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보부의 역사적인 퍼즐을 풀어 맞추다
(포스터 출처: Rotten Tomatoes)
이 시리즈가 시즌을 거듭하면서 힘이 빠지게 될 거란 예상을 계속 벗어나고 있다 보니 애플 TV를 프로모션용의 일정 기간 무료로 볼 수 있게끔 해주는 그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있다.
두 번의 프로모션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아이폰 13"에서 "아이폰 15"로 갈아탈 때 "애플 Music"과 "애플 아케이드"를 포함한 각 3개월과 6개월의 프로모션이었고, 이번에는 몇 년 전에 이사를 하면서 샀던 "LG 스마트 TV"란 애플의 파트너 업체 제품에 대한 3개월간의 프로모션이다.
두 번째의 프로모션에는 "LG 스마트 TV"로는 "애플"의 게임을 다양하게 소화할 기능이 없으므로 "애플 아케이드"를 제외한 "애플 TV"와 "애플 Music"에 대한 프로모션이 이뤄진 것인데, 얄팍하게도 각각 3개월로 프로모션 하는 것처럼 쓰여있는 내용과는 다르게 서비스 입력 과정에서 "애플 Music"의 기간이 2개월로 갑자기 단축되어 있었다.
이런 얄팍한 변경이 없어도 두 가지 서비스 다 유료 연장할 마음은 사실 없었지만, "애플"의 뭔가 다른 업체 대비 자신이 되게 불친절하고 막대해도 자기 제품을 구매하는 고충성도 소비자를 양산하고 이들로부터 높은 수익을 뽑는 기업 태생이다 보니 그 얄팍한 상술에 대한 저항감이 더 커진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애플" 제품을 안 쓰기 시작하면 주변 변심자들과 동일하게 가진 모든 애플 제품을 통째로 다 바꿀 것이 예상된다.
더 이상의 프로모션은 없을 거라 생각했을 때, 이번 2번째 프로모션 기간 중에 보게 된 "모나크"와 "나쁜 원숭이", "슬로 호시스 시즌 4", "울프스" 등은 "애플 TV"로 보는 마지막 작품이 될 예정이다.
이중에 가장 재미있고, 나중에라도 그리워질 작품은 단연 "슬로 호시스 1~4 시즌" 전체다.
그 외의 작품을 총평하자면 아래와 같다.
"모나크"는 "고질라"의 개봉 영화 대작 사이에 위치해서 최신 개봉 영화 "고질라 X 콩:뉴앰파이어"의 충실한 광고 편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마지막 편이 "용두사미"로 변해서 흥미진진함이 순삭 되었다. 시즌2가 나오지 않는다면 본 기억이 얼마 안 가 사라질 것 같다.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지만.
"나쁜 원숭이"도 몇 화 보지 않고 극찬을 하다시피 했는데, 마지막 회에 이르러 "용두사미"로 흐르고 남아 있는 인물의 구성이 과연 시즌 2로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만을 남긴다. 사라질 듯하다.
"울프스"는 본 뒤에 바로 악평을 남겼으나 흥행이 그렇게 많이 떨어지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보려고 "애플 TV"에 가입할 만큼의 매력적인 소식은 아니다.
이중에 처음부터 초지일관 기대감을 남기고 이를 끊임없이 충족하면서 후속 편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배가시키는 작품은 "슬로 호시스 시리즈"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그러니까, 그보다는 못하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이 기준이므로 "그게 말이 됩니까? 스누피 시리즈도 엄청 재밌다고요!!"라고 해도 그건 내가 열심히 볼만한 취향의 작품이 아니므로 논외다.
시즌 1에서 잘 깔아놓은 판은 시즌이 바뀌면서 한두 명의 낙오자 집단인 "슬로 호시스"의 요원이 죽고 나서 뒤바뀌어도 극의 품질이나 밀도에 큰 지장이 없이 계속 잘 연결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핵심적인 배우는 결국 "허허실실" 전법으로 쓰레기 같은 냄새를 뿌리며 구멍 난 양말과 더불어 빨아 입지 않은 옷과 씻지 않는 몸으로 방귀를 수시로 뀌어대는 배 나오고 의욕 없는 홈리스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치밀하기 그지없는 썩은 물 스파이로서의 "잭슨" 반장을 연기하는 "게리 올드만"이다.
