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의 테스트
a. HH 테스트
레이저가 벽에 닿는 순간 자욱한 흙먼지가 타는 냄새와 함께 피어오른다. 진은 무너진 벽에 기대서서 숨을 고르다, 채 먼지가 가라앉기 전에 아직 쓰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벽을 따라 뛰어나간다.
테스트 응시생을 향해 발사되는 테스트용 레이저의 궤적은 먹이를 쫓는 표범의 이빨처럼 진의 뒤를 따라간다.
이번 테스트는 연합국 메인프레임 입출력자들이 1년에 한번 보는 정기 테스트다. 연합국에서는 개인 별로 부족하다고 평가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재테스트 해서 실력 미달자들을 탈락시켜왔다.
지난 3년간 사전평가에서 매번 진은 체력 부분이 부족하다고 평가되었고 그 때문에 H평가를 받게 되었다.
평가용으로 사용되는 레이저는 원래 강도가 많이 약화된 것을 쓰는데, H-Highest(Double High) 평가의 경우는 예외로 그 강도가 콘크리트 벽에 상당한 흠집을 낼 정도다. 진은 사실 그동안 H 평가를 피해 보려고 체력단련에 시간을 많이 투자했다.
그런데 정작 열심히 한 체력단련과는 상관없이 통찰력과 수리력, 프로그래밍, 언어영역의 성적이 사전평가에서 만점이 나오는 바람에 H 평가자로 조기 선정되었고 체력점수도 높아져 있어서 레벨은 자연히 Highest가 되었다.
진은 버려진 구 도시에서 함정과 수많은 레이저가 설치된 200여 미터의 길을 뚫고 나가 콘솔로 메인프레임에 접속해서 시스템 내의 오류를 수정해야만 했다.
진은 구르고 숨고 달리기를 반복해서 180미터 가량을 군데군데 무너져 있는 건물 외벽에 기대어 통과한다. 이제 지난 2번째 시험에서 레이저에 맞아 거품을 물고 쓰러졌던 바로 그 4차선 도로를 지나 전면에 위치한 건물 지하 3층으로 진입해야했다.
건물 상단에 설치되어 있는 테스트용 레이저를 피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다. 도로를 어떻게 통과하는 것이 좋을지 잠시 생각했다.
‘센서 교란으로는 4차선 도로 중에 일차선도 못 지난다는 걸 작년에 뼈저리게 확인했으니 ....... 최대한 사각으로 조금씩 이동하는 수밖에....... 레이저장치가 4층과 5층에 있는 것 같으니까 레이저가 설치된 건물에 가까이 접근하면 각도상 자동조준이 불가능할거야 아마도.......꿀꺽‘ 진은 침을 삼키며 혼잣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도로 위에 완전히 부서져서 외형만 남아있는 자동차를 엄폐물 삼아 전진하기 위해 조그만 돌을 몇 개 주워 정면의 도로 쪽으로 확 뿌리고선 자동차를 향해 뛴다.
“헉.......“
재빨리 뛰어 다가선다는 것이 그만 바닥에 깨져 있던 블럭 조각에 걸려 넘어진다. 넘어진 빈 공간으로는 레이저가 좌, 우에서 한 번씩 윙윙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공을 지나친다. 진은 불행중 다행으로 넘어지는 반동을 이용해 재빨리 몸을 굴린다.
간신히 자동차 쪽으로 몸을 옮길 수 있었다. 레이저는 아스팔트 바닥에 긴 상흔을 남긴다.
“에구에구. 겨우 옆 몇 걸음 옮기는 데 탈락 위기라니........ 이 정도 레이저 강도라면 급소를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Double High의 악명이 소문만은 아니었군...... 포기해버릴까? 아직 장가도 못 갔는데 이런 일에 목숨 걸 필요는 없잖아.......쩝"
입맛만 다시다가 돌멩이로는 센서를 속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보니 자동차 바퀴가 눈에 뜨인다. 그래 이거라면....... 연장이 필요할까 걱정하며 힘주어 당기니 '텅'하는 소리와 함께 그냥 떨어져 나간다. 자동차의 옆으로 살짝 밀어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센서가 반응하며 바퀴를 두들긴다.
'역시 크기 때문이었군. 그래 이거라면 건물 입구까지 센서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몰라.'
자동차를 살펴보니 바퀴가 하나 더 남아있었다. 마저 떼어낸 뒤에 두개를 일제히 다른 방향으로 굴린 다음 최대한 몸을 숙이고 전력으로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듣기 싫은 굉음을 내는 레이저는 바퀴를 말 그대로 뭉게고 있고 그 잠깐 사이 진은 건물로 진입한다. 건물 안에는 다행히 다른 대인공격용 장치가 없어서 비상계단을 통해서 지하로 내려간다.
미리 주어진 지도대로 지하로 내려가니 통제실로 들어가는 투명한 출입문이 보인다. 준비해온 만능 카드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기모드로 작동중인 메인프레임이 방한가운데 있다. 테스트를 위해 미리 점검해 둔 것 같다.
진은 무선 네트워크로 외부의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 접속해서 미리 만들어둔 해킹 툴을 메인프레임에 연결된 컴퓨터에 다운 받는다. 암호를 일일이 손으로 입력해보고 있어서야 지구가 쪼개질 때까지도 접속이 이뤄질리 없으니 프로그램을 써야한다.
프로그램을 돌리고 난 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운이 따라서 시작한지 10분 만에 첫 번째 암호를 알아낼 수 있었고 각기 다른 프로그램으로 비슷한 작업을 몇 번 더 하고 나니 3중으로 막혀있던 방화벽을 뚫고 루트 권한을 획득한다. 오류를 점검하고 하나 하나 수정한다.
(출처: Photo by David Pupaza on Unsplash)
그러던 중에 악성 바이러스 종류는 아니지만 불필요한 코드가 있는 것이 보인다. 메인프레임의 메모리에 상주하며 주기적으로 사용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프로그램이다.
'Where is the Truth?'라는.......
오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코드를 지우고 다른 오류들을 잡아나간다. 그 과정에서 진은 메인프레임의 입출력의 과정을 잠시 눈으로 스캔해서 내부의 데이터 저장소로 옮긴다. 일단, 이 정보는 스캔된 상태로 자신의 대뇌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해서, 다시 나중에 의식적으로 분석하기로 하고, 진은 훈련 기간 동안 자신이 습득한 기억 차폐능력으로 날 것 그대로의 정보를 좀 더 깊숙한 잠재의식의 내부에 봉인한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다. 지구의 모든 나라가 하나의 국가로 통합한 뒤 오랜 세월이 지난 이 지구엔 대량 데이터와 신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인류가 거의 대부분이다. 결합을 거부하거나 결합할 수 없는 부적합자는 바깥의 세상으로 추방되고 잠재적인 위협자로 간주된다.
그 중에서도 매년 이같은 특정의 시험 과정에서 뛰어난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은 이전의 시대에서는 극소수의 최상위 클래스만의 점유물이었다. 그러나 지금 진은 그같은 능력을 단지 먹고 살기 위해 우선 입증 해야만 한다.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나가면 해야하는 일을 배당받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