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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Oct 06. 2021

OS가 강한 상권을 원하세요?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운영체계가 강한 상권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결국 선진국의 BID(Business Improvement District)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일까? BID란 업무개선지구 또는 비즈니스개선지구라고 불리는 상권관리제도로서 특정 상권의 상인과 주민이 지역 정부의 승인을 받아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기구다. 주로 환경미화, 안전, 마케팅, 공간 활용 등 정부가 제공할 수 없는 상권활성화 사업을 수행한다. BID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자금을 조달한다는 점이다. 주민이 추가적인 세금을 납부할 의사가 있어야 운영이 가능한 제도다.


BID의 기원은 1970년 캐나다 토론토의 블로어 웨스트 빌리지(Bloor West Village) 지역이다. 주민들이 동네 빵집에 모여 지하철 건설로 유동인구를 잃은 거리를 살리기 위해 고민하던 중 주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상권관리기구 아이디어를 고안했다. 정부가 세금을 거둬줘야 가능한 사업이기에 시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이 사업 계획을 들은 시장의 반응이 인상적이다. “정말 세금을 더 내겠다고요?”*


이렇게 시작된 캐나다 BID는 현재 81개 지역으로 늘어났다. 미국은 1974년 뉴올리언스에서 처음 도입, 현재 전국 2,000여 개의 BID를 운영한다. 거의 모든 대도시가 BID 제도를 도입했고, 뉴욕시에서만 76개가 활동한다. 상권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뉴욕 BID 예산은 작게는 몇 십만 달러에서 크게는 몇 백만 달러에 이른다. 아래 표가 BID가 활발한 미국, 영국, 일본의 제도를 설명한다. 과세를 통한 재원조달은 BID를 처음 도입한 캐나다와 미국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모델이다.**



한국도 2002년 전통시장 지원을 시작한 이후 주민과 상인 중심의 상권활성화 방식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2010년 도입된 상권활성화제도는 명시적으로 상권관리기구의 운영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상권관리기구는 상권활성화구역으로 지정된 지역의 지자체가 출연하는 법인 형태의 조직이다. 정부가 운영에 참여하지 않는 순수 민간단체인 미국과 영국의 BID와 다르다.


2021년 통과된 지역상권법은 상권관리기구의 거버넌스를 보완하기 위해 상인, 건물주, 주민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을 상권관리기구로 허용한다. 이 기구가 정부 지원 의존을 탈피해 BID 수준의 지속 가능성을 실현할지는 더 두고봐야 한다.    


BID 역사가 보여주듯이, BDI 성공의 기본 조건은 주민 참여다. 상권 활성화 사업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주민 참여 부족을 가장 큰 난관으로 지적한다. 오랫동안 지속된 중앙 중심사회에 익숙한 주민들이 지역 사회 참여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BID 전제 조건인 주민 참여가 개선된다고 해도, 도입에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만병통치약이 아니기 때문이다. BID 지역의 많은 상인과 주민이 BID를 그들의 일상과 자유를 방해한다고 비판한다. 실제 한국에서도 많은 전통시장 상인회가 민원성 사업이나 대기업 진입 규제를 요구하는 이익단체가 됐다. 기존 주민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동체 조직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계다. 상권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한 외부 인재와 기업의 유입은 기존 상인 중심의 상권관리기구에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주민의 신청을 받아 지정되는 BID는 주민이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상권관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철학을 반영한다. 탈산업화 사회에서 선별적인 상권 관리로 충분한지는 더 고민해야 한다. 소상공인 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일정 규모의 모든 상권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디자인해야 할지 모른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아 생활권이 상권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에서는 전국 단위 시스템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   


BID 시스템이 정착한 국가에서는 BID를 근본적으로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구조로 계속 발전할 것으로 전망한다. BID의 미래는 다른 오프라인의 미래와 다르지 않다. 쇼핑센터와 다운타운의 미래를 전망하는 보고서들은 한 목소리로 오프라인 상권이 창조 커뮤니티가 돼야 생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중심상가Main Street 를 지원하는 민간단체인 메인 스트리트 아메리카Main Street America 가 강조하는 키워드는 경험Experience, 로컬Local, 연결Connection, 사회적 의식Social Consciousness이다. 소도시 중심상권이 사람을 모으려면, 소매상가 성공에 필요한 활기찬 가로 활동은 기본이다. 쾌적한 공원과 거리, 행사와 축제, 팝업스토어 등 더 많은 경험, 지역사회와 공동체를 묶을 수 있는 더 강한 로컬 정체성, 소비자와 소비자, 소비자와 상인, 상인과 상인 사이의 더 다양한 연결, 환경, 에너지, 토지 이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넘어 로컬 창업, 독립기업 지원 등 더 중요한 사회적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미래 상권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를 넘어 주민과 상인이 일하고, 살고, 즐기면서 상호 작용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브랜드를 창조하는 도시가 돼야 한다.


과연 외국에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발전한 BID가 있을까? 아직 구체적인 사례를 찾지 못했다. 로컬 브랜드 생태계는 어쩌면 새롭게 상권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한국이 도전할 수 있는 목표일지 모른다. 상권을 로컬 브랜드 생태계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있으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그 의지는 건물주와 상인이 상권 공공재를 위해 세금을 더 낼 수 있는지 여부로 테스트할 수 있다.




*The Birthplace of BIAs Celebrate 40 Years, Toronto Star, April 18, 2010

** 윤주선 외, 지역관리회사와 마을재생, 건축공간연구원, 2020.12.30.

*** The Future of Retail, Main Street America, 2019.


Photo by Chris Turgeo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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