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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3. 2021

오프라인 시장의 미래

오프라인 시장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20년간 오프라인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골목상권의 부상이다. 2000년대 초 오프라인 상권은 도심, 전통시장, 근린 상권(이면, 대로변), 단지형 상권(백화점, 쇼핑몰, 할인마트) 등으로 구분됐다. 여기에 골목상권이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것이다. 홍대에서 태동해 2000년대 중반 홍대, 가로수길, 삼청동, 이태원을 거점으로 지속적으로 성장,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골목상권은 단순히 상품을 소비하는 곳이 아니다. 콘텐츠를 경험하는 ‘문화지구’다. 소비자가 창작자가 지역과 골목의 오래된 문화를 새로운 도시문화 트렌드와 접목해 만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곳이다. 홍대, 가로수길, 이태원, 성수동과 같은 1세대 골목상권은 골목산업을 기반으로 연예, 디자인, 패션, 화장품 브랜드를 배출하는 하나의 도시산업 생태계로 진화했다. 골목상권은 고즈넉한 도심 주택가뿐 아니라 문래동, 을지로, 해방촌, 만리동 등 쇠퇴한 지역에도 들어서 해당 지역을 순식간에 문화지구로 되살리기도 한다.


골목상권의 부상은 골목에 한정된 현상이 아니다.   트렌드인 ‘로컬 지향 일부다. 로컬 지향이란 동네 단위의 생활권,  로컬이 제공하는 제품  서비스와 이를 생산하는 일을 선호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골목상권이 로컬 지향을 대표하긴 하지만 상권에서만 로컬 지향 현상이 나타나진 않는다. 개성 있는 상업시설들도 로컬의 부상을 보여준다. 상권이 없거나 골목상권으로 성장하지 못한 작은 동네에 들어선 수제 맥줏집, 단지형 카페, 복합문화공간 등은 지역문화를 창조하며 비상권 지역의 로컬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로컬에 사람이 모이자 전통적인 오프라인 상권도 로컬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백화점 푸드코트, 호텔 식당가, 쇼핑몰의 동선을 골목길 형태로 디자인하고 인사동 쌈지길, 한남동 사운즈한남, 가로수길 가로골목, 성수동 성수연방 등 골목 지역에 골목형 쇼핑몰을 건설한다. 네오밸류, 태영건설과 같은 부동산 개발회사는 신도시 상가를 골목문화를 구현한 ‘라이프스타일 센터’로 개발한다.


한남동 사운즈한남 전경(출처: Instagram@sounds.hannam)


리테일 산업이 로컬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정감 가는 오래된 건물, 특색 있는 공간 때문일까? 우리가 골목길을 떠올렸을 때 연상하는 모든 요소가 중요하다. 하지만 로컬 지향 현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키워드는 다양성, 그리고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창조성이다. 사람들은 지역주민의 일상에서 배어 나온 개성과 다양성을 로컬에서 발견한다. 이는 획일적인 전통상권에선 찾을 수 없는 요소다. 사람들은 단순히 로컬이 아니라 다양하고 창조적인 ‘크리에이티브 로컬’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로컬의 핵심은 공간이 아니라 크리에이터

리테일 기업과 부동산 개발회사가 크리에이티브 로컬을 의도적으로 재현하기란 쉽지 않다. 물리적인 공간은 흉내 낼 수 있겠으나 그것에 문화를 이식하는 것은 사람의 문제다. 지역자원과 네트워크를 연결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드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있어야 가능하다.


로컬 크리에이터는 지역에서 혁신적인 사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와 지역문화를 창출하는 사람들이다. 지역으로 간 로컬 크리에이터에게 이주 동기를 물으면 공통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살고 싶은 삶을 살기 위해’ 지역에 정착했다고 대답한다. 나다움의 추구가 로컬과 로컬 비즈니스를 택한 이유다.


‘나다움’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에게 로컬은 기성세대의 문화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공간이다. 서울과 대도시, 그리고 그곳의 중심부는 나다움을 억제하는 기성문화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만든 일, 다른 사람이 원하는 삶, 다른 사람이 계획한 미래에서 벗어나 온전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한다.


또한 그들은 지역과 상생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정신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다. 대부분 개인의 자유를 찾아 지역으로 이주하지만,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일정 수준의 커뮤니티, 그들의 표현을 빌린다면 느슨한 연대를 원한다. 어떻게 보면 대도시에 남은 사람보다 공동체에 대한 욕구가 크기에 지역을 찾았을 수도 있다.


현실적인 이유도 중요하다. 독립적인 삶을 실현하려면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차별화가 필요한데, 지역과의 상생을 통해 특색 있으면서 기반이 튼튼한 비즈니스를 개발할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찾을 수 없는 경험과 상품을 찾는 여행자가 점점 늘어나는 현상도 ‘지역다움’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로컬 크리에이터가 종사하는, 그리고 선택할 수 있는 업종은 수없이 많다. 한국 로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골목상권의 로컬 크리에이터는 처음에는 커피전문점, 베이커리, 독립서점, 수제 맥줏집 등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복합문화공간, 커뮤니티 호텔, 코워킹과 코리빙, 라운지와 살롱 등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는 커뮤니티 비즈니스 성격의 업종으로 진출하고 있다. 기술과 콘텐츠가 연결되면서 로컬 비즈니스는 앞으로 미디어, 액티비티, 제조업, 이커머스 등으로까지 확장될 전망이다.


