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일상인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고 포기하지 않게 도움을 주다
(표지 출처: Apple.com)
많은 사람이 몰리고 좋아하는 스토리는 해피앤딩에 계속되는 성공을 그려내는 것일 것 같지만 적지 않은 경우 새드앤딩에 처참한 실패를 다룬 작품이 훨씬 더 크고도 긴 생명력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 이유를 난 이 지구상의 그 어떤 인간도 무조건 하루하루가 성공적이기만 한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고 때로 엄청난 실패와 더불어 패배의 기간이 길어지는 경우를 적지 않게 겪기 때문이라고 본다.
흔히들 금수저 급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멀쑥하게 큰 키에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와 더불어 좋은 머리에 화려한 언변술, 패션감각과 매력적인 성품을 갖고 있으면 매일 즐거울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란 책이 다루고 있는 위인인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원래 승리자로서만 그려져야 마땅한, 유복한 집안에 천재적인 머리와 언변, 이 문과를 오가는 지식, 카리스마를 동반한 설득력과 리더십을 가진 인물로서 "핵폭탄"을 자신과 같은 천재를 모아서 만들어냈지만 양심적인 동시에 계속 생각하고 반성함으로써 성찰을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는 "죄"와 권력자의 눈밖에 벗어났다는 "괘씸죄"로 "빨갱이"로 몰려 갖고 있던 권력과 권위, 명예를 한순간에 잃었다.
이 책을 원본이다시피 참고해서 만들어진 영화인 "오펜하이머"는 지리멸렬하게도 벌어진 "빨갱이"로 모함을 당한 그를 "슈트라우스"가 자신의 패거리와 이른바 "우파"로 불리는 권력자를 총동원해서 추락시키는 "공개" 및 "비공개" 청문회의 이야기를 축약하여 결론을 "오펜하이머"가 핵의 개발로 인해 맞이하게 된 한 발자국 더 빨리 다가온 종말을 기시감을 느끼며 떠올리는 장면에서 끝난다.
하지만 그 잘 넘어가지지 않는 책장을 넘기면서 본 책의 내용은 뒷부분에서 사실 더 무서운 "연좌제"란 결론을 보여준다. 한번 "빨갱이" 딱지를 단 집안의 가족이 되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과 능력을 지녔다고 해도 국가에 등용받고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차단당했던 시대를 보여주며, 고난에 빠져 비틀거리던 부모로부터 필요한 때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크지 못한 "오펜하이머 부부"의 딸인 "토니"가 자살하면서 끝났고 여기에 대해선 더이상의 설명도 붙지 않을 정도다.
1950년부터 2000년까지 일간지에서 연재된 4컷 연재만화인 "피너츠"는 얼핏 "오펜하이머" 일가가 맞은 비극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패자"라는 키워드로 엮이는 것 같았다.
그 작품을 쓴 "찰스 M. 슐츠"의 삶과 더불어 만들어진 그 작품에는 "스파키"라고 불리면서 너무 수줍어서 주변 사람과 제대로 얘기도 나누지 못했고 연애에서도 큰 실패를 겪은 적이 있는 이의 삶이 녹아있다고 그가 자기 입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다름 아닌 주인공인 "찰리 브라운" 캐릭터가 바로 "어린 실패자"이고 자신을 그린 거라 해서다.
또한 "피너츠" 안에서는 그 어떤 캐릭터도 사랑에 성공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마치 유년기 시절 대다수의 우리가 이루어지지 않을 이를 그리며 짝사랑에 빠지고 그다지 좋지 못한 연애의 대상과 깨어진 기억을 갖고 살아가는 현실처럼 그려냈기 때문임을 공감하는 인터뷰도 나온다.
