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명작임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극화로 각색하기엔 어려움
50대 초반의 직장을 열심히 다니며 그 어떤 산업보다도 역사가 오래된 산업 중에 하나인 섬유 업계에서 신제품을 개발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렇게 오늘도 1999년 세기말 시기부터 26년째 웹상에 글을 써서 올리고 있다.
내 글이 보란 듯이 출판할만한 품질이 된다거나 경연 대회 등에서 상을 탈만한 품질이라는 자신감을 증명해 낼 만한 일이 벌어졌다면 더욱 열심히 잘 쓰고 있으리란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지구를 뒤덮은 2021년도에 2000년대 초반에 지인들과 썼던 공동 소설을 가져와 다듬고 완결을 시켜서는 여기에 올렸다(https://brunch.co.kr/@rpyatoo/284). 총 4부작으로 각부마다 40~60분가량이면 읽을만한 분량으로 올렸지만 정말로 가뭄에 콩 나듯 피드백을 받았다.
그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같이 쓴 다른 이들이 아닌 내겐 계속해서 "멋진 신세계"란 "올더스 헉슬리"의 작품이 떠올랐다. 사실 한 번도 읽었던 적이 없었지만 여기저기에서 그 책에 대해서 쓰여있는 글을 읽다 보니 마치 읽은 것처럼 느껴졌고, 그 같은 소설을 써보고 싶었던 게 당시 야심 같은 거였다.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은 내가 어렸을 적의 냉전 시대 전반에 공산주의의 통제 사회를 그리며 영상 실사화되는 데에도 성공했던 "조지 오웰"이 쓴 "1984"와 이 작품이 비교되곤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1984년도에 "백남준"씨는 "굿바이 1984, 굿바이 조지 오웰"이란 티브이 쑈를 하면서 그를 지구 밖으로 날려버렸다.
아래의 한국일보 기사를 보면 그 비교가 제대로 나와 있으며, 이렇게만 보면 꼭 "올더스 헉슬리"가 시대를 앞서서 엄청난 혜안을 가진 천재이자 현자처럼 느껴질 정도다.
어디까지나 두 가지 종류의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바, 공산 국가는 분명히 "빅브라더"가 철권통치하는 사회가 되었고,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는 어느 정도 "멋진 신세계"가 그려낸 사회가 되어있다. 그야말로 현대인은 자기 정보와 지식에 궤멸되어서 남의 정보와 지식을 듣거나 보지 안/못하고, 수많은 쾌락에 빠져 옳고 그름 같은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가르는 것을 기피한다.
현대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가 최근에 와서는 다시 전체주의적 성격을 띠거나 통상 양극단으로 나뉘어 거의 내전에 가까운 대립을 하고 있는 일이 벌어지는 배면에는 이와 같이 망가진 사회의 구성원의 파행이 따르고 있는 데에도 있다.
이렇게만 이해하고 SF소설을 일사천리로 당시에 지하철을 오가며 하루에 1시간씩 모바일폰으로 써서 마쳤는데, 아는 이에게 링크를 보내봐도, 예전에 같이 썼던 이를 찾아 보내도, 그 누구로부터도 피드백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사실 피드백이라면 "언젠가는 볼게"였던 것 같다.
암튼 내가 혼자 보기에는 그럭저럭 볼만하지만 다른 이에겐 와닿는 면이 없는가 보다 그러고선 후속 편을 쓰는 것도, 쓴 것을 다듬는 것도 잊었다. 하지만 왠지 본 것만 같은 기시감을 갖고 있는 작품 "멋진 신세계"는 꼭 읽어야겠다는 부채감이 있었는데, "윌라" 전자책으로 들어서 오늘 기쁘게 마쳤다.
남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준 이야기나 그림을 보는 것은 참으로 시간을 단축시켜 주고 효율적으로 그 책을 읽어볼 시도를 할 시간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 좋기는 하나, 1932년 "멋진 신세계"를 직접 읽고 듣게 된 순간 그 요약만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 없는 풍부한 서사와 의미를 가졌음을 제대로 알았다.
이 작품은 당시의 최첨단 문명이 그대로 진행되어 나갈 때 문명인과 야만족을 나누는 경계가 기존의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역전된 세계를 일관성 있게 잘 그려내고 있으며, 그 역전된 세계 속에서 사실 당시의 문명인이자 현재의 현대인이랄 수 있는 양식과 정체성을 가진 독자, 곧, 우리가 어떤 비극에 던져지게 될 것인가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에 야만족으로서 동물원의 동물 취급을 받으며 끝맺음을 하는 "존"의 비극이 와닿게 되는 것은 그 책의 내용에서 우리와 닮은 존재가 그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술이 광범위하게 퍼지던 시대의 강력한 분위기를 담은 듯 첨단의 과학 문명을 일으킨 이는 "포드"로 나오고 여러 곳에서 당시 상상력의 산물이랄 수 있는 신문명 기기는 "포드사"의 기술로부터 뻗어 나온다.
