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버스와 더불어 외계인 스토리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난장판의 끝장
(사진 출처: IMDB)
영화 리뷰를 하던 서평을 쓰든 간에 내가 우선 가져야 할 것은 자기라는 필터를 통해서 걸러낸 후에 자기 안에 남아 있는 것을 우선은 자기 자신에게 정리해서 남기고 그것을 다시금 글로 남겨낼 의지다.
선후 관계란 걸 명확하게 하기가 좀 그런 것이 사실 대다수의 글은 내가 써보기 전까지는 솔직히 이해라고 할만한 것을 내가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쓰이곤 한다. 쓰는 과정에서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 글 전체의 내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때론 더 크다.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직간접적인 경험을 하고 나서 그 과정에서 어떤 것이 남아 있는가를 확인해야만 직성이 풀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은 쓸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 경험을 겪기 전에 미리 예습하고 겪는 과정에서 해석해서 명확하게 하며, 회고하는 과정에서 확실한 결론과 연결시키거나 또 다른 경험과의 연속성을 가질 수 있도록 재정리해둔다. 내가 그런 이라면 아마도 굳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쓴 이후에 대가가 주어지는 글이 아니라면.
손으로 움켜잡은 뒤에 흘러내리는 물이나 모래를 제대로 잡거나 쥘 수 없어서 그 아주 일부라도 붙잡아 보려고 하는 무의식적이기도 하고 의식적이기도 한 습관이 대가가 있건 말건 오랜 내 것이 되었다.
어느 순간 내부에 쌓여버린 내용물을 밖으로 배출하는 작업이기도 하고, 그 작업을 통해서 의식의 비중을 더 크게 만들어내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이다. 기억력과 사고력을 가다듬으며 감성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런 경험을 글로 옮기려 하는 중에도 그 경험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쓰는 작업을 위해서 떠올리기가 망설여지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 작품 중에는 내 이해력의 한계를 벗어난 것도 있고, 반대로 이해할만한 가치도 없는 것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에 본 "베놈: 라스트 댄스"는 어떤 작품이었던가? 이해력의 한계를 벗어남과 동시에 이해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동시에 뒤엉키면서 진지하게 이해하고픈 영역이 작아진 기묘한 난장판의 끝장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것이었다.
원래는 연재 일자에 맞춰서 어제 이 작품에 대한 리뷰를 올리는 것이 맞았겠지만 밤중에 잠시 쓰다가 말다가 망설임의 시간이 길어졌고, 이제야 이 글을 마무리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냥 지우고 이전에 봤던 다른 작품인 "와일드 로봇"에 대한 내용을 쓸까도 고민을 하다가 결정했다.
개봉작품이니 이 작품에 대한 내 의견을 남기는 것은 아주 많은 분은 아니지만 이곳에 들러서 영화를 볼까 말까에 대한 단서를 잡아가는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쓰려는 것은 물론 혹평이 맞지만 그 혹평 속에서 오히려 봐야겠다는 단서를 잡아갈 분도 있을지 모른다.
위에 사족 같은 글을 길게 쓴 것은 의도를 지니고 있다. "베놈: 라스트 댄스"를 보기 전까지 여러 쿠키 영상을 통해서 간을 보듯이 "베놈"이 "MCU"와 연결될 것이란 기대감을 일으켰던 것을 흉내내서다.
이미 "심비오트"가 "스파이더맨 트릴로지 3편(2007)에서 "토비 맥과이어"가 연기한 "스파이더맨"에게 들러붙어서 나온 장면으로 뿌린 "밈"이 잔뜩 뿌려져 있기 때문에 "스파이더맨"의 팬과 "MCU"의 팬은 진지하게 크로스 오버가 다시 일어나길 기대할만했었다.
나도 그러한 이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쿠키 영상 몇 편에서 "톰 하디"의 "에디"와 결합된 "베놈"이 평행 우주를 건너 뛰어다니며 같은 술집에 나타나 자신의 넋두리를 늘어놓는 이야기가 반복되었다.
