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애니, 마당을 나온 암탉의 해피엔딩 버전, 기시감을 낯섦으로 바꿈
(그림 출처: Universal UK)
이 "와일드 로봇"이란 애니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0월 초 "유니버설 스튜디오 할리우드"에 입장해서 여러 놀이기구를 타다가 투어 버스에 타서 돌던 중에 보게 된 포스터뿐만 아니라 입구에 들어가기 전의 상점가에서 본 프로모션용으로 설치된 홍보물 때문이었다.
얼핏 보자마자 살짝 떠오른 것은 "천공의 성 라퓨타"였다. 전작 티비 애니매이션에서 히트한 "코난"과 "라나"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다른 주인공 커플이긴 하지만, 거대한 물질문명의 전설을 얹고서 극화가 진행되고 더 나아가면 갈수록 잊힌 전설의 고대 테크놀로지가 인류를 멸망까지 몰고 갔던 과거를 생생하게 회상하는 실제감에 다가가도록 만든 애니다.
여기에서 하늘을 날아다니며 무엇이든 절단하고 불태워버릴 수 있는 강력한 레이저 광선을 뿜는 로봇이지만 "천공의 성 라퓨타"안에서는 오로지 성의 정원과 자연을 보호하는 한가로운 일을 프로그래밍한 대로 하고 있는 천진난만한 듯한 존재로 변해 있는, 팔과 다리 부분이 가제트화되고 유연하지만 견고한 몸체에 무기를 가득 담고 있는 "로봇"의 원형은 다름 아닌 이것이다. 물론 내 인생에 한정해서.
그렇지만 그 로봇에 비해서 이 "와일드 로봇"인 "로숨 7134"는 굉장히 말이 많고 서비스 중심적인 존재로서 가정용으로 만들어진 채로 야생의 생물들이 모여 있는 한 섬에 불시착한 뒤에 동물의 실수로 인해 조작이 되어 우연히 활동을 시작하면서 "미션"을 섬에서 찾아 헤매는 고지식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굴러다니다 뭉게 버린 새의 둥지에서 여러 개의 알과 더불어 있었던 어미 또는 아비 새였을 생명체마저 소멸시킨 "로숨 7134"는 깨지지 않은 알을 하나 발견하고 이것이 부화하여 나온 새가 자신을 엄마로 각인하고 따라오는 일을 겪게 된다. 이제 미션을 하나 제대로 얻는다.
그것은 추운 겨울이 되기 전에 더 따뜻한 나라로 이동하는 철새인 이 새가 얼어 죽지 않도록 같은 철새와 함께 비행하여 더 따뜻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양육하고 비행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알을 먹으려고 날뛰던 여우를 막던 중에 아기새를 공동양육하는 관계를 맺게 된다.
여기까지 보다 보면, 언뜻 적지 않은 한국 관객은 자신의 심금을 기대 이상으로 울리면서 잔잔하게 모성을 담은 새드엔딩으로 마무리된 "마당을 나온 암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자신이 마당의 닭 우리에서 사는 삶을 거부하고 야생으로 나온 암탉이 야생의 철새를 키워서 날아갈 수 있게끔 만든 뒤에 공동 양육이라기보다는 호시탐탐 주변을 맴돌면서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암탉"이 "철새 아들"을 다 키워서 날려 보내길 기다렸다가 날아간 뒤에 눈물을 흘리며 본능을 보이는 "족제비"의 이야기도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와일드 로봇"은 훨씬 더 디테일한 스토리와 더불어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졌던 "로봇"이 야생 생명체를 위한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마음"과 "감정"을 가진 존재로 진화하고 엄마로서의 모성을 발휘하여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자신을 내던지기까지의 과정을 "마당을 나온 암탉"보다 훨씬 더 감성적이고 복잡하면서 감각적인 방식으로 풀어갔다.
관객이 성인이던 아이이던 극화의 끝까지 애니메이션의 흐름을 따라 계속 따라가서는 끝에 다가올 감동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든다. 여러 우여곡절이 벌어지지만 이 와일드 로봇은 단순히 자신의 야생 철새 자식만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만 하는 것이 아니다.
섬의 모든 야생 동물을 위해 괴력을 발휘해서 희생하며 자신을 공장 초기화시키기 위해 섬을 찾아와 야생동물에게 해를 끼치는 자신의 동료 로봇이자 인간의 이기심이 만든 프로그램과도 싸우며, 갑작스럽게 찾아온 너무 낮은 기온의 추위를 맞아 겨울잠을 자다 위기를 맞은 동물을 한곳에 모두 모아, 서로 노아의 방주에 모인 생명들이라도 된 듯이 본능을 누르고 서로를 도와 지키는 존재로 변모시키는 기적도 만들어 낸다.
그 무엇보다 놀라운 기적은 이 로봇이 초기화 과정을 겪은 뒤에도 마음을 갖고 자신의 생각과 기억을 그 마음으로부터 다시 회복해 내는 후반부의 내용이 전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극화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AI의 발걸음과 인간에 점점 근접하는 로봇의 등장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 누르며 약간은 낙관적인 느낌으로 끌어주는 듯하다.
하지만 기업의 수익 우선 주의라는 것을 "악"으로 다루는 것은 ET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않았고, 어찌 보면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토로된 야생의 존재가 서로 본능을 누르면서 서로를 돕고 이해하는 존재가 된다는 판타지의 허구성을 아이에게 떠오르게 해주는 역할을 하기를 기피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여러 면에서 아주 극소한 일부가 될지도 모르지만 관객의 현실을 호도한다.
이런 약간의 옥에 티를 제하자면 최근에 나온 그 어떤 애니메이션과 비교해서도 떨어짐이 없는 재미와 훌륭한 메시지, 영상, 목소리 연기를 가득히 담은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감동적인 애니메이션이다. 언제 보든 대안 가족까지를 포함한 가족의 사랑을 다룬 극화를 좋아하는 이에겐 분명히 즐거움을 가져다줄 작품이다. 그런 분들이라면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