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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Aug 13. 2016

<데자뷰>-감시의 정당화

무차별적인 감시를 정당화하다.

덴젤 워싱턴의 "보호자" 캐릭터는 항상 명불허전이다.

데자뷰 (2006)

The Dejavu

감독

토니 스콧

출연

덴젤 워싱턴, 발 킬머, 폴라 패튼, 제임스 카비젤

개봉

미국 | 액션, 스릴러 | 2007.01.11 | 12세이상관람가 | 126분


물론, 미국 공화당을 지지하는 감독이 공화당스러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일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바닥에 깔고 있는 이념이 어떠하든 "람보"와 "코만도"는 유년기에 짜릿한 자극제가 되는 미국식 영웅주의의 프로파간다를 깐 영화였고, 액션 영화 장르가 주로 보여주기 마련인 힘, 테크놀로지, 정보의 우위를 점하는 것과 더불어 있는 강력한 권력 의지는 결국 도덕과 정의를 일소한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오히려 더 정상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도 다름 아닌 기술력과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FBI의 훌륭한 범죄 소탕 스토리를 일면 감동 깊게 보여주고 있다. 다만 한 군데 불편하고도 끔찍한 내용은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민간에 대한 감시를 매우 정당한 것으로 묘사한다는데 있다. 민간 사찰 파문도 일어난 한국적 현실에서 이 영화가 개봉작이 아닌 것은 아마도 현 정부의 입장에서는 다소 아쉬운 일이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의 부시 정권의 논리를 치켜주고 있는 영화였다.


끔찍한 테러가 있었다. 수백 명의 해병들과 민간인들이 타고 있는 페리선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이다. 덴젤 워싱턴은 FBI의 CCTV 시스템을 통해 매우 꼼꼼하게 과거의 촬영 화면들을 보여주는 영상들과 더불어 이 사건의 단서를 갖고 있는 사건 장소와는 다른 곳에서 살해된 여성의 일상생활을 사건 수일 전부터 다시 살펴본다. 그 과정에서 그 여자의 일상생활은 낱낱이 까발려진다. 이른바 관음증을 자극할만한 목욕신도 등장하고 그 여자가 나눈 통화 기록들을 토대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그 여자의 일상은 수많은 FBI 수사관들과 덴젤 워싱턴의 시선 앞에 샅샅이 분해되어 펼쳐진다. 이 과정에서 덴젤 워싱턴은 그 여자에 대해 깊은 애정을 느끼게 되어버릴 정도가 된다. 잠자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친구와 나눈 이야기들, 다시 한 번 목욕신, 전화 통화 모두가 하나 빠짐없이 노출되는 것을 정당화하는 것은 테러범을 찾아낼 수 있다는 목적이다.


중간에는 좀 더 황당한 상황이 나타나는데, 알고 보니 이 영상기기는 일종의 타임머신 같은 장비로써 과거의 사건들을 다시 볼뿐만 아니라 이 사건 자체에 개입까지 할 수 있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는 SF적인 상황이다. 아, 처음부터 4-5일 전의 과거에 주인공을 떨구어 놓고 사건을 방지했으면 되었을 것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만사를 다 돌려보고, 한 여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본 뒤에야 행동을 시작한 뒤에 영화는 과거로 가서 벌어진 상황을 뒤집어엎는 방식으로 간다.

이미 테러의 희생자가 된 여자가 생전에 먹고 자고, 샤워하고, 고양이를 키우고, 전화 통화하는 모든 내용들을 FBI가 재생해서 보고 있는 장면이다. 항상 조신하게 살아야겠다.

아, 데자뷰는 결국 타임머신 + 훔쳐보기 + 대테러 상황에서는 모든 권력 기관의 감시가 용인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충실히 구현한 영화였던 것이다. 이 영화는 2016년 개봉작인 "제이슨 본"에서 악으로 묘사되고 있는 CIA의 국장인 "듀이"의 논리를 철저하게 대변하고 있다.


"맨 온 더 파이어"에서처럼 덴젤 워싱턴은 사랑하는 여자(이 영화에서는 일부분 로리타 신드롬이 가미되어 나온다)를 지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역할을 다시금 연기한다. 아마도 이것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는 이미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영화와 "맨 온 더 파이어"의 다른 점은 과연 자유국가에서 이른바 '민간인'이라는 사람들에게 사생활을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가에 대한 관점 차이이다.


결과적으로 일어났던 테러를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들고 영화는 종결되고 과거로 회귀한다는 기억을 갖지 않고 있는 다른 시간 대의 덴젤 워싱턴은 살아남게 되고, 좌충우돌하며 시간 대를 거슬러왔던 덴젤 워싱턴은 죽는 세미 해피 엔딩이지만, 문제는 그러한 해피 엔딩이 일어나야 한다는 당위를 위해 까발려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생활은 '보호받지 않아도 좋다'라는 의견이 영화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간다는 점이다.


내 사생활이 언제든 공개되어도 상관없다는 사회적 공익에 입각한 노출증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 영화는 감동적인 영화일 수 있다. 오락영화로써만 보자면 최소 80점짜리 수작이다. 시간 때우기에는 나름 만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관객으로서 이 영화가 전달하고 있는 잘못된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은 정확히 인식하고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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