저출산 같은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도록 인간 생성 기술이 발달하여 "난자"하나를 확보해서 "정자를 결합하며 분열시키는 것이, 1,000명의 쌍둥이를 낳도록 해주기 때문에, 결혼 등을 해서 아이를 낳는 방식의 제도와 가정이 사라졌다.
태아 형성기부터 계급적인 조건을 나누어서 아이를 만들고, 조건반사적으로 행동하도록 교육하여 각 계급에 맞는 사고와 행동, 말을 하게끔 만들며, 집단 성행위를 장려하여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가벼운 성관계를 지속하도록 한다. "만인은 만인의 것"이란 문장을 강조하며 사람 간의 집착과 소유욕을 배제한다.
그럼으로써 불안감이란 것 없이 안정된 삶을 사는 사회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고, 서로 간의 더 소유하기 위한 분쟁이나 전쟁 같은 것이 없는 "멋진 신세계"를 만들었으니 이에 반대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이는 사회 밖으로 추방하거나 귀양을 보낸다.
야만족으로 불리는 이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이 문명사회에서 사라진 종교의식과 결혼, 임신, 육아 등의 전통적인 일부일처제의 삶인데, 문명인에게 이것은 야만적인 행위로 보이며, 이곳에서 배운 문화를 지니고 "멋진 신세계"에 들어가게 된 "존"은 자신이 사랑을 느낀 여자인 "레니나"가 자신에게 문명인의 방식으로 성교를 요청해 올 때 분노하며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한다.
열심히 듣다 보니 "올더스"가 이 작품을 들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은 당시의 급격하게 변화하고 바뀌고 있는 사회상이었을 거란 생각이 더 들었다. 금년으로부터 93년 전의 세상은 기계문명의 찬란한 확대로 인해 급변하는 세계에 대한 감수성을 당시 젊었던 작가에게 충분히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당시 현대인이자 그 대표성을 띠고 있는 자신을 페르소나로 넣은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문명에 대한 이단아이자 반항아지만 비겁한 면도 지니고 있는 아웃사이더와 일면 잘 적응하고 사회가 원하는 대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문명을 내면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헬름홀츠 왓슨", 전통적인 종교와 더불어 일부일처제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지닌 "존", 3인 모두인 것 같았다.
"존"은 극 중에서 계속 야만인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소설이 쓰이던 당시의 문명으로 보자면 야만인이 아닌 자이고 "셰익스피어"를 읽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양식이 있는 자다. 그러나 문명인이 사회의 안정을 목표로 해서 만든 시스템에 의해서 자신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본능과 독점욕, 지배욕 등이 부정당해야 하고,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문명인이 애도하지 않는 것에도 분노한다.
가장 마지막은 등대에 살며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먹을 것을 재배하고 사냥하는 삶을 살아가던 "존"이 매스컴과 대중으로부터 심한 관심과 놀림과 조롱을 집단적으로 당하는 기괴한 장면을 연출하고 찾아온 레니나에게도 존이 폭력을 가하며 황량한 결말을 맞는다. 이것이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결말이었으리란 생각이 들었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이것은 충격이라기보다는 바로 SNS를 통해서 종종 벌어지는 일이라 평범해 보인다.
보지 않았음에도 따라 했던 부분이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입실론...... 오메가로 인간의 계급을 나누는 미래 사회를 상정하는 것이었는데. "올더스"의 방식은 태어나면서부터 국가가 태아에게 적용하는 방식이라면 내 방식은 태어난 집안의 재산이 정해주는 면도 있지만 본인의 능력으로도 위아래로 움직이는 지구상의 정보 데이터에 접속할 권한과 속도가 계급 따라 다르게 정해져 있는 방식이다.
그런 정도의 생각을 지금 남겨서 하고 있지만 사실 듣는 내내 당시 사회 변화상을 제대로 포착하고 미래를 상상했으며, 사람 간의 생각과 행동 양식이 변해버린 문명에 의해서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종합적으로 세세히 그려낸 것은 분명히 천재의 영역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 감탄했다.
그의 다른 작품으로 20여 년간의 구상을 하고 5년간 집필한 작품이었다고 하는 "섬"을 구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전자책에 나와 있는 그의 연보에 있어서 처음 알게 되었는데, "멋진 신세계"를 4개월 만에 집필해 낸 지 30년 지난 후에 쓴 작품이기에 그의 천재성이 어떻게 무르익었을지를 확인해보고자 하는 뜻에서 꼭 보고 싶어졌다.
오래전에 쓰인 명작이다 보니 영화나 드라마화되었던 적이 있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별로 여러 번 이뤄지진 않았었다. 2020년에 "멋진 신세계"란 드라마가 "피콕"이란 곳에서 9부작으로 방영되었다고는 하는데, 시즌 1로 끝난 것으로 봐서 반응이 가히 좋지는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꼭 찾아서 볼 것이다. 그만큼 현대인에게 맞는 방식으로 각색하기 어려운 작품이기에 그 방식이 뭐였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