인생에서 각각의 승리자라는 타이틀을 필요로 하는 경연이 벌어질 때, 종종 보란 듯이 자신을 드러내며 트로피 같은 보상을 받는 위치에 있는 이가 적잖이 있지만 그들의 유년기로 돌아가자면 적지 않은 시간 솔직하게도 어린 그들은 실패자의 위치인 땅바닥에서 구르곤 한다. 넘어지고 구르는 "찰리 브라운"이 적어도 "피너츠"를 본 사람에게는 공감과 사랑을 받는 인물이 되는 이유는 거기에도 있다.
애플 TV에는 수많은 "스누피"와 "피너츠"의 다른 주요 인물을 주연으로 해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올라와 있는데, "스누피"라는 귀엽기 그지없는 캐릭터의 작품은 더 귀여운 "우드스탁"과 더불어 있기에 몇 편 아이와 같이 봤지만 이 다큐작품이 있는 것을 보고서는 몰랐던 "찰리 브라운"에 대해서 알고 싶어진 바가 있어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선 그가 만화가와 밀접한 인물임을 잘 알게 되었다.
물론, 단지 4컷의 만화로만 머물러 있었다면 "피너츠"는 지금 이 순간까지 누리는 놀라운 인기와 생명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애니메이션으로도 나오면서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아주 고령의 "베이비붐 세대"와 현재의 "밀레니엄 세대"까지를 아우르는 긴 수명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익히 잘 알만한 "드류 베리모어"같은 배우를 포함한 다양한 연령대의 유명인사 등이 "찰스"와 그들이 본 "찰리"를 포함한 "피너츠"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야기 하는 것을 보면서 즐거웠다.
"애착 담요"를 들고 다니는 "라이너스"는 캐릭터 중에 "찰스"가 갖고 있는 철학적인 면을 가장 많이 드러내며 만화에 깊이를 더했고, "루시"는 심술궂음을 강조했고, "페퍼민트"는 페미니즘과 더불어 여성인권이란 주제를 보여주고, "프랭클린"은 인종차별이 판치는 시대에 "흑인"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68년에 이 캐릭터를 그려 넣었을 때 "신문사"가 중단시키겠다고 해도 계속 그린 용기가 나온다.
이 작품의 캐릭터 하나하나의 탄생 비화와 의미 등을 보는 시간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졌다. 놀랐던 것은 이같이 위대한 예술가의 반열에 오를만한 작품을 50여 년간 연재하면서 죽는 날까지 단 하루도 휴가를 내지 않으면서 매일 만화를 그려왔다는 것이다. 만 여편을 훌쩍 넘게 그렸다.
원화는 직접 그리더라도 색상을 넣는 것은 다른 이에게 시키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찰스"는 색상을 칠하는 것까지 직접 했다고 한다. 이후에 대장암으로 인해 입원을 한 이후에도 그림을 그릴 때 선이 매끈하게 그려지지 않아 낭패스러워했지만 그저 후반기 작품의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이미 그려진 화들이 올라가다가 이후에 다른 사람이 이를 이어서 그리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마지막 최종화"가 지상에 발표되기 하루 전에 그가 죽었고, 그다음 날 마지막 화가 올라갔는데, 그가 은퇴를 선언할 때 나눴던 인터뷰에서 "계속 풋볼 공을 찰리 브라운이 차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는 말을 울음 섞인 표정으로 말하고 자신의 작품의 각 캐릭터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남긴 내용이 감동적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이 중에 하나는 "찰스"가 "잔인함"을 제외한 "인간성"에 대해서 제대로 그려낸 위대한 창작가였다는 평가를 했는데, 여기에 나 또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소년 기와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 노년기를 모두 거치며 아직도 그의 작품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보지 못하고 지나왔던 그의 작품을 최소한 애니메이션이라도 다시 제대로 찾아보리라 다짐해 본다.
"찰리 브라운"은 매일매일 어리숙하게 지는 소년으로 나오지만 동시에 포기하지 않으며 계속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실제 모습을 잘 담아내고 있다. 세상 일이 어려울 때 "피너츠"를 보고나면 힘을 어느정도 얻게 되는 데에는 이런 면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