그가 없다면 이 작품은 어쩌면 기획단계조차 없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츤데레처럼 팀원을 아끼는 군데군데 감동스러운 리더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가스라이팅하고 욕보이길 좋아하며 하대하기 일쑤인 것이 위태위태한 리더십. "게리"말고 이걸 누가 할까?
이런 이미지로 변신을 해도 시청자들로부터 반전이 있을 거란 기대감을 사라지지 않게 하고 믿음감과 더불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토리를 따라가도록 만드는 것은 "게리"의 전작, 대표적으로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서 보여준 집요함과 더불은 유능한 스파이의 이미지다. "잭슨"이 과거의 자신의 유능한 업적으로부터 뻗어 나온 위기나 해법을 찾아내는 과정이 설득력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뉴비로서 호흡을 맞추는 어리숙한 느낌을 주지만 강한 집념과 체력과 완력을 지니고 절대로 녹록지 않은 유능함을 종종 발휘하는 "리버 카드라이트"역의 "잭 로던"도 우여곡절 끝에 합을 맞춘다.
물론, 상존하는 서브 빌런으로서의 MI5 조직 내에서 오랫동안 활약하고 "국장"같은 최고위직까진 이르지 못해도 "고인 물"의 내공으로 "잭슨"과 상호 교류하며 "슬로 호시스"를 이용하면서도 그 능력에 농락당하기도 하는 부국장 "다이애너 터버너"역의 "크리스틴 스콧 토머스"의 연기 내공도 상당하다.
이런 중심 배우의 열연이 상당한 비중의 존재감을 가지고 극의 분위기를 흥미진진하게 잘 만들어주기 때문에, 기타 조연이 죽어서 다른 배우로 바뀌고, 시즌이 바뀔 때마다 다른 감독이 작품을 맡아도 그 매력도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해 주고 재미를 증폭시킬 수 있다. 물론, 원작 소설의 힘도 세다.
계속 보다 보면 "영국"의 첩보물 스토리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결합해서 영국계 배우의 힘으로 뛰어난 결과물을 계속 만들어 내는 이른바 산업적 경쟁력을 목격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썩어 문드러진 정보조직의 현실을 드러내고 부패한 정부요인이 정보기관에 영향력을 미치려 하다가 격퇴당하는 반정부적이고 반자본적인 스토리가 들어 있어, (인구 비중상 99%인) 중산층 이하에게 어필하는 구조다.
시즌2에서 "잭슨 램"과 팀원, "MI5"가 맞이하게 된 과거의 러시아 스파이로부터 오랜 세월을 건너뛰어서 다가오게 된 도전에는 "잭슨"의 원인 제공도 일부 포함되어 있다. 그 과정을 밝혀가면서 두뇌게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각 회의 내용은 매편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을 정도다.
이 과정에서 실제 극에서의 비중이 낮은 배역인, 잡일을 하는 무능한 낙오자의 집단에서도 잡일이랄 수 있는 서류 업무나 하던 나이가 "잭슨"과 비슷한 수준으로 많은, 독거 여자 노인인 "캐서린"은 정보부에서 고위 스파이인 국장의 비서일을 하던 경력과 취미인 "체스"기술로 팀의 생존을 돕는다.
시즌3에서의 밀고당기고 엎치락뒤치락하며 맞붙는 수많은 긴장된 스토리는 본부에서 "슬로 호시스"팀과 주도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욕심을 가진 이들 간의 총격전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팀 내에서 화력적으로 도움이 되는 남녀 캐릭터의 눈부신 활동이 이어지는 장면은 액션 장르에 준하는 총격전의 화끈함을 선사해 주었다.
기억에서 점점 더 시즌 2와 시즌 3을 봤던 기억은 맹렬하게 멀어지고 있지만 그 기억 속에 담겨 있는 정말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시즌 4를 거리낌 없이 보게끔 만들었다.
