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한 모금
두 발이 땅을 밀고
몸이 앞으로 쏠린다
생각은 뒤늦게 따라온다
달릴수록 단순해진다
무겁던 마음이 내려앉고
남는 건
숨, 땀, 그리고 발끝의 의지
처음엔 이기려고 달렸다
빠름이 옳음이라 여겼다
경쟁, 순위, 그리고 공허
세상이 그리 가르쳤다
하지만
달리다 보면 안다
먼저 가고 도착하는 것이
이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길은 늘 똑같지 않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진다
힘들다 하여 멈추면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다
넘어질 때도 있다
숨이 목을 조를 때도 있다
그러나 다시 일어난다
인생도 그렇더라
달릴 땐 말이 사라지고
몸이 기억을 앞선다
달리기 한 모금이면
생의 갈증이 잠시 씻긴다
물도 위로도
필요 없을 때가 있다
몸이 먼저 흘러야
마음도 뒤따라 흐른다
계절이 옆을 스쳐간다
봄은 푸르게,
여름은 뜨겁게,
가을은 낙엽으로,
겨울은 고요로 지나간다
나는 멈추지 않는다
달리는 동안 살아 있다
아무것도 되지 않으면서
비로소 내가 된다.
인생은 도착이 다가 아니더라
달리는 법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도착도 의미가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