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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목길 경제학자 Sep 23. 2021

호텔 말고 마을에 ‘스테이’하세요

지역산업의 영원한 숙제는 대기업이 제공할 수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발굴하는 일이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공간의 거리가 줄어들고 공간을 넘는 커뮤니티의 결성이 쉬워지면서 지역만이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의 범위가 좁아지고 있다.


위기에 빠진 지역산업에 희망을 주는 변화가 체험 경제의 확산이다. 온라인이 주지 못하는 오프라인만의 감성과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여행 트렌드도 자연과 역사에서 지역문화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 색다른 체험과 공감을 위한 로컬 여행은 기성세대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밀레니얼 사이에선 이미 보편적이다.


로컬 여행은 SNS와 연결된 스마트 여행으로 표현할 수 있다. 로컬 여행자는 지역의 특정 관광명소를 둘러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역만의 콘텐츠를 즐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지역 곳곳의 숨겨진 공간을 발견하고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 콘텐츠를 SNS에 일상처럼 공유하며 여행한다.


현지인처럼 살고 싶어 하는 여행 수요를 만족하기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에어비앤비다. 여행자와 현지인을 연결해 현지인 주택을 숙박시설로 공급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현지 일반 호텔에서 체험할 수 없는 현지인 문화 체험을 제공한다.


로컬 여행과 현지인 체험이 여행의 대세로 부상하자 마을과 호텔산업도 대응에 나섰다. 마을에서는 전통적인 민박에서 벗어나 마을의 자원을 체계적으로 조직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운영하는 ‘마을호텔’이 등장했다.


마을 전체를 호텔로 활용하는 하나레 호텔 로비


마을호텔의 대표적인 모델이 일본 도쿄 야나카의 하나레 호텔이다. 마을의 중앙에 로비 기능을 하는 하기소를 운영하고 숙박, 목욕, 세탁소, 식당, 자전거 렌탈, 선물가게 등은 동네의 일반 업소들에 위탁한다. 서울 서교동 로컬스티치, 서촌 서촌유희, 공주 봉황재, 정선 18번가 등 한국에서도 동네에 있는 상업시설을 연결한 마을호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서 마을호텔을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 수준으로 발전시킨 곳은 공주의 문화재, 랜드마크, 생활사가 남아 있는 원도심 제민천이다. ‘마을스테이 제민천’을 건설하는 운영자들은 동네 책방을 컨시어지로, 민박과 게스트하우스를 숙박으로, 마을 가게와 식당을 호텔 식당과 선물가게로, 코워킹과 라운지를 주민과 손님과 손님과 손님을 연결하는 장소로, 갤러리, 행사, 마을 투어, 워크숍, 마을 가게 등을 로컬 문화를 체험하고 문화 창출에 참여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운영자의 철학을 들어보자.


“마을스테이란 지역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건물에서 하루를 지내고, 이름난 맛집보다는 주민들이 즐겨 찾는 동네 식당과 가게를 찾는 여행이다. 지역 예술가, 작가, 교류할 수 있는 공방과 갤러리, 동네 책방에서 지역주민과 교류하고 커뮤니티의 일원이 된다. 친구가 된다.” _ 마을스테이 제민천 홈페이지


거리를 넘어 지역을 바꾸는 커뮤니티 호텔

호텔산업도 로컬 문화 체험 프로그램과 주민과 여행객이 교류할 수 있는 라운지를 운영하는 커뮤니티 호텔로 고객의 지역문화 수요에 대응한다. 대표적인 커뮤니티 호텔 모델이 미국 포틀랜드에 본사를 둔 에이스호텔이다. 동네 라운지를 표방하는 이 호텔은 힙한 도시라면 하나쯤 있어야 하는 앵커시설로 떠올랐다.


에이스호텔은 도시를 살리는 호텔로도 알려져 있다. 호텔이 들어서면 호텔 주변으로 몰려드는 호텔 취향과 비슷한 가게들이 상권을 활성화한다. 스타벅스가 한 거리를 바꾼다면, 에이스호텔은 동네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에이스호텔의 매력은 로컬 문화 체험이다. 입지 선정, 스토리텔링, 인테리어, 레스토랑과 바 메뉴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로컬 예술가, 크리에이터와 협업한다. 고객이 한 곳에서 지역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호텔을 디자인한다. 이 호텔의 상징은 라운지다. 라운지 전체를 꽉 채우는 소파와 테이블을 설치해 고객과 지역주민이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을 만든다. 주민은 라운지에서 여유롭게 일상을 즐기고, 고객은 주민과 소통하며 현지인같이 지낼 수 있다.




피츠버그의 에이스호텔도 역사와 건축 자원이 풍부하지만 경제적으로 쇠락한 이스트 리버티(East Liberty) 지역에 진출했다. 이 지역은 에이스호텔이 2015년 오픈한 후 피츠버그의 새로운 재생지역이 됐다. 매력적인 가게뿐 아니라 구글 오피스, 스타트업이 몰리는, 문화와 산업이 선순환하는 창조도시로 전환했다.


에이스호텔 팬에게는 아쉽게도 2020년 기준 에이스호텔은 전 세계에 11곳에 불과하다. 미국이 8곳, 영국 1곳, 파나마 1곳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교토가 이 호텔을 처음으로 유치해 2020년 6월 오픈했다. 커뮤니티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에이스호텔은 단기간에 매장을 늘리지 못한다. 현재 전체 매장 수는 1∼2년마다 하나씩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에서도 커뮤니티 호텔을 지향하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 제주 성산에서 시작한 플레이스캠프는 20∼ 30대 취향의 숙박과 상업시설뿐 아니라 다양한 로컬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플레이스캠프 콘텐츠가 체험이다. 미술, 요가, 글쓰기, 칵테일 만들기, 아웃도어, 해양스포츠 등 지역자원과 호텔 시설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지역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하는 토요일 플리마켓도 지역주민과 호텔 투숙객에게 인기다.


플레이스캠프는 또한 호텔 단지 안에 매력적인 골목상권을 운영한다. 커피전문점, 카페, 베이커리, 편집숍, 라이브 뮤직바, 이자카야, 파스타 전문점, 만두 전문점 등 골목상권을 대표하는 업종의 가게들이 입점했다. 아름다운 제주 자연 속에서 제주 문화와 더불어 매력적인 도시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플레이스캠프만이 아니다. 지역 커뮤니티와 연결된 참여형 프로그램과 숙박의 결합은 제주에서 시작해 전국 체인망을 구축하는 20∼30대 여행자를 위한 글로벌 호스텔 베드라디오,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의 작은 골목에서 골목 가게를 연결한 거리를 조성하고 속초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호스텔 소호 259, 서핑, 아프리카 댄스, 요가와 체험 프로그램과 강릉의 두부를 활용한 식품을 식탁에 올리는 게스트하우스 위크엔더스의 철학이기도 하다.


체험 경제가 확대되면서 공유숙박, 마을호텔, 커뮤니티 호텔은 지역의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부상했다. 진정한 현지 문화 체험을 제공하는 것은 지역 커뮤니티와 로컬 크리에이터의 몫이다. 아무리 자본력이 큰 대기업이라도 지역마다 지역문화를 구현하는 호텔을 건설하기 어렵다. 지자체도 해외 테마파크 등 지역문화와 동떨어진 관광시설의 유치보다는 지역자원의 개발로 승부해야 한다. 미래의 관광자원은 인공적인 관광단지가 아닌 지역의 있는 그대로의 생활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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