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n Nov 05. 2016

<닥터 스트레인지>-종합 선물세트

 유체 이탈 화법을 초월한 유체 이탈 영상, 모든 것의 업그레이드

영화를 보자마자 바로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다. 왜냐면, 그래도 조금은 내 내부에서 숙성된 요구르트 같은 품질의 시큼한 맛을 지닌 감상문을 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일단, 보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나면, 글을 쓸 에너지가 찰 때까지는 최소한 하루는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정 이상의 기간이 지나야 뭔가 쓰고자 하는 내용이 스믈스믈 하고 다른 이야기들과 같이 섞이면서 만들어지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보자마자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아니 글을 쓸 시간을 뒤로 미루다간, 내가 겪은 이 경험에 대해서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것 같아 조급함이 생길 정도였다.


보는 동안 태어나서 시력 멀쩡하게 살아 있다가 이런 급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매트릭스로부터 시작된 세기말적 영상 충격은, 블레이드 러너라든지 스페이스 오디세이, 스타워즈 같은 그 이전 시대의 영화를 볼 때의 신선함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 아직도 생생하고 때때로 다시 보고 싶은 클래식과도 같은 영역의 이미지들로 고정되어  남아 있었다. 이 이상의 영상들을 담은 영화는 나오기 쉽지 않다고 여겼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나온 것이다. 이 영화는 보는 그 순간, "아! 이런 영화를 보려고 내가 그전에 보았던 영화들에 조금씩 티를 잡고 있었던 거구나!"라는 감탄사가 극장에서 흘러나올 뻔했다.


압축해서 말하자면, 새로운 경험을 주는 영상과 스토리, 신선함, 배우들의 연기, 의상, 패션, 미술, 기발함, 충격, 재미, 놀라움 이러한 것들이 영화가 끝나는 순간까지 갈증을 느낄 새가 없을 정도로 계속된다. 그전에 우리가 감동해왔던 영화들에 나왔던 영상기술들이 다시금 나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유사한 영상 기술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분명히 업그레이드된 것들이다.

매트릭스가 빌딩과 도시를 움직이게 하거나 변형시킨 버전 1이고, 인셉션이 버전 2라면, 이 영화는 버전 5는 되었다.


1. 주요 배역 업그레이드

영화의 초반 닥터 스트레인지는 오만함과 자기 확신에 가득 찬 1류의 뇌신경 수술의로 나온다. 그런 그가 너무도 화려한 아파트에서 럭셔리한 시계를 차고, 잘 빠진 스포츠카를 타고 도로를 달려갈 때까지의 그의 모습은 완벽함 그 자체다, 인도주의적이면서도 완벽한 시술을 할 수 있는 재능과 더불은 기술과 이를 통해서 사치스러운 삶을 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부를 획득한 주인공. 마블 코믹스에서 이러한 럭셔리함은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와 블랙 팬서의 와칸나의 왕자로 넘어가면서 점점 더 극대화하다가, 닥터 스트레인지에 이르러서는 '누군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아니라 내가 내 힘으로 만든 재산'이라는 형식으로 다시금 변주되는 느낌이다.

그녀는 일단 시공간 이동만 할 수 있는 남자라면 잘 어울리는 캐릭터이고 이 남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잘생김을 잘 연기하는 캐릭터이다.
람보르기니에서 시원스럽게 망가뜨려도 좋다고 마블에 닥터 스트레인지 촬영용으로 선사한 슈퍼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괴벽을 가진 천재라는 이미지를 훨씬 더 잘 연기하는 배우로 계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전 영화 셜록 홈즈에서의 로버트 다우니의 이미지를 다시금 티브이 시리즈의 극장판에서 대체 전복시켜버렸듯이, 이제 "인피니티 워"같은 영화가 나온다면 확연하게 비교되겠지만, 마블 시리즈 내의 최고의 괴벽 천재 이미지는 이 한편으로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넘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연기력을 세대교체로 봐야 할지 아니면 수평적인 차원에서 보다 차별화된 인물에게 추월당한 것으로 봐야 할지는 조금 혼동이 된다. 그렇지만 돈이 오가는 차원에서 판단하자면, 얼마 안 있어 마블 유니버스를 다룬 영화에서 최고의 개런티를 받는 배우는 로. 다. 주. 씨가 아니라 베. 컴. 씨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난 이후에 쿠키 영상이 2번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관객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했다. 첫 번째 쿠키 영상에 나온 마블의 히어로 중에 한 인물에 대해서는 여성 관객들이 탄성을 지르기까지 해서, 아, 그 인물이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근데, 베. 컴. 씨가 그 인물 앞에서도 전혀 위축되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과연 명불허전,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또 한 번 알게 되었다.

