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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0. 2021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


이 시리즈에서 필자는 상권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현재 한국에 상권관리제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쇠락 상권의 활성화를 지원하는 상권활성화 사업이다. 정부는 2002년부터 시설현대화사업, 주차환경개선사업, 특성화시장지원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전통시장과 상권을 지원한다. 2010년에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 상권활성화구역제도를 공식적인 상권관리제도로 도입했다.


상권활성화구역은 지원 대상 지역을 2010년 이전의 전통시장과 상점가에서 시장이나 상점가에 포함되지 않는 다수의 점포가 밀집한 상업지역으로 확대한 제도다. 2013년에는 지원 대상 규정을 상업지역이 100분의 50 이상 포함된 지역으로 완화해 지원 대상을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이 포함된 생활권으로 확장했다. 상권활성화구역으로 지정된 지자체는 전통시장법에 따라 상권관리기구인 상권활성화재단을 운영해야 한다.


신규 사업자를 유치를 위한 사업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 사업이 청년몰이다. 2011년 문화관광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의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청년몰 사업은 2017년 이후 중기부로 이관돼 정규 시장활성화 사업이 됐다. 전국 36개 청년몰에 672개 점포가 입점했다.


중기부 중심의 상권활성화 사업만이 아니다. 정부는 2014년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한 이후 많은 지역에서 근린재생형 도시재생을 통해 전통시장과 상점가를 지원한다.  


정부 상권활성화사업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정부의 지원으로 활력을 되찾은 전통시장이나 상권이 어디인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비판하는 청년몰의 실적도 좋지 않다. 총 672개 청년몰 입점 점포 중 2021년 8월 현재 263개가 폐업했다(조선일보, 2121/9/1).


상권활성화사업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정부 개입 방식이다. 공모에 참여한 소수의 지역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는 그 지역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전국 단위 상권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어렵다. 대부분의 상권활성화구역이 정부 지원이 끝나면 자생적인 재정 구조를 확보하는데 실패한다. 사업 내용도 문제다. 기존 상인이 주도하다 보니, 기존 상인의 민원성 요구 사항이 사업의 주를 이룬다.  


결국 상권활성화사업이 상권 콘텐츠를 개선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본질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과연 전통시장을 효율성을 강조하는 유통시장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2010년대 초반 문화관광부의 문전성시 사업에 참여한 한 문화기획자는 시장활성화 사업의 주체가 문광부에서 중기청으로 단일화되면서 활성화 방식도 문화기획과 콘텐츠에서 마케팅과 시설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장 책임자도 문화기획자에서 매니저로 변해 더 이상 자율적으로 콘텐츠를 기획할 수 없게 됐다. 이 문화기획자의 주장이 맞다면, 문화관광형시장뿐 아니라 다른 전통시장도 시장을 효율성보다는 콘텐츠(디자인, 스토리, 경험)를 제공할 수 있는 자원으로 활용하는 문화적 재생 정책이 더 적합할 수 있다.


정부는 기존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8월 지역상권법을 공포했다. 지역상권법은 기존 전통시장법이 적용되지 않은 상권, 즉 전통시장, 상점가, 골목형상점가, 상권활성화구역이 아닌 '일반 지역상권'을 지원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다다른 차이는 추진 체계다. 전통시장법에서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상권활성화재단을 통해 상권활성화구역을 지원하는데 지역상권법에서는 주민과 상인이 만든 조합을 통해 지역상권을 지원할 수 있다. 지역상권법은 그동안 지자체 조례로 추진하던 '일반 지역상권' 활성화 사업을 공식 법체계로 제도화하고, 쇠락 상권에 한정한 상권 관리 자격에 임대료가 상승한 상권을 포함한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원 대상은 임대료가 급격히 상생해 주민 협력을 통해 임대료를 관리해야 하는 지역상생구역, 자율 협력과 정부 지원을 통해 쇠퇴 상권을 활성화해야 하는 자율상권구역으로 구분한다. 지역상생구역은 임대료 인상 제한, 지방세 감면, 대수선비 융자로, 자율상권구역은 지역상생구역 특례, 온누리 상품권 가맹과 상권 특성화 사업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전통시장법, 그리고 이를 보완한 지역상권법으로 충분할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기존 상인과 임대인 중심의 정책으로는 상권 경쟁력 강화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경험이 반복된다면 지역상권법 사업도 주차장 건설, 대기업 규제 등 기존 사업자가 원하는 사업 중심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시대 상권 동향도 고려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직주락 근접 상권이 활력을 유지한다. 주택과 일자리 정책이 빠진 상권 정책만으로 상권을 살리기 어렵다. 상권의 건축과 보행 환경 또한 중요하다. 특히, 아케이드형, 단지형 전통시장은 공간적으로 골목상권과 경쟁하기 어렵다. 도시재생사업과 연계해 상권의 공간 구조를 개선해야 상권활성화사업이 성공할 수 있다.


무엇보다 상권관리시스템의 궁극적인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단순히 기존 상인의 매출을 높이는 접근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상권, 그리고 더 나아가 지속 가능한 생활권을 구축하기 어렵다. 다른 상권과의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즉 기존 기업이 브랜드가 되고 새로운 브랜드가 진입하는 로컬 브랜드 생태계의 구축이 상권관리시스템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역상권법으로 상권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정부는 사람과 돈을 모으는 골목상권과 백화점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상권관리기구 없이 성장하는 골목상권과 상권관리기구의 체계적인 개입으로 성공하는 백화점, 즉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손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상권관리 성공의 비결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관광형시장 지정 단계에만 참여한다.


<참고문헌>

한지혜, 경기도의 상권관리제도로서 상권활성화구역의 활용 방안, 경기연구원, 2018년 10월. 

류태창, 최봉문, 원도심 상권 살리기를 위한 상권활성화 제도의 초기 효과성에 대한 실증연구, 한국지역개발학회지,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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