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한잔

여행자

by 약속의 땅

여행자


몸이 녹아내리는 계절,

증발되지 않으려

가만히 짐을 쌌다


돌아올 곳을 정돈해 두고

왕복표 한 장

손에 쥐고 떠난다


지갑이 허락하는 만큼

먹고, 보고, 웃고

쉼표 하나 찍어본다


그리고

비워둔 자리로

조용히 돌아온다


삶이 녹아내리던 생,

삶아지지 않으려

또 한 번 떠나려 한다


돌아올 곳을 기억하고

왕복표를 구해보지만

편도뿐이라 한다


통장이 텅장이 되도록

먹고, 보고, 웃으려 했던

쉼표를 찍을 수 없다


왕복 없는

고단한 생은

여행이 아니었나 보다


던져진 듯 살아온 생,

지나친 풍경은

다시 볼 수 없다


유턴 없는 생의 길은

더 이상

여행일 수 없다


어쩌면 지금 내 생이

녹아내리지 않으려

애써 떠나온 여행지일까


그래, 그럼 여기서

먹고, 보고, 즐기며

쉼표를 부지런히 찍으리라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