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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Aug 25. 2020

나다움의 경제학

MZ세대가 가장 고민하는 문제 중 하나가 나다움이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기성세대 문화로부터 자신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자기다움의 추구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다. 굳이 매슬로의 욕구단계 이론을 인용하지 않아도, 물질적 욕구를 충족한 인간이 그다음 자아실현을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기성세대다. 기성세대는 자기다움으로 ‘저항’하는 청년세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들을 훈계할지 아니면 도와줘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부질없는 고민일지 모른다.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기성세대는 결국 미래세대의 요구를 수용할 것이다. 수용의 방법이 관건인데, 필자는 창업 생태계 구축을 제안한다. 자기다움에 대한 욕구를 창업 에너지로 돌리는 것이다.

 

나다움을 추구하는 청년들의 창업 활동이 활발한 분야가 로컬이다. 신간 ‘슬기로운 뉴로컬생활’이 소개한 로컬 창업가들은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지역에 정착했다고 대답한다. 자기다움의 실현이 로컬과 로컬 비즈니스를 선택한 이유다.

 

밀레니얼 세대는 로컬을 기성세대 문화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간으로 여긴다. 로컬에 비해 서울과 대도시는 나다움을 억제하는 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만든 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 다른 사람이 계획한 미래에서 벗어나 온전히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이런 로컬 창업가는 세계관도 다르다. 밀레니얼 문화를 분석한 ‘밀레니엄의 반격’이 설명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정체성이다.

 

“바로 이들의 일, 삶, 지역에 대한 태도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돈을 번다. 돈을 벌기 위해서만 지역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닮은 지역과 함께 행복한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돈을 벌고자 한다. 그래서 이들은 밀레니얼의 지역 개척자가 된다.”

 

따지고 보면 기업가의 자기다움은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창업자의 철학과 가치관은 기업 이념과 기업 문화를 통해 기업 구성원의 행동과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기업 자체가 창업자가 하고 싶은 일을 구현한 사업 모델이다.

 

지금 다른 것이 있다면 나다움의 상대적 중요성이다. 신간 ‘다움, 연결, 그리고 한 명‘이 설명한 대로, 마케팅에서 강조하는 기업 정체성이 나음에서 다름, 다름에서 다움으로 바뀌고 있다. 현대 경제에서 다움이 중요해진 이유는 소비자의 요구다. 밀레니얼 소비자는 진정으로 자신의 가치에 충실하고 자신의 취향을 공유하는 생산자를 원한다. 진정성이 소비자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치가 된 것이다.


좋은 사례가 아웃도어 브랜드다. 파타고니아, 스노우피크와 같이 자연주의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철학을 갖고 이를 실생활에서 실천한 경험을 소비자와 공유하는 브랜드가 ‘진짜’ 아웃도어 브랜드로 인정받는다.

 

라이프스타일과 로컬 논의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궁금할 것이다. 과연 개인의 취향과 선호가 성공적인 비즈니스가 되고, 더 나아가 공동체를 강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로컬 비즈니스를 창업한 소네하라 히사시는 ‘농촌의 역습’에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을 찾아서 그 스타일로 살아가고자 하면 주변에 있는 것이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하기 위한 자원으로 보이게 된다. 거기에서 사람이나 자원을 연결하는 활동과 조직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개인의 워크스타일,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지역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2014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상업적으로 성공한 로컬 매거진인 ‘제주 매거진 인’을 창업하고, 이를 기반으로 로컬 편집숍, 로컬푸드, 로컬 제조업 등 다양한 로컬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고선영 재주상회 대표의 철학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의 가치관과 취향이 일로 연결되면, 그 일들이 공간으로, 제품과 서비스로 만들어지고, 공간과 제품은 브랜드가 되어 지역을 만들며, 지역은 다시 사람을 만든다.”

 

역사적으로 보면 나다움의 추구는 탈물질주의 전환의 일환이다. 전환의 시작은 1970년대 서구 사회다.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윤리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가 성공, 경쟁, 성실, 신분을 강조하는 물질주의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이르면 탈물질주의가 주류문화로 자리 잡는다.

 

한국은 탈물질주의 전환이 더딘 국가로 알려져 있다. 소득 증가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와 탈물질주의가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매년 발표되는 트렌드 리포트가 탈물질주의로의 진화를 기록한다.

 

한국 탈물질주의의 전망은 밝다. 나다움과 로컬에서 싹튼 라이프스타일 창업이 한국을 세계적인 생활산업을 보유한 라이프스타일 강국으로 이끌 것이다. 단, 기성세대와 밀레니얼 세대가 함께 탈물질주의를 소비문화에서 생산문화로 승화해 광범위한 창업으로 이어가야 가능한 미래다.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8/27/20200827048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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