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2, Paris, France
#후회 가득 남아 아픈 기억은
무지개 너머 먼 곳으로
아련하게 잊혀질거야
자우림 - Something Good 中
‘생트 샤펠이라고 있는데 난 여기 추천.’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과의 카톡.
원체 여행 계획에 있어서 남들 추천에 잘 반응하지 않는 고집이 있지만, 파리에 꽤 오랜 시간을 살았던 사람의 추천은 약간 남다르다. 생트 샤펠? 내 기억 속, 파리하면 떠오르는 명소 몇 군데 중에 이 단어는 없었기에 더욱 궁금증이 생긴다.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하자, 눈에 들어오는 사진 몇 장. 이름에서 풍기는 우아함 만큼이나 눈부신 스테인드 글라스의 향연에 바로 여행 계획을 수정했다.
노트르담 성당에서 도보로 5분 정도를 걸어 생트 샤펠에 도착했다. 대법원 옆에 딱 붙어 있는 생트 샤펠. 외관은 상당히 초라한 편이다. 이것이 입구가 맞나 긴가민가하다. 고작 임시로 세워진 간이 차단봉과 이정표만이, 이곳이 내가 찾던 그곳임을 말해주고 있다.
비좁은 입구를 지나 1층 예배당으로 입장하자, 화려하다 못해 정신 사납기까지 한 기둥과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이런 색감은 이번 유럽 여행을 통틀어 처음이다. 금색, 빨간색, 남색의 원색적인 강렬함이 꽤나 고급스럽다. 회색빛의 밋밋한 시멘트 건물 내부에 이런 모습이 있을 줄이야. 다른 유명 관광지에 비해 소박한 규모 때문인지 그 내부는 더욱 화려하게 느껴진다.
1층 예배당은 평민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왕과 귀족을 위한 공간이었던 2층은 얼마나 엄청난 면면을 갖고 있을지. 여행 전, 검색으로 봤던 사진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아 바로 2층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계단을 밟고 고개를 들자, 뒤엉킨 보랏빛이 머리를 감싼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눈에 들어오자 찌릿찌릿한 소름이 끼쳐와 몸이 부르르 떨린다. 세상에 있는 모든 색깔의 유리 조각을 모아 잘게 부숴, 긴 창을 만들어 놓은 모양새이다. 통일된 패턴과 연속된 색깔의 구성. 너비는 좁게, 높이는 길게 만들어진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스테인드글라스. 그 높이 솟은 빛의 축복 속에서 뒤에 사람이 올라오는 것도 모른 채 걸음을 멈췄다. 나를 한순간 현혹시켰던 그 사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빛의 영롱함이 물이 오를 대로 올라 탐스럽게 익은 듯하다. 아득해진 정신을 붙잡고자 꽤나 힘을 쏟아야만 했다. 생트 샤펠은 예배당이란 이미지가 갖고 있는 신성함과, 그것과는 거리가 먼 화려함이 양립하고 있다. 그 팽팽한 기싸움에서 우세를 보이는 것은 화려함이다. 하나, 그 기운을 다 잡아먹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초월한 모습이 자아내는 경이로움으로, 신성함을 수호하고 보완한다.
이윽고 스테인드글라스에 나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 빛에 녹아내리는 느낌이랄까. 와인 한 병을 들고 주저앉아 아픈 말들을 구구절절 털어놓고 싶은 느낌. 온갖 미안한 마음이 샘솟는다. 문득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고해성사가 이런 느낌이었을까.
미안한 이야기들을 주섬주섬 꺼냈다. 찢어내면 되는 더러워진 종이를 굳이 지우개로 문대다 회색빛으로 남겨둔 이야기들이다. 속죄의 손짓을 통해 그 부분도 인생에 하나였음을 아로새긴다. 이런 날에 유독 그 부분이 떠오르는 이유는 그런 것이다. 몇 페이지를 채우고 있는 기억들. 하도 문질러 구김이 간, 그래서 덮고 있어도 울퉁불퉁 티가 나는 몇 페이지들. 그 응어리진 페이지들은 시기를 놓친 빨랫감과도 같다. 돌이키기에는 그 긴박의 시기를 너무나 허망하게 지나쳤다.
그러나 부질없는 짓이라 할지라도 나는 쌓이는 시간을 세제로 삼아 계속해서 씻어낼 것이다.
말로 풀어내지 못할 미안. 글로 적어도 닿지 못할 미안. 나는 후의 개운함을 위해 가글을 하듯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는 상태로 따끔거림을 감내해야 한다. 가끔 그것들이 입에 담기 벅차, 눈가로 역류하여 시큰하게 번질 때도 있겠지만 고통을 참고 머금어야만 한다.
빛이 가장 잘 드는 곳으로 이동했다.
두 손을 모았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Season.1 - 안녕. 그리고 안녕
[Spain, France] by.mind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