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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May 28. 2021

MZ세대의 도전, 기성세대의 과제

2030 세대가 한국 정치의 중심에 진입했다. 필자의 언어로 표현하면 한국 정치에서 라이프스타일 시대가 열린 것이다. 라이프스타일로 무장한 2030 세대의 지지로 야당이 지난 4월 지방자치단체 재보궐 선거에서 압승했고, 최근 치른 야당 대표 선거에서도 이 세대를 대표하는 후보가 당선됐다.


정치학 관점에서 중요한 이슈는 2030 세대와 라이프스타일 정치의 부상으로 재편될 한국 정치 지형과 이에 따라 등장할 새로운 정치경제 시스템이다. 과연, 2030 세대가 2022년 대선에서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을까? 만약 성공한다면 한국의 정치경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2030 세대의 정치적 요구에 대한 이해다. 그들은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탈물질주의인가, 물질주의인가


2030 세대의 최근 행보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점은 4050 세대와의 분열이다. 2030 세대는 2010년대 이후 문화적으로 4050 세대, 특히 40대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X세대로 불리는 40대는 문화산업을 개척한 문화자본을 보유할 뿐 아니라 MZ세대 수준은 아닐지라도 한국에서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윤리를 중시하는 탈물질주의를 추구한 최초의 세대다.  


탈물질주의는 18세기 이후 서구 사회에서 진행된 라이프스타일 역사의 종착지다. 선진국에서 탈물질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970년대 이후 라이프스타일의 진전 방향은 개인 자유에 기반한 탈물질주의다. 탈물질주의는 개인이 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에서 가능하다. 기술도 탈물질주의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PC에서 시작된 정보화 기술은 인터넷, 스마트폰, SNS, 블록체인으로 진화하면서 개인을 더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만든다.

 

산업화 과정에서 형성된 물질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성세대와 달리 MZ세대는 서구식 탈물질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골목길, 빈티지, 미니멀리즘, 업사이클, 워라밸(워크 라이프 밸런스),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로컬 지향, 공유경제, 1인 가구 등 그들이 선호하고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이 SNS, 스마트폰, 디지털이라는 MZ 세대의 기술에서 파생되었다고 해석되기도 하나, 라이프스타일과 기술 모두 글로벌 사회에서 진행되는 탈물질주의의 연장선에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신 부상한 MZ세대 트렌드는 ‘N잡’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을 찾는 MZ세대는 한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하기보다는 여러 직업을 프리랜서로 수행하거나 직장 안에서도 고정된 일 외에 자기다움을 실현할 수 있는 독립적인 일을 하고 싶어 한다. ‘N잡러’ 부상과 관련해 기성세대가 고민해야 할 문제가 정규직의 미래다. 다수의 기성세대는 정규직만이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하지만, N잡러, 디지털 노마드, 프리랜서, 부캐, B면 등 미래 세대가 꿈꾸는 일은 엄격한 의미의 대기업 정규직과 거리가 멀다. 돌이켜보면 기성세대 본인들도 청년 시절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80년대 사회에 나온 기성세대 엘리트는 대부분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된 전문직을 선택했다.


2020년 코로나19 발생 이후 MZ세대가 주식, 부동산, 코인, 명품 등 재테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이 또한 탈물질주의의 퇴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탈물질주의의 본질은 물질적 풍요에 바탕을 둔 탈물질적 가치의 추구다. 선진국이나 한국에서 탈물질주의가 일정 수준의 소득을 얻은 후 나타나는 이유다. 최근 재테크 열풍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물질적 기반이 불안해지자 이를 확충하기 위한 노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수의 MZ세대가 재테크에 투자하면서도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윤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정, 상생, 인권 등 탈물질주의 가치를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2030 세대 요구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


예상할 수 있지만 정치권은 자신에게 편리한 방향으로 2030 세대 성향을 해석한다. 보수 야당은 2030 세대 유권자의 반란을 보수화로 해석하고 만족한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공정과 실력 논리로 2030 세대의 보수화를 유인한다. 취업, 교육, 성과급 배분에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2030 세대 유권자, 특히 남성 유권자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것이다.