시즌 1~3에서 손자인 "리버 카트라이트"의 할아버지이자 왕년의 고위 "스파이"로 냉철한 조언자로 나오던 "데이비드 카트라이트"가 갑자기 "치매"와 "정상"을 오가는 깜빡깜빡 정신과 기억을 잃는 이로 나오면서 집에 잠입한 자객으로 오인을 해서 "리버"를 쏴 죽인 내용이 충격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시즌 1~3에서 탄탄한 연출을 경험하지 못한 시청자였다면 이해가 불가할 정도로 "리버"의 시체를 확인하러 온 "잭슨"은 그 시체가 "리버"가 맞다고 새로 온 MI5의 여직원에게 "거짓 증언"하는 것이 극이 점점 더 증폭하면서 재미있어지는 지점이다. 이미 시청자는 "잭슨"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모를 수가 없지만 그 과정에서 팀원들에게도 "리버"가 죽은 것처럼 연막을 치는 것이 백미다.
알고 보니 집에 칩입했던 자객은 "리버"와 비슷한 생김새를 지닌 남자였고, 그 외모를 이용해서 "데이비드"의 집에 들어와서 자살이나 병환으로 위장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던 인물이었고, 그가 속한 단체는 "데이비드"가 젊은 시절 그의 딸을 볼모로 잡아서 비밀 암살조직을 구축한 인물인 "프랭크"("휴고 위빙"이 사이코 패스급의 살인자를 연기한 배역)가 지배하고 있었다.
"휴고 위빙"은 적지 않은 성인 시청자에게 "매트릭스"에서는 "스미스 요원"이라는 절대악의 컴퓨터 프로그래밍된 에이전트로서도 기억이 각인되어 있고, "반지의 제왕"에서는 요정의 왕인 "엘론드"로 극단적인 악과 천상적인 선을 위화감 없이 소화한 영국/호주 배우로서 "게리"를 압도하는 연기력을 이 작품에서 선보인다.
왜 압도하는 연기력인지는 단 한 장면에서 제대로 드러나는데, 자신의 조직의 암살자로 키워진 자를 가스라이팅하면서 몸을 아끼지 않고 자신이 죽이라고 시킨 인물을 마치 터미네이터라도 된 것처럼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개의치 않고 쫓아가 죽이는 일을 하고 실패할 경우엔 수치심을 느끼게끔 만드는 심리적인 조종을 말로 하는 역할을 굉장히 설득력 있게 해내는 장면이다. 이것이 압권이다.
시즌 1~4까지의 빌런 중에서 "휴고 위빙"이 해낸 역할에 해당할 정도의 압도적인 악역을 수행해 낸 배우는 없었다. 스타워즈의 유명한 클리셰인 "내가 니 아비다"는 그의 입이 아니라 아들 된 자의 입에서 나온 것인데, 그 아들에 대해서 아무런 애정이 없는 찐 "사이코 패스"를 설득력 있게 연기할 수 있는 현존하는 배우는 그와 "앤소니 홉킨스"나 "호아킨 피닉스" 정도밖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다.
"애플 TV"에는 정예의 우수작이 많은 대신 전체적인 작품의 수는 적다. 그만큼 가입해서 봤을 경우의 가성비가 좋을지 나쁠지에 대해서는 고개가 갸우뚱거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만약에 한 달 동안 최소한 "파운데이션 시즌 1과 2"와 "슬로 호시스 1~4 시즌"을 보게 된다면 돈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아니, 단 하나의 드라마 시리즈 "슬로 호시스"만 봐도 충분히 본전은 건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취향에 따른 것이고 때리고 뚜드려 부수는 영화가 좋다면 "아마존 프라임"의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권하고 슈퍼 히어로물을 찾는다면 당연히 "디즈니 플러스"다.
낸 돈 대비 다양한 시도와 더불어 인생의 영상 작품에 대한 범위를 한껏 넓히고 싶다면 "넷플릭스"도 괜찮고, 한국 작품을 더 보고자 한다면 아직 망하지 않은 OTT 서비스들이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다시 단 하나의 드라마 시리즈만 골라서 매일 정주행 하라고 한다면 내가 택할 드라마는 오로지 "슬로 호시스"다. 그런 의미에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