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장면의 참혹함이 배가되고 조세핀과의 관계 내용이 섬세해지다
(출처: uhdpaper.com)
처음의 내용을 잠깐 보다가 압도적인 편견에 빠져서 재미없을 거란 선입견에 보지 않고 놓아두었던 애플 TV의 "나폴레옹"을 다시 볼 생각을 했다. 이유는 이 작품이 대작임이 분명해서였다.
"디렉터스 컷"을 보고자 한 의도는 없었다. 왜냐면 그냥 개봉했을 때도 보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죠커"를 통해서 줏가가 오른 "호아킨 피닉스"가 "나폴레옹"역을 맡고, 여러 블록 버스터에서 갖가지 성격과 배역에 "미인" 역할로 최근 부쩍 등장이 잦은 "바네사 커비"가 "조세핀"역을 맡았다.
이후에 개봉된 "조커_폴리 아 되"에서는 "레이디 가가"가 "호아킨"과 공연을 했기 때문에, 대략 띠동갑 무렵의 여배우와 연속해서 두 작품에서 로맨틱한 관계의 연기를 한 그는 전성기 중에 있다.
이 두 개의 작품 중에서 무엇이 더 흥행이 잘 된 작품인가 하면, 투자비가 각기 다른 영화이긴 하지만, 예상했던 바나 기대했던바와는 다르게 "나폴레옹"이 더 상대적으로 나은 흥행을 했다.
"토드 필립스"감독이 극에서의 주도권과 배역상의 비중을 "조커"에게 크게 주고서 "호아킨"의 연기가 거의 원맨쇼에 가깝게 이뤄질 수 있도록 했을 때의 흥행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많은 영향력을 감독이 가져와서 좀 더 감독 중심의 주제와 메시지로 밀어붙인 작품의 흥행이 전작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토드" 감독의 "조커 1편"만큼 높은 흥행을 올려본 적은 없지만 오랜 역사 동안 대작을 만들어 항상 중박 이상의 흥행을 통상 올리고, 혹 못 올리더라도 자신의 작품의 작가주의 작품으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오래가는 존재감을 갖도록 만들어온 "리들리 스콧"은 "나폴레옹"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냈다.
"죠커"에서 보았던 "호아킨"을 "나폴레옹"에서 보게 되면 과연 이 사람이 같은 배우가 맞을까 싶을 정도의 색다른 연기를 하는 그를 볼 수 있다. "엄근진"한 자세를 유지하며 유머는 아주 적게 나온다.
그것은 그만큼 "호아킨"이 때와 장소, 극의 성격, 공연할 배우, 보게 될 관객 등등의 요소를 충분히 고려해서 무엇이 자신이 맡은 배역에 어울리는 연기인지를 확실하게 알고 자신을 변신시키는데 능수능란한 배우이기 때문이다.
"리들리" 감독의 영화 중 최고 히트작인 "글래디에이터"에서의 인상적인 빌런 "황제"의 역할을 생각해 보자면 당시의 히어로였던 "러셀 크로우"의 전성기가 작품 개봉기 이후 끝나고 사라진 뒤에도, 여전히 높은 존재감을 갖고 영향력을 키운 "호아킨"은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의 생존사를 찍고 있다.
"나폴레옹"을 다룬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을 군데군데서 여러 번 봐왔고, 그의 이야기가 포함된 "워털루 전투"는 "아바"의 "워털루"란 곡을 전 세계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했다.
뛰어난 영웅으로서 유럽을 거의 대부분 정복하다시피 하고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는데, 그 이후에 "러시아 침공"에 실패하고 유배지 "엘바섬"에서 돌아온 뒤에 다시 시도한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과 프로이센의 연합군에 맞서 싸우다 패배한 뒤에 다음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는다.
이런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때로는 "나폴레옹"을 빌런의 모습으로 그리는 영국이나 러시아 등의 다른 국가의 관점에서 나오기도 했고, 영웅 스토리 자체로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나폴레옹"을 프랑스의 관점에서 영웅으로 그린 글로벌 프로젝트는 희소하다.
그런데 미국 "할리우드"의 "리들리" 감독이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그리는 대작을 만들어 냈다면 그곳에 어떤 필연성이 있는 것일까? 물론,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전쟁을 지원한 국가가 프랑스였으므로 그 나라의 영웅을 띄워주는 극화를 만드는 것은 미국에 일종의 "보은"의 의미가 있긴 하다.
그러나 통상 미영 또는 영미로 맺어진 혈맹 관계 비슷한 역사를 구축해 오고 수많은 스파이 극화에서 영국 정보부와 미국 정보부는 공조하는 관계로 나오며, 나치를 향해서 같이 투쟁했던 아군 역할도 영국군과 미국군 간에 더 많이 압도적으로 나타난다. 흥행을 저조하게 만들 요소는 희박한 필연성 같다.
