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운동화 기업인 나이키의 본사가 위치한 포틀랜드도 시애틀 못지않은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아웃도어 활동이 활발하고 산과 강이 많은 도시이며 미국 육상의 중심지다. 자전거와 조깅이 발달한 도시이며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인구 비율이 8%로 미국에서 가장 높다.
야외 활동이 활발한 포틀랜드에서 나이키와 같은 아웃도어 스포츠 용품 회사가 탄생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오레곤 대학 육상 코치로 일하던 빌 보어만은 좋은 신발을 만들기 위해 나이키를 창업했다. 창업자 보어만은 스포츠의 일상화를 주장하며 “몸이 있으면 모두 운동선수다”라는 말을 남겼다.
포틀랜드 브랜드와 나이키 브랜드는 나이키의 대표 상품 '나이키 에어'에서도 접목된다. 마이클 조던이 점프하는 사진의 로고로 유명한 나이키 에어는 자유와 새로움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원하는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상품이다. 나이키가 탄생한 포틀랜드도 진보적인 서부 도시답게 자유롭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자랑하는 도시다.
운동화 수입으로 시작한 나이키
경쟁이 치열하기로 유명한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기업이 있다. 미국 포틀랜드에 본부를 둔 나이키다. 세계 160여 개국에 상품을 수출하는 나이키는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시장으로서 미국에서 50퍼센트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한다.
스타벅스와 마찬가지로 나이키도 라이프스타일을 판다. 나이키 덕분에 스포츠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나이키는 우리에게 생각만 하지 말고 즉시 행동할 것을 권유한다(“Just do it!”). 건강, 레크리에이션, 활동적인 삶, 단련된 몸 등이 우리가 나이키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나이키의 브랜드 파워와 사회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에어 조던 시리즈’가 출시될 때면 나이키 매장은 경비가 삼엄해진다. 신상품을 훔치려는 강도를 막고, 신제품을 사기 위해 서로 몸싸움을 벌이는 소비자들의 폭행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이키 운동화는 초·중등학교 남학생의 패션과 유행을 주도하기도 한다. 그 또래의 청소년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증명하기 위해 나이키 운동화를 찾는다. 신상품이 출시되는 날이면 나이키 매장 앞은 수많은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심지어 신제품을 사려고 결석하는 학생이 늘자 일부 학교는 신제품을 주말에만 판매하라고 회사에 요구하는 일도 일어났다. 학생들은 최고의 스타가 신는 나이키 제품을 소유함으로써 자신도 그들과 같아진다고 믿는 듯하다.
나이키의 역사는 1962년 포틀랜드에서 시작됐다. 오리건 대학의 육상부 코치 빌 보워먼(Bill Bowerman)은 선수의 기록 향상을 위해 새로운 육상 신발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가 만난 신발 제조업체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그는 당시 일본 오니츠카 타이거의 러닝화를 수입해 판매하던 필립 나이트(Philip Knight)에게 동업을 제안했고, 둘은 1964년 나이키의 전신인 블루리본 스포츠(Blue Ribbon Sports)를 설립했다. 사업 초기에는 일본 신발을 수입해 판매했으나, 1972년에는 지금의 나이키를 탄생시켰다.
나이키는 초창기부터 유명 선수 마케팅으로 유명했다. 조깅 붐이 일었던 1970년대의 유명 육상 선수는 모두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 이후에도 1980년대의 마이클 조던, 1990년대의 타이거 우즈, 2000년대의 샤라포바 등 각 분야의 최고 선수를 광고 모델로 내세워 새로운 운동화를 개발하고 스포츠용품 시장을 개척했다. 나이키는 최고의 스포츠 스타를 등에 업고 최고의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탄탄히 구축해 나갔다.
포틀랜드의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삶을 반영한 나이키
풍요롭고 아름다운 자연환경, 활기찬 아웃도어 활동은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의 키워드다. ‘미국에서 가장 푸른 도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도시 전체에 산책로와 조깅 코스가 잘 꾸며져 있다. 포틀랜드의 도보 지수(Walk Score)는 70점대에 육박해 미국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물론 자전거를 즐기기에도 최적의 도시로 알려졌다.
