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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19. 2021

<서문_왜 이 공동 소설을 다시 살리려 하는가?>

공동 소설 조율의 시작과 오랜 중단, 다시 시작하는 이유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한 긴 이야기가 팔리지 않는 시대이다 보니, 서사적으로 늘어지는 글을 쓰는 사람은 정말 유용한 내용이나 정말 공감 가는 감성을 담지 않는 이상 허공에 외치듯이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스포트 라이트를 받고 온라인 세계에서 유명해지지 않는 글은 그 내용에 어떤 의미가 제대로 들어 있는지로 평가받기보다는 얼마나 조회 수를 잘 올릴 수 있는 화제성을 갖고 있는가 또는 기술을 갖고 있는가 등의 기준으로는 평가를 잘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 처한 것이다.


물론,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글을 늘여 쓰고, 미사여구와 현학적인 표현, 일부러 알아듣지 못하도록 만드는 정말 사기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을 정도의 문장을 쓰는 사람들은 이제 사라져서 어딘가의 마이너 그룹을 건설하고 그곳의 교주 노릇 정도는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사실은 이전의 시대가 받아들여주던 그런 글들의 대가들은 어쩌면 이 시대에는 그저 "노이즈"인 유효하지 않은 소음을 내다가 사라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러나 듣지 않기에 "노이즈"인 것이지 잘 들어보면 그 안에도 의미 있는 내용이 들어 있다. 다만, 이제는 누가 들어도 그저 "노이즈"처럼 들린다.


"클럽 하우스"에 잠시 들렀을 때, 빈약하고 조각 나기 쉬운 바삭바삭한 지식으로 살아가는 사람 앞에서 조금 잘 안 씹히는 딱딱한 지식을 가진 이가 폼을 잡고 이야기하는 것을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어 보았다.


좋다 표현의 자유. 더 좋다 개성과 사상의 자유. 아주 좋다 꼰대 없는 세상. 그러나 잘 팔릴 수 있는 달변을 할 줄 안다면 어떤 소리를 지껄이던 상관없이 사람을 현혹해서 먹고살 길을 찾을 수 있는 아주 원초적인 시대적 퇴행이 이뤄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뒤로 클럽하우스 같은 곳엔 들리지 않는다.


뭐가 사이비고 뭐가 정통인지, 무엇이 제대로 된 원류에 있고 뭐가 뻗어나간 가지고 뭐가 헛소리인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이른바 보편적으로 잘 세워져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런 기준을 이야기하는 것을 끝까지 참을성 있게 들을만한 인내심이 있는 청중이나 독자는 많이 사라졌다.


재미있게 이야기하지 않는 이상 듣지 않는다. 개그맨(또는 개그우먼) 전용 프로그램이 공중파에서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간 것은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사람이 대부분 개그맨(또는 개그우먼)화한 상황에서 더 이상 개그를 점유하고 전문화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문학적인 깊이? 철학적인 사색? 치열한 현실 인식? 그런 내용으로 목소리 높여서 이야기하는 사람은 진작에 멸종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고급 바둑을 두는 단수 높은 그룹이 여기저기 점조직처럼 깔려서 기원에 가 있던지, 알파고에 의해서 산산조각났지만 그 아래에서 인간이라는 한계를 인정하며 먹고사는 엘리트 바둑계에 있는 것처럼 그 어딘가에 속해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을 것 같기는 하다.


너무나 정보가 많은 시대가 되고, 그 정보를 조합해서 서로 다른 관점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아졌다. 때로 그 정보는 촘촘하게 누군가의 머리에 잘 쌓여서 얼핏 고급 정보인 것처럼 포장되기도 하지만, 그 고급 정보가 이것저것 양념을 잘 뿌리고, 여기저기에 단편적으로 그럴듯하게 퍼져 있는 정보를 짜깁기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치열하게 쌓아 올린 지식을 자기화하고 조직화해서 재창조해낸 것인지는 정말 시간을 많이 기울이지 않고는 잘 알 수가 없다.


이런 세상은 이미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 예견되어 있다. 너무 많은 정보로 인해 오히려 혼동과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대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1932년도 작이므로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에 이미 지금의 세상을 예견하고 있는 소설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책 소개는 여러 번 읽었지만, 그 소설을 제대로 들고 본 적은 없다. 그런데도 그 책 소개만으로도 내겐 마치 그 책을 다 읽은 것 같이 착시현상이 남아 있다. 보지도 않은 그 책이 아마도 20여 년 전쯤에 어떤 모티브가 되었던 것 같다.


내게도 20여 년 전에 그런 내용을 써 내린 작품이 있었다. 혼자 썼던 글은 아니고 위키위키 공동체인 "노스모크"에서 알게 된 분의 개인 위키에 들어가서 같이 구상도 써서 올리고, 처음에 작성되었던 내용에 내 글을 붙여 올려보았다. 그 과정에서 몇 분 더 참여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내 마음대로 정보가 왜곡되고 의식이 조작되는 사회를 마구마구 쓰면서 달려가다 보니 다른 분들이 더 이을 글이 없어져 버렸다.


그 이유는 나와 같은 동기를 가진 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타인의 동기를 읽지 못했고, 내가 가진 동기를 이해시키지 못하고 글을 썼던 거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상태로 글을 마쳤고, 잃어버린 채로 십수 년 이상을 놓아둔 그 글은 그 지인분의 개인 위키가 자신의 카페를 홍보하는 위키로 변한 뒤에 결국 카페의 문을 얼마 전에 닫아 버리게 되면서 폐쇄된 그 위키와 같이 사라졌다.


"공동 소설 조율"이란 키워드로 글을 찾을 수 있었던 온라인 공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예전의 웹페이지를 다시 찾아가 볼 수 있는 훌륭한 또는 무서운 기재가 온라인에는 남아 있었다. 그때 썼던 분들이 동의를 할지는 이제는 잘 알 수 없지만, 이곳에 내가 다시 찾아낸 그 미완성 작을 올려보고, 다시 다듬어 보려고 한다.


만약, 가능하다면 그 글의 완결을 이 곳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다. 그 의미는 이러하다. 이미 90년 전에 예견되었고, 다시금 나의 의해서 변주된 이 세상의 모습이 무엇이었는지, 정말로 얼마큼 그런 세계가 이곳에 이뤄지고 있고, 더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갈 희망이 있는지 등의 "소설가로서의 질문"을 뿌려보고 싶다.


브런치를 잘 돌아보면, 왠지 "소설"은 잘 읽히고 있지 않다. 영상으로 볼 수 있는데 굳이 힘들여 텍스트로 극화를 보려고 하는 인구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미련이 남은 그 "소설"을 한번 더 되살려 보고, 그것마저도 더 진행이 안된다면, 다시 한번 소설과는 거리가 먼 삶을 그대로 더 길게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마케팅 일을 하면서 내가 길게 들어갔었던 굴곡진 비탈과 언덕길을 다시 한번 돌아갔다가 오는 것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것이 어설픈 바람이다. 그리고, 혹시 알겠는가? 누군가 이 길을 다시 걷는 법을 새롭게 알려줄지? 아니면, 같이 이 길을 걷게 될지? 만약 그때 그 글을 같이 쓰던 분들이 돌아와 다시 같이 쓰겠다고 한다면 흔쾌히 같이 할 것이고, 같이 쓸 마음은 없으나 저작권을 나눠 갖자고 한다면 그조차도 괜찮다(석, 까르페디엠, 헌터D, 김우재, 그 외 다른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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