Movehub)는 인구 대비 힙스터 가게의 수를 기준으로 미국과 세계의 힙스터 도시 순위를 발표했다. 그만큼 미국에서는 힙스터 집적이 도시문화뿐 아니라 삶의 질, 도시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인식된다.
힙스터의 기업가 정신 또한 계속 활발하다. 힙스터는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내놓는데, 초기 힙스터의 트레이드마크는 스페셜티 커피, 다이브 바, 레트로, 지속가능성, 글루텐 프리, 핸드메이드, 빈티지이었다. 2000년경에는 그다음으로 픽시, 타투, 턱수염 트렌드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뜨개질, 도시 양봉, 박제술, 페도라(중절모), 책 디자인과 제책이 힙스터 문화를 주도한다.
힙스터의 미래에 대해서는 긍정론과 비관론이 엇갈린다. 힙스터에 비판적인 사람은 크게 힙스터 문화의 빈곤과 모순성을 지적한다. 힙스터는 히피, 펑크, 그런지 등 과거 하위문화를 차용해 상업적으로 활용하지만 정작 자신만의 독창적인 문화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또한, 힙스터가 지나치게 새로운 것과 다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유형의 획일성을 조장한다고 비판한다. 힙스터와 달리 히피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히피가 자신이 원한 세상을 순수하게 추구했던 것도 인기 부상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에 기반한 힙스터의 자생력을 무시할 수 없다. 힙스터는 지속적으로 새로운 유행과 문화를 창출하며, 다른 반문화와 달리 이를 사업화한다. 1960년대 히피가 이상주의에 치우쳐 단명했다면 힙스터는 자생적인 경제적 기반을 구축해 지속적으로 문화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했다. 장기적으로 보면 힙스터의 생존력이 더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산업적으로도 힙스터가 새로운 소상공인과 리테일 산업의 주축이 될 수 있다.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고 온라인 쇼핑이 대량 생산 리테일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 리테일은 기계가 제공할 수 없는 경험과 감성을 제공해야 생존할 수 있다. 현재로선 인간의 감성에 어필하는 가치를 이해하고 예술가적 감수성이 뛰어난 힙스터 사업가들이 미래 경제가 요구하는 하이 터치(High Touch) 산업을 개척할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거하고 있다. 적어도 오프라인 상권 분야에서는 힙스터와 같은 반문화가 경제를 살린다는 주장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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