포틀랜드는 나이키가 강조하는 ‘스포츠는 곧 일상’이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하는 도시다. 따라서 나이키 창업자 보워먼과 나이트의 고향이기도 한 포틀랜드는 나이키 기업 문화와 전통을 꽃피우기에 아주 적합한 곳이다.
포틀랜드 라이프스타일은 한마디로 ‘건강하고 책임 있는 삶’으로 요약된다. 책임 있는 삶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다. 이상적인 포틀랜드 사람은 정기적으로 운동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적당히 섭취한다.
포틀랜드 사람들은 사회의 건강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사회적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포틀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자연을 보호하는 일에도 철저하다. 재활용 비율이 63퍼센트가 넘는 오리건은 미국에서 재활용을 가장 많이 하는 주다. 포틀랜드 사람은 자연을 즐기고 자연을 소중히 여기는 동시에 인권 등 기타 사회문제에도 적극 참여한다.
포틀랜드 사람들의 진보성에 부응하여 나이키도 환경, 인권, 자선사업 등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트레이시 카바쇼의 저서《열정으로 시작해 꿈이 된 기업 나이키 이야기》에는 나이키 CEO인 마크 파커(Mark Parker)의 포부가 소개되어 있다. 마크 파커는 나이키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기 위해, 친환경 성장을 추구하는 세계적 흐름의 선두에 서서 성공적인 행보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나이키 사회 공헌 활동의 대표적인 예가 ‘컨시더드 디자인(Considered Design)’이다. 컨시더드 디자인이란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소재의 비중을 높이고 불필요한 원료 및 유기화합물 등을 감소하거나 제거하는 공법이다. 마크 파커는 나이키의 스포츠용품뿐만 아니라 시설 관리, 개보수, 건축 설계에도 적용하여 지속 가능성 원칙을 살린 성장과 혁신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나이키 중심의 아웃도어 산업 생태계
포틀랜드는 미국 아웃도어와 스포츠 산업의 중심지다. 나이키 본사와 아디다스 미주 본사를 필두로 300여 개의 운동화 기업이 밀집해 있고, 지금도 언더아머(Under Armour), 킨(Keen), 아이스브레이커(Icebreaker), 야키마(Yakima)와 같은 아웃도어 기업들이 포틀랜드로 이전하거나 기존 포틀랜드 사업장을 확장하고 있다.
포틀랜드가 운동화 산업의 중심지로서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핵심 인력이 집적된 데 있다. 엔지니어링, 디자인, 마케팅, 광고, 유통, 부가 서비스 등 운동화 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업 활동을 담당하는 전문 인력이 포틀랜드를 중심으로 산업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가 집중돼 있다는 점은 운동화 생산의 지속적인 혁신을 가능하게 한 포틀랜드의 핵심 자산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운동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 위해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명확해진다. 하이테크 창업 인재가 실리콘밸리로 몰린다면, 운동화 인재는 포틀랜드로 떠난다. 포틀랜드의 또 다른 자산은 지역 소비시장이다. NPD 마켓 리서치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포틀랜드에는 워싱턴 D.C. 와 미니애폴리스에 이어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스포츠 용품 소비시장이 형성돼 있다. 포틀랜드가 다른 두 도시보다 인구가 적은 것을 고려할 때 인구당 소비 수준은 다른 지역보다 월등하게 높을 것이다. 포틀랜드 소비자는 높은 품질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소비자이자 혁신적인 운동화와 아웃도어 상품을 선호하는 얼리 어댑터(Early Adopter)로 정평이 나 있다. 포틀랜드 기업들이 선도적인 기술과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이런 마니아층 소비자의 관심과 참여가 깔려 있다.
포틀랜드는 이처럼 아웃도어 라이프를 공유하는 소비자, 생산자, 기술자가 만들어내는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 생태계다. 세계적인 아웃도어 도시에서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가 탄생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