"톰 홀랜드"의 "스파이더맨"의 유니버스에 다른 유니버스의 "스파이더맨"이 "노웨이 홈"에서 나온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이미지를 지난 2021년 이후 유지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2024년에는 "베놈" 유니버스가 나오거나 "스파이더맨"이나 "MCU"히어로와 얽히는 것을 기대할 만도 했다.
후속 편은 거침없이 물량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 온 것이 통상적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베놈 1과 2"를 다 합쳐 놓은 것보다도 훨씬 큰 물량과 확장된 스토리를 그리고 있는 것은 맞는데, 기대하고 있었던 것을 충족시키는 것과는 뭔가 핀트가 잘 맞지 않는다. 일부러 그러고 싶진 않았겠지만.
평행우주를 여러 차례 오가다 결국 돌아온 우주 한 곳의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고 제멋대로의 칵테일을 마시고 취한 "베놈"과 "에디"가 술집을 떠난 뒤에 벌어지는 "개장수" 일당과의 싸움은 너무 작위적이기 그지없어 나중에 한입에 하나씩 이 일당 각각의 머리가 "베놈"에게 먹힐 때 일어난 감정은 끔찍함이다. 여기에 익살이 들어가거나 정말로 천벌을 받아 마땅한 악당을 처단한다는 느낌이 안 난다.
윤리적인 올바름이나 정의, 이런 것을 그리라고 만든 시리즈가 아닌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의 전개가 뭔가 찝찝하고 불쾌한 느낌이 더 강해지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보니, 1편에 비해서 훨씬 더 만족스러웠던 "앤디 서키스 감독"의 2편이 감독의 힘으로 잘 제어되어서 잘 만들어진 수작이었단 생각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한다. 1편과 2편의 각본가 "켈리 마리셀"이 감독이라 이렇게 된 듯하다.
사실 1편의 엉망진창 그래픽과 스토리를 2편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났기 때문에 자기가 맡아 제작한 히어로물 시리즈를 완전히 망치거나 용두사미로 만들기 일쑤인 전설의 빌런 제작자 "아비 아라드"가 제작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하게 만든 것은 "앤디 서키스"였음이 3편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이 영화의 흥행 포인트를 올린 것은 배우인 "톰 하디"도 혼란스럽기 그지없이 양만 많은 "그래픽"도 아니다.
어디가서든 새로운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편의적으로 유리한 환경으로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감독이 영화에 도입한 것은 괜찮은 판단일 수는 있었지만 1과 2편의 흐름과 제대로 연결되지도 않고 유머러스한 "베놈"의 매력을 살리는데도 실패했다.
"베놈"이 라스베이거스의 도박장에 갔다가 "첸부인(누군지? 1-2편의 관객인 나는 기억도 안 난다)"을 우연히 만나 그의 방에서 추는 춤은 뜬금없다. 중국 자본이 들어와서 넣은 장면인 건지, 중국 관객을 위한 서비스인건지. 이 여자 배우가 돈을 내고 이 장면을 억지로 밀어 넣은건지.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여기에서 “베놈”으로 변해서 무리하게 춤을 춘 탓에, 변신했을 경우에만 추적이 가능한 “제노페이지”가 찾아오도록 해서 다시금 스토리를 난장판을 만들고자 했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맥락도 어긋나고 모든게 납득과는 거리가 먼 전개일 따름이라 어색할뿐이다.
"외계인 연구 지역인 에어리어 51"이 폐쇄되는, 엉망진창이고 지구에 침투해 있는 "베놈"을 찾아 박멸하려고 움직이는 군대가 있는 이 세상이 왜 이따위가 된 건지 설명이 잘 나오지도 않고, "닥터 스트레인지"의 세계를 끌어들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싶었던 그 세계관의 빌런인 "모르도"를 맡았던 배우 "치웨텔 에지오포"가 심각하기 이를 데 없는 "렉스 스트릭랜드 장군"으로 등장했지만 연결은 없다.
