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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May 22. 2018

<데드풀 2>-진지하지 않을 자유

히어로가 되기 위한 진지함을 영화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말라

여러 영화의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이 시리즈의 최대 장점은

시니컬하게 히어로물을 비웃고,

비하하고 있을 사람의 편에서

기존의 히어로물을 같이

비웃고 씹어 대면서도 자기가

얻어 가야 할 흥행과 팬심은

하나 놓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어찌 보면 위험하게 자신까지

포함한 히어로물 전체의 허무함과

무상함, 별 것 아닌 진지함을 조롱하며,

어차피 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단한 무슨 일을 하는 것처럼

치장을 하는 슈퍼히어로물을 비웃는다.


그러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자폭과

훌륭한 액션신을 오가면서 영화가

휴지처럼 구겨지는 느낌도 들었다가

다시 말끔하게 펴진 캔버스가 되기도

하는 절묘한 곡예가 펼쳐지게 된다.


"계산이 없이 막 만든 것처럼" 찍어서

이를 통해 "쾌감을 얻는 사람"에게서

돈을 번다. 그 쾌감은 다름 아닌

"일탈", "벗어남", "자유로움"에서

오는 것이다.


"방백"이라는 연극 용어가 있다.

극 중에 마치 관객에게만 들리라고

하는 것처럼 배우가 하는 대사다.

"제 4의 벽"이라는 만화적인 표현도

있고, "메타 픽션"이라는 있어 보이는

표현도 있다.


일단, 이 "메타 픽션"을 은근히

제대로 실행한 영화는 "로건"이었다.

왜 "데드풀"이 자꾸 "휴 잭맨"을

언급하면서 "울버린"을 이야기하고

이번 편에서는 "로건"의 이름이

좀 더 확실하게 등장했을까?


"엑스맨"에서 유일하게

"데드풀"과 싸우면서 교차한

역할이기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영화 "로건"에서 자연스럽게 실행된

영화 속 "엑스맨"이 "엑스맨" 만화

잡지를 보면서 "우리는 이같이 화려

하고 강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그럴듯한 설득력을 관객에게

전달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해 보인다.


결국에는 "데드풀"을 "메타 픽션"을

남발하는 히어로로 데뷔시켜도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20세기 폭스사에

주었으리라.


영화의 끝 쿠키 영상에서 타임 라인을 열심히 정리하는 데드풀이 부순 것은 메타 픽션과 연결되지 못한채로 진지하기만 한 거짓 데드풀이다.

사실 이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진지하지 않다.

그래서 계속 "데드풀"은 지껄인다.

"이거 대본 정말 대충 썼네"


그러는 동시에 어둡고 칙칙한

역할을 하는 "케이블"에게는

"너 디씨에서 왔지? 너무 칙칙해"

라고 하면서 배역을 맡은 "죠쉬

브롤린"이 어벤저스에서 "타노스"

역할을 했다는 것도 말해버린다.


야구로 치자면 "데드풀"은 더그아웃에서

상대편 타자나 투수를 열심히 야유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동시에

아군인 "엑스맨"도 열심히 야유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런데, 그 야유

속에는 오히려 날카로운 표현이

직설적으로 나타난다. "1960년대의

인종차별에 대한 (시대가 많이 지난)

상징적인 비유"라는.


엑스맨의 저택에 들어와 주요 배역을

비웃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자, 모여

있던 방에서 "데드풀"을 향해 방문을

닫아버리는 장면이 나올 정도다.

 

매우 비관적이고도 염세적인 방향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애인도 초반에 죽고,

이를 다시금 자기 비하의 개그 소재로

삼는 “데드풀”이 나온다.


이렇게 만든 이유는,

'"스포트라이트" 혼자 받으려는 어떤 놈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타이틀 롤과 제작진,

배역 등을 자막으로 설명하는 화면에

나타난다. 전편에 이어 여전히 재미있는

자학 개그다. 의외성을 선사한다.


우여곡절이 가득히 있고, "루퍼"

같은 영화에서 미리 나왔던, 미래에

사악한 일을 할 존재를 미리 현재에서

죽이고자 하는 "케이블"과 "데드풀"의

의견 차이가 오간다.

딱 이런 이미지라고 볼 수 있었다. 덕분에 데드풀은 목숨도 부지하고, 여친도 되살리고, 과거의 오점도 지우고, 그린랜턴 개봉도 막는(?)다.

이러다 메시지가 시들어 버릴 수도

있을 법하지만, 꾸준히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아이는 우리의

미래다. 행복하게 키워야 한다."이다.


1편과 2편에서 이 엉망진창으로

쓰인 것 같은 대본의 곁가지 같은

모든 내용을 제외하고 하나 제대로

남는 건 이것이다.

루퍼에 나온 스토리가 차용되었던지 아니면 반대일 것이다. 인간에게 학대 당하고, 이로 인해 인간을 증오하는 존재가 되어가는 러셀의 위력이다.

그리고 이런 "메타 픽션"에 의해서

영화가 산산조각 나지 않은 중요한

이유는 현란한 액션에도 있다.

기대했던 바 대로 David Leitch는

"아토믹 블론드"에 이어서, "존 윅"

등 자신의 감독 작품에 계속적으로

자신만의 서명과도 같은 특별한

액션 장면을 성공적으로 남겼다.

액션 스턴트의 장인이 감독을 한 보람이 있었다.


비록 월요일 연차 중에 본 영화여서

극장에 관객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다들 너무 재미있어했다. 물론,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렇게

감상문을 쓰고 있다.


다른 마블 시리즈라면 주저리주저리

있는 스토리 없는 스토리 다

써 내려가겠지만, "데드풀"만큼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 들어가서

찾아볼 부분이 너무 많아서이기도

하지만, 일일이 다 찾아서 알리면

꼭 그만큼 내가 경박해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크다.


이 때문에 진지한 평론가라면

저평가 할 수 밖에 없는 작품이 된다.


진지하게 썼던 히어로물에

대한 평론을 공격 당하는 셈이므로

나같이 어느 (글쓰는) 조직의

직함을 달지 않고, 엄청난 독자

팬덤도 없는 이조차도 부끄러워할

데드풀 칭찬은 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평론을 쓸데 없는 잔소리로

보는 관객이 더 즐기는 영화가

된 것 같다.


그건 그만큼 아직도 내가 사는

사회가 경직되어 있기 때문에서

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경직성에

대한 반발이나 그로부터 떠난

자유를 얻는 해방감 때문에

이 영화가 사랑받는 것이지만.


구속 당하는 사회에서 사는만큼

우린 히어로물을 더 좋아하고 있고,

그만큼 더 이 영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면을 갖고 있다.


마블의 성공, 이 중에 “데드풀”의

성공의 배면에 있는 것은 자신의

자존감을 억눌린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어나는 바로 그 해방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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