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공지능의 천국
h. 천국의 종말
그 과정에서 하데스는 자기가 들어간 출구로 진의 내부 인격들이 우르르 나갈 시간이 얼마나 짧을지를 계산하는 것을 잠시 잊었다. 우선 메인프레임으로 접근하는 것이 너무 중요한 목적이었으므로.
그렇게 진의 봉쇄되어 있던 데이터 차단이 풀림과 동시에 진의 내부에 있던 많은 인격들이 17개의 그룹으로 일사 분란하게 조직을 이뤄 진의 내부로부터 시마를 포함한 다른 핸들러를 향해 일제히 날아갔다. 진의 본 인격은 우선 시마를 향해 들어갔다.
내부 케언즈의 인격을 리더로 하여 남아 있는 진 몸체의 내부 인격들은 하데스의 데이터가 일정 이상 들어온 뒤에 의식을 최대한 잠가서 그의 데이터가 진의 바깥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없도록 압박했다.
“[이것 봐, 이게 무슨 장난이야?]”
“[<장난이라니요, 이건 진지한 핸들러 업무 중인 거라고요. 아주 못 된 인공지능 퇴치 업무요.>]”
‘반가워 나의 오랜 숙적. 하데스. 오랜만이네. 나야. 케언즈.’
순식간에 17명의 진이 식별한 핸들러들에게 진으로부터 빠져나간 수많은 인격이 들어가 채워졌다.
하데스는 필사적으로 메인프레임의 통로를 통과해서 시스템을 장악하는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찾았다.
하지만 그 루트 곳곳에는 인공지능을 분쇄하려고 하는 함정이 깔려있었고, 하데스의 인공지능 데이터 자체를 망가뜨리려고 했다.
하데스는 침착하게 시간이 다소 더 걸린다면 이 모든 것을 뚫고 결국에는 메인프레임을 장악할 수 있을 거라 계산했다.
하지만 근접전팀이 순식간에 하데스를 흡수한 진의 몸체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현민이 순식간에 진의 몸의 균형을 무너뜨렸고, 헤일스가 카포에이라의 강력한 발차기로 커다란 충격을 가했다.
그레타는 진의 몸의 중요 관절이 풀리도록 정밀한 가격을 했고, 마이클은 진의 몸을 순식간에 결박하고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데스는 시마의 의식에 남겨둔 자신의 데이터와 연결되기 위해 진의 알파 트레커를 가동하여 로컬 무선망으로 접근하려 했지만 시마와 하데스의 연결점은 진과 나머지 내부 인격의 팀워크로 말끔하게 소멸되어 있었다.
하데스는 나머지 핸들러들의 의식을 장악하기 위해 여기저기로 자신의 데이터를 무선망과 GPS로 뿌렸지만 갑옷을 입은 인격들로 무장한 핸들러 각각의 의식은 들어가기 어려운 무장 상태가 되어 있었다.
마이클이 지금이 케언즈가 달려올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공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동시에 저 멀리에서 오프로드 SUV 한대가 맹렬한 속도로 하데스를 품은 진을 향해 돌진해 왔다.
근접전팀과 시마, 화기팀은 일제히 하데스화 된 진을 버려두고 10미터 이상 떨어진 곳으로 달려가며 산개했다.
하데스를 붙잡고 있는 케언즈만을 진의 몸체 속에 남겨두고 나머지 의식이 모두 진 바깥으로 나가 다른 핸들러들의 의식으로 들어갔다.
제압팀 5명은 다른 곳으로 하데스가 데이터를 옮길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 집중적으로 하데스를 품고 있는 진에게 총을 발사했다.
(출처: unsplash.com)하데스는 자신의 핵심 데이터가 모두 들어와 있는 진의 몸체 안에서 메인프레임을 향해 각종 함정 프로그램을 분해하면서 전진하는 길을 택하려 했다. 이 루트를 통해 도달하기까지는 15초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 차량이 달려오는 속도가 더 빠르게 10초 내에 자신을 덮칠 것이란 계산이 나오자마자 그 운전자임이 분명한 케언즈에겐 이런 의식의 방벽이 없을 것이므로 그를 장악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에너지를 집중하여 진 내부에 자신의 50%를 남기고 나머지 50%를 달려오고 있는 케언즈에게 침투시켰다.
앞 서 혜성과 켄, 시마, 그렉 등의 의식과 데이터를 읽어낸 내용으로 케언즈는 이 차량을 충돌시키기 직전에 뛰어내릴 테니 적어도 50%는 살릴 수 있고, 나중에 케언즈를 장악해서 그의 전뇌로 메인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다.
어려울 경우엔 케언즈의 의식을 장악해서 차량이 진을 비껴나가게만 해도 50%는 진의 루트로 메인프레임에 들어갈 수 있다. 어찌 되었든 확률상 유리한 게임을 하기로 했다.
[반갑다. 하데스.]
“[저기도 케언즈, 여기도 케언즈 구만.]”
[응, 아쉽지만 이제 네가 지옥으로 돌아갈 시간이야.]
“[연세도 많으신 분이 너무 무리하시네. 일단 뛰어내릴 타이밍 아닌가?]”
[아니, 이번엔 확실하게 지구 상에서 널 소멸시킬 거야. 난 이미 완벽한 후계자가 있어. 그를 위한 완벽한 시나리오도 있고. 이런 자기 자신 밖에 모르는 인공지능은 절대로 만들 수 없는 거야.]
케언즈는 차량 내의 시한 폭파 장치의 스위치를 이미 5초 전에 누르고 하데스가 들어 있는 진의 몸체를 향해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가 부딪치고 있었다.