오프라인에 새로운 기회를 선사할 로컬

과연 로컬 크리에이터가 지역에 안착할 수 있을까? 기회가 온 것은 확실하다. 시대적으로 한국이 로컬로 눈을 돌려야 할 때가 됐다. 다양성과 개성을 요구하는 탈산업화 사회에서 1960년대 이후 추진한 국가산업 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2010년 이후 구조적인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주력 산업의 상황이 이를 반증한다. 과도한 세계화에 대한 반성으로 지역공동체를 강화하는 전 세계적인 추세도 한국 로컬에 새로운 기회다.


2010 이후 등장한 로컬 지향 현상은 크게 다섯 가지 형태로 진행된다.


첫째로 기성세대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귀농귀촌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7년 귀농귀촌 인구가 처음으로 50만 명을 상회했다. 그 후 성장세가 둔화했으나 코로나 시대가 촉발한 탈대도시 현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다시 성장세를 회복할 것으로 전망한다. 둘째가 2010년에 시작된 제주 이민이다. 제주 이민 현상으로 제주는 로컬과 탈서울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셋째로 동네 지향 현상을 주목할 수 있다. 슬세권(슬리퍼를 신고 활동할 수 있는 지역), 홈 어라운드 소비(집 주변 소비), 스세권(스타벅스 매장이 있는 지역) 등의 신조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제 동네 중심으로 생활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가 됐다. 동네 지향은 이를 가능하게 할 만큼 동네 상권과 인프라가 좋아졌음을 의미한다. 넷째, 장소 지향도 로컬 지향의 한 유형이다. 여행객들은 ‘내가 있는 장소가 나를 말한다’라고 말하며, 사진 찍기 좋은 핫플레이스와 포토존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고향 지향 현상이 있다. 일반적인 언론 보도와 달리, 서울과 고향에 대한 지방 청년들의 인식은 과거와 다르다. 리서치코리아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대구 출신 서울 청년의 42%가 귀향 의사를 표명했다. 서울 생활에 지쳐 귀향해 농촌 생활에 적응해 가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서울에 대한 청년들의 정서를 대변한다.


로컬 지향은 2019년에 들어서면서 언론에 공개적으로 회자되는 트렌드가 된다. 로컬 담론의 물꼬를 튼 출판물은 어반플레이의 《로컬전성시대》다. 전성시대를 선언할 정도로 로컬과 로컬 비즈니스란 단어가 대중들에게 익숙해진 것이다. 로컬은 2021년 트렌드에 대한 각종 리포트들에서도 한 장을 장식하는 중요한 트렌드가 됐다. 빅데이터를 검색했을 때 로컬과 가장 많이 연결되는 단어는 다양성이다. 한국 사회가 삶의 질을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로 나아간다면, 로컬 중심의 삶으로의 개편은 불가피하다. 친환경, 커뮤니티, 개성, 다양성 등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들이 로컬에서 실현 가능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정부도 로컬 트렌드에 부응해 2016년부터 ‘지역생활문화 청년혁신가’, 즉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2019년 중소벤처기업부는 로컬 크리에이터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지자체도 자체 예산으로 로컬 비즈니스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서울시는 ‘넥스트로컬’ 사업을 통해 서울 청년의 지역 창업을 지원한다. 앞으로는 더 많은 지자체가 독립적인 지역산업 육성을 위해 로컬 비즈니스를 지원할 것으로 전망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로컬 창업가들은 이제 로컬 크리에이터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정체성이 구체화되고 제도화되면서, <비로컬(be Local)> 같은 커뮤니티 미디어가 등장해 외부와 내부  소통도 원활하게 한다. 지역  커뮤니티도 상권, 지원기관, 코워킹 스페이스, 학교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시대정신으로 이해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의 등장도 로컬의 미래를 밝게 한다. 마쓰나가 게이코가 지적한 대로 MZ세대(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통칭)의 로컬 지향은 글로벌 현상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미국 청년, ‘잃어버린 20년’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경험한 일본 젊은이들은 더 이상 안정적인 일자리와 소득을 제공하지 못하는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대안으로 로컬에서 자신만의 생존법을 찾았다.

 

로컬 크리에이터를 위한 안내서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획자로 떠오르는 로컬 크리에이터


미래 세대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문화자원이 풍부한 지역에서 새로운 차별화와 자기표현 기회를 찾을 것이다. 문제는 로컬 크리에이터 업(業)에 대한 철학과 지식이다. 지역성과 결합된 자신만의 콘텐츠로 가치를 창출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새로운 산업으로 부상하고 관련 정보와 지식이 축적되고 있으나, 로컬 크리에이터를 체계적으로 훈련하기 위한 교재는 아직 정리돼 있지 않다.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는 사례 중심의 로컬 크리에이터 입문서다. 필자의 전작 《골목길 자본론》이 상권 단위로 로컬을 분석했다면, 이 책은 로컬에서 기회를 찾는 창업가를 위해 로컬을 활용하는 방법을 말한다. 스타트업과 스몰 비즈니스와 비교해 로컬 크리에이터의 차별성은 각 지역별로 가지고 있는 커뮤니티와 콘텐츠다. 로컬 크리에이터의 경쟁력은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이를 첨단 기술과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해 혁신적인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에서 나온다. 이 책은 로컬 비즈니스가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지역성과 콘텐츠 역량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분석 툴을 소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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