2030 세대를 자신의 지지층으로 생각했던 여당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2030 세대의 불만을 부동산, 코인 정책의 실패 등 단기적인 요인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노력한다. 2030 세대의 불만을 물질적 불만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여야의 기성세대 정치인들이 물질주의로 대응하는 이유는 2030 세대의 탈물질적 욕구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집단행동을 시작한 2030 세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하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 것인가? 1960년대 미국과 유럽의 20대처럼 거리로 나갈 것인가?



한국 기성세대의 숙제


세대 갈등의 파국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성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2020 세대의 키워드는 탈물질주의, 즉 개성, 다양성, 삶의 질, 사회적 윤리(공정, 상생)다. 기성세대 지도자들이 과거처럼 물질주의와 스카이캐슬(폐쇄적 엘리트 사회)을 고집하면 세대 갈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경제정책도 전통적인 산업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아서 잘할 대기업을 위해서는 규제 완화, 기업 환경 개선을 조용히 추진하고, 대외적으로, 그러니까 비전과 정부 역량은 20대 일자리에 집중해야 한다. 미래 일자리의 핵심은 개성과 다양성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이다. 프리랜서, 프리워커, 창작자, 1인 기업, 디지털 노마드, 로컬 브랜드가 기계가 노동을 대체하는 세상에서 살 미래 세대에게 적합한 일이고 직업이다.


자유롭고 주체적인 일과 직장은 어떻게 창출할 수 있을까? 대기업과 소상공인 정책의 균형,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평평한 운동장 구축에서 시작해야 한다. 위에서 열거한, 미래 세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도 따지고 보면 모두 소상공인 업종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소상공인 정책은 아직 산업사회 사고에 머물러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소상공인을 시혜와 보호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시장 상황은 다르다. 소상공인 창업에 대한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로컬 크리에이터, 로컬벤처, 소셜벤처, 관광벤처, 사회적기업, 문화기획사, 도시재생 스타트업, 로컬 식품 브랜드, 로컬 미디어 스타트업 등 2010년 이후 다양한 유형의 소상공인 기업들이 진입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인식과는 달리 많은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와 플랫폼의 발전으로 소상공인이 브랜드가 되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이미 로컬 브랜드와 스몰 브랜드를 발굴, 해외 시장에 진출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아마존, 쇼피파이 등 글로벌 플랫폼에 입점해 성공한 소상공인 브랜드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에서도 창의적인 소상공인들이 전국 곳곳에서 콘텐츠와 감성을 제공하는 골목상권을 개척한다.


새롭게 진입한 소상공인 기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창의적인 소상공인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소상공인 정책 틀의 정비가 필요하다. 정부 부처가 개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소상공인 정책으로 통합해야 한다.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통합하기 위해서는 첫째, 중기부가 소상공인 정책을 전통 시장과 영세 소상공인 중심에서 혁신적 소상공인 중심으로 전환하고, 둘째, 소상공인 정책 부서를 중기부 내의 독립 본부나 산하의 청으로 승격시키고, 셋째,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과 상권 단위로 소상공인 생태계를 구축하고 관리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장기 비전과 컨트롤 타워 없이 파편화된 지원 시스템으로는 소상공인 창업에 대한 수요를 만족하기 어렵다.


한국의 기성세대는 더 담대해야 한다. 글로벌 트렌드이자 미래 세대의 요구인 라이프스타일 혁신을 전격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라이프스타일 혁신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미래 세대의 문화에 맞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일자리의 창출이다. 선제적 투자(소상공인과 프리랜서 산업 투자)와 공정경제 강화(소상공인의 경쟁 환경과 프리랜서의 노동조건 개선)로 2030 세대가 창업을 통해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자유롭게 추구하고 실현할 수 있는 경제와 사회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맞는 일자리 창출이 한국 기성세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다.



*2021년 6월 경제사회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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