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라 비즈니스의 전형, 로컬 매거진 발행
로컬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로컬 비즈니스가 인프라 비즈니스다. 로컬 기업이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프라 비즈니스에 대한 수요도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컬 콘텐츠는 모든 로컬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인프라다. 전국적으로 로컬 기업에 로컬 콘텐츠를 제공하는 ‘로컬 매거진’ 이 늘어나는 이유다.
로컬 매거진의 중요성은 로컬 매거진 기업의 성장 과정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제주에서 ‘리얼제주 매거진〈iiin〉’과 3개의 로컬 편집숍을 운영하는 재주상회, 서울 연남동과 연희동 일대에서 공유마을 Share Village의 개념으로 7개의 복합문화공간을 개발하는 어반플레이는 흥미롭게도 로컬 매거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2014년 창간된 매거진〈iiin〉은 매호 최대 1만 부가 판매되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상업적으로 성공한 로컬 매거진이다. 어반플레이도 2017년 연남동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6개 지역의 동네 매거진을 발행했다.
동네 매거진으로 시작한 재주상회와 어반플레이는 이어서 로컬 편집숍 운영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재주상회는 제주 중문에서 인스토어, 제주 탑동에서 올리브영 매장 내의 편집숍, 서귀포 안덕면 사계리에서 사계생활 등 3개의 로컬 브랜드 편집숍을 운영한다. 매거진 구독자를 대상으로 신간 잡지와 함께 제주 굿즈를 선정해 배송하는 구독 서비스도 시작했다. 어반플레이는 연남동 연남방앗간, 연희동 연남장에서 참기름, 약과, 마늘 소금 등의 로컬 브랜드를 상시 판매하고, 수시로 유명 로컬 브랜드와 팝업 상점을 연다.
로컬 매거진 발행자가 편집숍을 운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확장이다. 로컬 매거진에서 로컬숍과 로컬 브랜드를 취재하다 보면 동네에서 좋은 브랜드를 한 곳에 모으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로컬 편집숍을 제일 잘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은 동네의 상업자원과 브랜드를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 즉 로컬 매거진 운영자다.
로컬 편집숍으로 확장이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재주상회와 어반플레이 모두 편집숍 운영을 위해 자체 브랜드를 개발한다. 편집숍을 운영하다 보면 로컬에서 부족한 상품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직접 그 상품을 개발하게 되는 것이다. 직접 생산하지 않더라도 위탁 생산의 방식으로 로컬 제조업에 진출한다.
‘로컬 매거진-로컬 편집숍-로컬 제조업’으로 이어지는 로컬 기업의 성장 과정은 로컬 산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역의 장점과 특색의 활용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로컬 브랜드를 모으고 거기에서 부족한 상품을 직접 생산하는 비즈니스 모델은 쉽게 이해할 것이다. 현재로선 로컬 매거진을 통해 로컬 콘텐츠 개발 능력을 키우는 것이 로컬 크리에이터 창업을 위한 가장 좋은 준비 과정이다.
로컬 매거진을 발행하는 경험은 자신이 사업하고자 하는 지역의 상권에 대해 다루는 개인 블로그로도 시작할 수 있다. 반드시 정식 매거진을 발행하거나 기존 매거진에서 일할 필요는 없다. 강릉 콘텐츠로 다양한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더웨이브컴퍼니도 온라인 매거진〈033〉으로 콘텐츠를 발굴하고 커뮤니티를 확장한다. 비정기적으로 로컬 창업 콘텐츠를 발행하는 <브로드컬리>, <소도시>, <로컬업>, <비로컬>도 로컬 매거진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로컬 매거진이 로컬 콘텐츠 발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질문해보자. 로컬 미디어, 지역 학교, 지역경제단체가 지역 상업자원을 제대로 연구하고 발굴한다면, 창업자가 굳이 로컬 매거진에 의존하지 않고도 로컬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산업과 경제 활동에 대해 교육받지 못한 지역 인재가 로컬 콘텐츠 개발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은 어쩌면 놀랄 일이 아니다.
현재 정규 교과과정에서 지역교육은 전무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 지역교육의 현황을 설명한《로컬에듀 》에 따르면 학생들은 초중고 12년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딱 두 번 지역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기초단체에 대해서, 4학년 때 광역단체에 대해 공부한다. 이나마도 지역교육은 보조교재로 지정됐기 때문에 실제 얼마나 교육하는지는 선생님의 재량에 달렸다.
로컬 자원으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로컬 크리에이터를 양산하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학교에서 지역교육을 강화하고, 이차적으로 로컬 브랜드와 기업에 대한 정보를 전파하는 로컬 매거진과 로컬 미디어를 지원해야 한다. 전북 완주가 2015년 개발한 마을교육과정이 전국 모든 학교에서 채택돼야 한다. 완주 마을교육과정은 마을의 전문가와 기업이 도예, 목공, 원예, 요리 등 실제 마을경제와 생활을 움직이는 기술을 직접 학생들에게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교가 다양한 기간의 마을교육과정을 운영함으로써 학교가 마을을 만나고 마을경제를 지원하며 마을에 남을 인재를 육성하게 된다. 완주에서 보듯이, 학교가 지역사회로 나와야 한다. 학교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지역경제를 살릴 수 없다.
지역교육과 더불어 로컬 매거진의 지원이 중요하다. 현재 제주 매거진〈iiin〉 외에 상업적으로 독립된 로컬 매거진은 홍대의〈스트리트 H〉, 대전의〈월간 토마토〉, 광주의〈전라도닷컴〉, 부산의〈다시부산〉, 수원〈사이다〉 정도다. 선진국처럼 지역 호텔이 로컬 매거진을 비치하게 만드는 방안도 로컬 매거진의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창조경제에서 로컬 콘텐츠의 중요성은 수없이 강조돼 왔다. 지역이나 국가 모두 문화적 특색과 정체성으로 경쟁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한국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도 다른 지역에서 살 수 없는 상품, 다른 지역에서 체험할 수 없는 경험을 요구한다. 풍부한 로컬 콘텐츠 없이는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관광산업을 육성할 수 없다.
코로나 위기 이후 로컬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동네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지역단위로 방역을 하기 때문에 동네 정보와 콘텐츠가 중요해진 것이다. 새롭게 열린 동네 경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업이 동네 주민 중고제품 직거래 서비스인 당근마켓이다. 직거래 마켓으로 시작한 당근마켓은 이제 이커머스, 마켓, 콘텐츠, SNS, 카페, 딜리버리를 망라한 동네 플랫폼으로 변신하고 있다. 네이버, GS리테일, 티몬, 페이노트 등 다른 대기업들도 동네 주민 배달, 동네 맛집 추천, 동네 상품 선물하기, 동네 시장 배송 등 다양한 동네 기반 서비스를 연이어 출시한다.
동네 플랫폼을 두고 벌이는 경쟁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당장은 위치기반 서비스에 기반한 지역 거래, 교환, 배달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궁극적인 승자는 양질의 로컬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될 것이다. 로컬 콘텐츠 플랫폼의 구축은 검색이나 정보 배치를 통해 기존 콘텐츠를 취합하는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동네 단위의 콘텐츠가 빈약해 플랫폼에 필요한 콘텐츠를 새롭게 개발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질의 로컬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가 로컬 매거진 시장에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활용해 문화, 커뮤니티, 공간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주도하는 지역경제가 미래 창조경제의 모습이다. 정부가 학교에서 지역교육을, 출판업에서 로컬 매거진을 지원하는 것이 미래 경제를 준비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