초반에 "에디"의 신변을 위협하는 악당에게 "베놈"의 모습을 드러내서 위협하려고 했던 장면에서 베놈의 안쪽에서 드러나는 "에디"의 얼굴을 반쪽만 드러내는 그래픽은 그 촌스러움이 1990년대의 아동 특촬물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다. 기술이 부족하면 이를 드러내지 않도록 만드는 조명의 마술이나 장면 전환의 마술도 부릴 수 있었으련만. 실전 경력이 부족한 각본가에게 감독을 맡긴 것이 문제였으리라.
여기에다 다른 세계로부터 이 멀티버스에 침입해 온 "제노페이지"는 "바퀴벌레"를 떠올리게 만들법한 혐오스러운 벌레의 형상을 하고 사람이 되었든 "심비오트"가 되었든 가리지 않고 상어처럼 겹겹의 이빨을 지닌 입속으로 밀어 넣어 삼키는 무지막지한 괴물이다. 보면 무서움보단 끔찍함이 몰려온다.
고공에서 일반여객기의 지붕에 타고 날아가는 "베놈"을 잡으려고 지상에서 한방에 날아올라 직선으로 그 비행기에 올라가는 엄청난 활동 능력과 더불어 아무리 자르고 분쇄해도 조각조각이 다시 이어 붙어 살아나는 터미네이터 T1000급의 재생 능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막판에는 여러 연구원과 결합해서 여러 개의 "심비오트 패밀리"와 싸울 때는 시간내 스토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인지 갑작스럽게 그 놀라운 운동력과 재생 능력이 너프다운되며 "에디"에게서 떨어져나온 "베놈"에게 여러마리가 한꺼번에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서, 대왕 꼰대 빌런 제작가 "아비 아라드"씨가 상영 시간에 맞춰 극이 끝나야 하는 시점을 압박하고 당겼을거란 혐의를 피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긴장감이 사라지고선, 갑작스럽게 "베놈"과 "에디"가 부서진 헬리콥터에서 대화를 나누며 여러 괴물이 느릿느릿 다가오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 느슨한 장면을 보여주려면 왜 그렇게 괴물의 능력을 끝 간 데 없이 강하게 그렸던 것일까 싶을 정도가 된다.
마지막의 뻔히 예상이 되었을만한 결론이 나는 지점에서 느낀 것은 "감동"도 아니고 "쾌감"도 아니고 "승리감"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 난장판의 유치원 미취학 아동이 멋대로 만든 것 같은 "데이비드 에이어 감독"의 "수어사이드 스쿼드"와 더불어 최악의 영화 중 하나인 "모비우스" 이후 최악의 작품이 "아비 아라드" 제작 하에서 또 한편 만들어졌는데, 그 끝에 이르렀다는 "후련함"이 더 강했다.
"주노 템플"이 연기한 한 팔이 없는 박사 연구원 "테디 페인"이 "심바오트" 생명체와 결합한 상태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베놈" 캐릭터 "에고니"로 살아남았고, 한 팔이 없던 몸에서 팔이 생긴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난장판에서 서사를 제대로 제공 못한 터라 후속작에 나올 것 같단 느낌이 없다.
결국 "톰 하디"의 "베놈"을 이 작품을 통해서 완결을 내고 그 어떤 "MCU"의 작품이나 "소니 픽처스"의 "스파이더맨"과도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한 채로 극을 마무리 한 셈인데, 이러고도 끝 부분에선 마치 무언가가 더 연결되어 나올 것 같은 인상을 제공하고 있다.
쿠키 영상마저도 난장판이다. 두 번째의 쿠키 영상이 사실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에디"와 "베놈"이 술을 마시고 나간 뒤에 군인들이 들어가 잡힌 다음에 갇혀 있던 술집 주인이 사방팔방 무너지고 황폐화된 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면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모습이 마치 나인 것 같았다. "여긴 어디? 난 누구?".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가 된 그 심정. 이 영화가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