이런 식의 착시를 동원하는 CG가 자주 나오는데, 이런 환상적인 이미지에도 중첩이 잘되는 캐릭터였다.

틸다 스윈튼은 이러한 닥터 스트레인지에게 신비로운 힘과 경험을 선사하는 완벽하게 민 머리의 수도승 같은 이미지로 이전의 "올란도"에서 맡았던 미스테리어스 한 수백 년 이상을 살아가는 마법사의 역할을 잘 구현해낸다. 그가 아직도 활발한 활동을 하는 배우로서 이렇게 이 배역을 맡은 것이 또한 너무도 감사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대체할 현존하는 그 어떤 배우도 전혀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사대주의를 갖고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맞는 딱 맞는 배역이었다는 이야기이다. 화이트 워시라고 하는 비난이 필요한 영화가 되기엔 그의 연기가 너무 훌륭했다.

수백년을 살아온 현자, 마법사의 이미지를 서양 영화사를 통털어 그녀만큼 잘 구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적합할 수 없는 이미지의 배우 하나가 더 떠오른다. "시공을 옮겨다닐 수 있는 남자와의 연애하기와 결혼하기 전문 캐릭터"인 레이철 맥 아담스가 "시간여행자의 아내"와 "어바웃 타임"에 이어서 이곳에서도 시공을 오가는 남자인 닥터 스트레인지의 연인으로 나온다. 이 이미지에 최적화된 캐릭터로서의 발군의 역량을 발휘한다. 영문을 모르고 당황하면서도 사랑하고, 잡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느 정도는 제대로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긍정하고 포기하는, 이 복잡다단한 연기가 이제 그녀에게는 가장 쉬운 연기인 것 같았다.

빼놓고 가면 아쉬운 배우, 매즈 니켈슨은 시작 장면부터 나타나자마자, 피도 눈물도 없으면서도 동시에 매우 지성적인 듯이 보이는 악당 캐릭터의 대명사와도 같은 배우이다. 마지막까지 닥터 스트레인지와의 대결에 있어 나름 팽팽한 긴장감을 잘 유지할만한 배우로 또한 역시 최적이었다. 몇 안 되는 배우들이 후보군이 되었겠지만, 캐스팅 보드에 그를 선택한 것은 또한 성공적인 결정이었다.

왠지 그가 아니면 이런 느낌은 나기 어렵다 싶은 그런 악역 연기가 이 영화에 예정되어 있었다. 베.컴.과의 궁합이 잘 맞는다.


2. 영상 기술의 업그레이드

이 영화에서 나와 비슷한 유형의 관객들이 다시 돌아보고 비교하게 되는 영화들은 순서적으로 인셉션과 매트릭스, 인터스텔라, 그린 렌턴, 소스 코드 등의 영화들과 모든 마블 영화 시리즈 들일 수 있다. 그 언젠가 보았던 영화들 속에서 우리가 감탄하며 보았던 시각적인 새로운 경험들을 다시 되살려와서 그 이상의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영상으로 만들어 더 화끈하게, 오랜 시간 동안 선사해준다.

시공을 접고, 구기고 오려내고, 절단내고 매부분이 다른 중력으로 움직이고 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사춘기 소년마냥 흥분했다.