하지만 "리들리" 감독은 자기 자신만이 가진 필연성을 기반으로 "나폴레옹"이 단순한 정복자나 황제를 넘어서 복잡하고도 모순된 인간이라는 점에 주목했었고, 야망과 사랑, 배신 등의 인간 간의 갈등과 암투의 요소 등이 풍부하게 있어 만들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동기에서 봤을 때 "호아킨"이 이 역을 맡은 이유는 복합적이고 모순된 이를 연기하는 데 있어서 최적화된 배우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미 "죠커"역을 통해서 극단화되고 복잡화된 심리를 널뛰기를 하듯이 훌쩍 넘어 다니는 연기력을 보여준 그이기에 여기선 복잡함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호아킨"이 이 작품에서 잘 드러내 보여준 연기는 "나폴레옹"이 전기나 다른 작품에서 잘 드러내지 않았던 "죠세핀"에 대한 무한에 가까운 사랑과 그와의 사랑에 건 기대, "죠세핀"이 없이는 힘을 갖거나 놀라운 무용도 발휘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의 힘"이 인간에게 작용하는 모습이다.
지구가 그간 더 삭막해지고 삶이 더 복잡해졌으며,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한 내용도 이제는 감정적인 교감을 인간적으로 그리기보다는 보다 냉철한 조건 간의 조합을 그려내며 더 복잡한 플롯을 이룬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과거로 무대를 옮겨서 마치 그 과거에는, 황제의 신분을 갖게 되는 전쟁의 영웅 장교가 혁명의 와중에서 살아남기 위해 감옥에서 모르는 남자의 아이를 갖고 살아남은 뒤에는 매춘을 하다가 사교계로 올라온 신분이 천한 여자가 만나서 이루어낸 순수한 사랑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역사적 실체를 정확히 추적해 들어간 다큐멘터리는 아니고 관객으로부터 감동을 낳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므로 "나폴레옹"과 "죠세핀"의 관계는 사실 그렇게 로맨틱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알려진 결혼 초기의 "죠세핀"의 잦은 외도와 "황제"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기에 이혼을 하고 나서도 "나폴레옹"과의 관계를 죽는 날까지 유지했던 내용은 극화 안에 빠짐없이 살아있다.
"호아킨"이 연기하지 않았고, "바네사"가 충분히 "나폴레옹"같은 영웅이 완전히 빠져들 만큼의 아름다움과 더불은 매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둘 간의 로맨틱한 관계를 그럴만하다고 느끼긴 어렵다. 그만큼 이 두 사람이 보여준 중심이 되는 연기가 잘 이뤄졌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이 둘만의 로맨스가 잘 나온 게 이 영화의 장점이라면 흥행은 크게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리들리" 감독의 여러 영화에서처럼 여기에선 인간과 말의 신체가 잘려 나간다거나, 포탄과 총탄 등을 맞아 군인이 죽는 장면, 기요틴에 머리가 베이는 장면, 얼음 강 밑으로 잠기는 씬이 사실적이고도 구체적으로 나오며, 어설픈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 아닌 현실적인 질감을 제대로 지닌다.
시대에 맞는 고증이 제대로 적용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시대에 맞는 복식과 더불어, 비참과 결핍, 무지와 결합된 행위, "황제"라고 하면 충성하며 목숨을 거는 군인의, 이 시대엔 보기 드문, 어찌 보면 맹목적인 의리와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그려지고 있다.
러시아에 쳐들어 갔다가 46만 명의 군인을 잃은 대패와 다시 복권하고자 치렀던 "워털루 전투"에서의 패배 장면 전까지 그가 승승장구하는 전쟁씬은 매우 통쾌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프랑스 국민"의 관점에서 그의 군대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관객의 감정 이입 상태를 제대로 만들어 낸다.
극 중에 러시아인끼리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러시아어"를 서로 사용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프랑스군"이 거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쓰는 단위는 "마일"이라는 미국 단위다. 철저하게 미국 관객이 극을 보는 동안 자국 이야기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런 요소가 극을 재미있게 보게 만들어 주었고, "디렉터스 컷"을 통해서 48분이나 되는 시간을 늘려서 "리들리" 감독이 관객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알게 만들었다.
마지막 장면 이후에 뜨는 자막으로 "나폴레옹"이 1803년부터 1815년까지 벌인 전쟁에서 죽은 "나폴레옹" 진영의 군인은 총 300만 명이었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리들리" 감독은 나름 흥미진진한 전쟁물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웅인 자가 전쟁터에 끌고 들어가 죽인 엄청난 인명을 보여줌으로써 전쟁의 참화를 인류가 다시 겪어선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처럼 보였다.
1차 대전이나 2차 대전으로 무기 기술이 발달되고 첨단화하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방법과 전술 등이 개발되어 왔다. 2차 대전 후반기의 "독일"의 "소련 침공"때 소련 진영에 참여한 군인 중에 사망/실종자는 770만 명이고 독일군 진영의 사망/실종자는 350만 명이었다.
마치 전쟁이란 것이 국가적 자존심이나 정치적 위상의 상향, 국토의 확대를 위해서 하면 좋은 것이다라고 생각할만한 사람이 적지 않게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지 않고 멀리 떨어져 살아온 지금의 세대는 전쟁의 해악을 잘 모른다. 터진 뒤에 벌어질 비참함을 잘 알 수 없는 것이다.
"나폴레옹"은 그의 관점에서는 "프랑스"를 위해 헌신한 군인일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를 믿고 따라가 전쟁터에서 죽은 수없이 많은 군인을 생각하자면 그는 "영웅"이라기 보단 자신의 공명심을 충족시키고 로맨스를 나누는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기 위해 수많은 죽음을 일으킨 자다.
"리들리" 감독이 그런 의미에서 연쇄 살인마 "조커"의 배우인 "호아킨"을 "나폴레옹"으로 캐스팅한 것은 혹시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