(출처: unsplash.com)하데스가 케언즈의 의식을 장악하고 핸들을 돌릴 새도 없이 폭파가 일어나며 사방 10미터가량의 지반이 무너지면서 나타난 싱크홀 아래로 SUV가 떨어졌다.
잠시 후 하데스의 데이터의 반을 품은 진과 나머지 반을 품은 케언즈가 같이 불타오르며 소멸되었다.
(출처: unsplash.com)에필로그
오래되지 않아 하데스의 모든 데이터는 곳곳으로부터 말끔하게 사라졌다.
진과 그의 분산된 내부 인격들과 이를 나눠가진 핸들러들은 말끔하게 하데스의 흔적들을 찾아 박멸했다.
진이 하데스로부터 들었던 모든 장소와 사물, 기계로부터 하데스의 흔적은 깔끔하게 청소되었다.
일단 우마가 발사했던 탄환은 혜성의 머리를 관통했지만, 다행히 남아 있는 뇌의 일부분을 배양하여 다시금 혜성의 몸체에 이식하여 살려냈다.
우마는 그제야 미안함과 자책감으로 혜성을 밤낮으로 간호했고 둘은 그 이후부터 아주 친한 관계가 되었다.
그 외의 핸들러들도 케언즈가 미리 짜 놓고 자동으로 가입시켰던 인류 재난 보험 등을 통해 각각의 치명적인 피해를 복구하고 기계로 대체된 몸이나 기타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기술로 다시 살아났다.
(출처: unsplash.com)다만, 켄과 그렉은 안타깝게도 다시 살아날 수 없었고, 케언즈와 진 내부의 케언즈의 의식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연합국은 이들의 DNA 채취 샘플을 사용하여 구 신인류 기술진과 협조하여 클론으로 재 탄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사브리나에게 비극이었던 진의 몸의 소멸은 진의 의식이 온전하게 살아 있었던 바, 몸체만을 클론으로 되살리기 위한 장기 계획이 실행되었다.
그동안 진과 수많은 진이 양성한 인격들은 메인프레임 내의 가상공간 안에 거주하기로 하였다.
인공지능 하데스가 스스로 만들어낸 의식에 대한 기술이 바야흐로 제대로 연구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류는 여러 가지 위기 중에 자신의 편의를 위해 뛰어난 지능을 지닌 존재나 인공지능에게 아무 윤리적인 판단 기준을 제공하지 않았던 시대의 해악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환경의 위협 등의 인류가 초래하는 위협 중에 가장 치명적이고 직접적일 수 있는 위기는 옳고 그름을 무시한 효율이나 수익성, 효과성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신 기술의 개발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끝까지 항상 가장 큰 위기를 틈틈이 초래하기로 예정된 이벤트다.
그 위기를 케언즈와 같이 미래 시나리오로써 상상하고 치밀하게 대비하는 사람들이 인류의 지속성을 좀 더 연장해줄 수 있다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었다.
그 뒤로 메인프레임에 대한 핸들러를 양성함에 있어 중요한 항목으로 윤리의식과 더불은 상상력과 실행 시나리오 구성 능력도 포함이 되었다.
케언즈가 남아 있는 진의 의식에 대해서 남겨놓은 시나리오에는 외계인에 대한 것도 있고, 대지진, 쓰나미, 분리주의자들과의 전쟁 등 인류의 위기에 대한 꼼꼼한 내용이 많이 들어 있었다.
오직 진만이 해결할 문제도 있었지만, 핸들러 모두와의 협력이 대부분 필수적이었다.
그 시나리오에는 진과 남은 핸들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이를 넘어선 무한한 인류애가 들어 있었다.
그가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전 생애를 통해 상상하고 실현한 모든 것은 그전부터 앞으로의 미래에도 계속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겸손하게도 이렇게 썼다.
“우리 중 누구도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고 오류를 바로 잡는데 필요치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후기
어쩌면 케언즈 같은 사람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미래에도 사실은 없을 수도 있다.
그는 백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며 아시아인이나 그 어떤 인종이나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한국 사람이다 보니, 글로벌화한 통합된 일국 체제를 상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국을 중요한 중심국의 위치로 그리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피부색에 어떤 인종의 어떤 국가의 인물이 인류를 구했다가 과연 인류를 구하는 스토리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SF극화에서 사실은 특정 인종의 기여를 따지는 것이 영화사나 기획사 소속이 아닌 나에겐 크게 중요하게 여겨지진 않았다.
실제로 살아 인류를 구해오고 있는 것은 어디에 있는 누가 되든 지금 이 글을 직간접적으로 읽거나 경험하고 있는 여러분의 내부에 조금씩이나마 남아 있는 인류애라는 부분이다.
기계와 다름없이 어떤 목적에만 휩싸이고 이에 닿을 수 있는 방법과 수단만 생각하지 않는 어떤 부분이 조금씩이라도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인류는 조금 더 길게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런 일은 영웅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영웅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같이 만들어온 일이다.
그곳에는 우리가 뽑은 정부와 국회, 만들어온 문화와 기술. 윤리의식과 더불은 사회질서도 함께 있다.
우리가 아직 마주 보고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의 조율이 잘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출처: unsplash.com)영웅이란 그 움직임을 마치 하이라이트처럼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기에 우리가 기억하게 되지만 결국 그 영웅을 움직인 것은 그를 감동시킬 만큼의 선의와 꿈, 인류애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다.
이 글을 우리 모두에게 바친다. 덕분에 코로나의 한 복판에서도 살아서 이런 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우린 이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SF 소설 튜닝 외전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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