최초의 장면에서 매즈 미켈슨이 이끄는 도서관 습격팀이 틸다 스윈튼에게 쫓겨 다닐 때, 시공을 꺾고 접으면서, 복잡하기 그지없는 작동 퍼즐로 만들어 중력의 방향을 이쪽저쪽으로 바꾸는 장면은 영화 속에서 계속 반복되었다. 그동안의 인류 영화사에서 나왔던 중력 변화 씬과 건물을 포함한 사물과 공간의 마치 실제 장면 같은 환상적인 변화 장면들은 기대를 충족하고서도 훨씬 더 나아가는 바마저 있다. 솔직히 뛰는 가슴은 마치 2~30년 전 중고등학교 때 훌륭한 CG가 들어간 영화를 보고 뛰었던 가슴에 필적할 정도로 두근거렸고, 동공도 커졌으며, 이거 이 영화 정말 잘 보러 왔군이라는 기분 좋은 문장이 머리 속에서 계속 회전될 정도였다.

정말 내가 본 것의 일부 밖에는 웹상에 있는 사진을 찾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자칫 잘못 영상화했다간 촌스러워질 수 있는 모든 시도들 중에 유체이탈 씬과 전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씬들이 전혀 촌스럽지 않으면서도 밀도가 높고, 한 장면 한 장면이 새롭거나 최소한 이전의 유사 영상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냥 자본과 인력을 많이 투입하기만 하면 만들어지는 수준의 그런 양에 치중한 영상이 아니라, 정말로 고심하고 열심히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끈질기게 만들어낸 놀라운 느낌을 선사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다 부어낸 느낌이 확연하다.

전혀 촌스럽지가 않다. 유체 이탈 씬이 말이다. 물론, 유체이탈 화법은 온 국민이 다 익숙한 것이 우리나라이지만.


3. 거의 완벽한 스토리에서 찾아낸 옥에 티

스토리의 측면에서는 솔직히 필연성이라고 할지, 아니면 정말 영웅적인 환골탈태를 통해서 이렇게 영웅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감동적인 인물의 변화는 다소 부족하다. 하지만 내적 갈등이 제대로 만들어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영상과 더불은 캐릭터가 매력을 전달하는 방식이 너무 효과적이라, 티를 잡다 보니 나온 이야기일 뿐, 굳이 스토리가 어떻다고 할 필연성은 사실 내게는 없다.


4. 감독에게 칭찬을 하자면.

스콧 데릭슨 감독은 최근 공포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감독이다. 내가 이전에 보았던 그의 영화는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한 "지구가 멈추는 날"이었는데, 모든 것이 크게 만족스럽지는 못했던 가운데, 나노 곤충 로봇들이 모든 것을 갉아먹어 없애는 영상 하나만큼은 정말 인상적이었다는 기억이 이제야 난다.


그런데 그 이후에 본업으로서의 공포 영화들을 만들어 가면서 어쩌면 이 감독은 SF 영화에서 새로운 차원의 영상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대한 모든 제작 스태프들과 배우들과의 협업을 위한 융합된 관점과 지식, 기술을 갖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가 2008년도에 만들었던 "지구가 멈추는 날"의 영상 기술들은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떠올려볼만한 부분이 없었지만, 분명히 이 영화의 파괴씬들에 적절하게 배분되어 재사용되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무슨 말로 끝을 맺고 싶은가? 일단, 아무 걱정 없이 보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최소한 개봉관에서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을 때 꼭 봐야 하는 영화다. 나중에 티브이로 보게 될 때, 개봉관에서 보았던 느낌을 되살리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앞으로의 생애에 있어 아쉬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오늘 개봉관에서 볼 기회를 놓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앞으로 매트릭스의 영상이 내 눈앞에서 점점 더 흐릿해질 것 같아, 이 점이 좀 아쉽다.


오늘의 우리 나라는 이런 영상이 지워버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혼란을 겪는 중이 아니다. 너무나 답답하고 일종의 번아웃, 녹초가 되어버릴만큼 부조리하고 비합리적인 상황이 그 정체가 많이 드러나고도 그대로 지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고 있다. 11월 12일, 20만여에 이르는 국민들이 5일에 외친 목소리보다 더 큰 목소리가 이 날 또 울려퍼질 것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선사한 영상 충격보다 더 후련하고 새로운 세상이 적어도 그날을 기점으로 이뤄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을 감사해하는 시간이 더 오래 가기를 염원한다.

 

이전 06화 <데드풀 2>-진지하지 않을 자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