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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25. 2021

<1. “진”의 테스트>-d

커보키언의 탐색

1. “ 테스트


d. 커보키언의 탐색


"이상이 전혀 없습니다. 아니, 이상이 없는 정도를 떠나서 과도하게 좋습니다. 데이터를 보니 사람의 몸이 이렇게까지 완벽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군요. 수치로 표현하자면, 20억 분의 1의 확률에 달하는 것입니다. 오류 수정 시스템의 전뇌(電腦)를 담당하는 케언즈 박사를 제외하고서는 뇌 기능과 신체가 조화를 이루면서 이렇게까지 뛰어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케언즈 박사는 국가의 통합 이후 인류 전체의 네트워크와 인간의 신체를 통합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개발한 인류 최고 두뇌의 소유자다.


이후, 인공 지능을 글로벌 통합 네트워크 속에서 통제하고 관리했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오류로 인한 재난과 범죄를 막기 위해 자신의 뇌를 "오류 수정 시스템"에 직결함으로써 안정성과 확장성을 유지하고 있는 연합국의 사실상의 지도자 같은 존재였다.

(출처: Photo by Fakurian Design on Unsplash)


그가 그같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기 전까지 인류에게는 절체절명의 위기가 연쇄적으로 닥쳤다.


기온의 급격한 상승으로 인한 지구 사막화와 여러 종류의 전염병의 지속적인 변이 확장을 통한 감염 확대로 인류의 감소, 글로벌 정치 문화 사회적 퇴보에 따른 각 국의 자국 중심 주의 세력 확대로 인한 주요 국가 간의 빈번한 전면 전쟁, 특정 국가의 무기화된 인공지능이 그 국가의 적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말살코자 시도하다 가까스로 발견된 것 등의 굵직한 위기가 지구를 강타했다.


인류는 그대로 국가가 나눠져 있는 상태로 있는 이상 그같이 극단적인 위기를 각각의 정치 및 자본 세력의 이해관계로 뭉쳐 있는 개별 국가가 제대로 극복할 수 없음을 약 30%가량의 인구를 잃은 뒤에야 깨달았다.


케언즈 박사는 이 같은 시기에 인공지능 시스템을 제어하고 인류 말살의 위기를 극복한 동시에 유사한 일이 발생할 수 없도록 글로벌 네트워크를 투명하게 통합했다.


그리고 네트워크 상의 데이터를 인간과 결합하여 관리하는 "오류 수정 시스템"을 만들어 냈고 여기에 자신의 뇌를 연결했다.  

(출처: Photo by NASA on Unsplash)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당하거나 제거당할 수 있는 인류를 보호한 인물로 인식되면서 영웅시되었다. 그 이후 그의 사생활은 철저하게 비밀로 붙여졌으며, 언론이나 정보상에 그의 신변 정보는 정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완성한 메인프레임의 오류 수정 시스템에 관련된 활동에 대해서는 수정의 대상과 종류, 결과가 대중에게 월 단위로 노출되고 있다.


이 활동이 "인류의 존속"을 위한 활동으로서는 거의 완벽하기에 이의를 달거나 그 외의 대체자를 거론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신체가 노화되더라도 전자기적으로 뇌는 살아있게끔 만드는 연구가 진행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그에겐 엄청난 권력과 재산이 주어지진 않았지만 궁극의 위상과 불멸이 주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케언즈의 시스템에 반기를 들거나 그의 정치적 사회적 위상에 도전하는 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이들은 시스템 바깥으로 추방되고, 네트워크상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일종의 오류로써 수정된 것이다. 그들은 살아 있었지만, 네트워크에서는 "0"이 되었다.


커보키언의 표정은 아까의 침착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다. 과장된 경탄과 감동을 눈빛과 시선, 반짝이는 눈, 그리고 피부 근육의 떨림과 제스처로 보여주고 있다.


진은 거북하다는 듯이 원통의 벽을 톡톡 두들기며 말한다.


"이 원통이나 치우고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서커스단의 피에로처럼 발사대에 쑤셔 넣어진 기분이라고요. “


그제야 데이터가 나와 있는 화면에서 눈을 뗀 커보키언은 스캐너를 종료시키는 버튼을 눌렀다.


"당신은 초월명상이나 수도, 수련 같은 것을 해본 적이 있었던 것 같군요."

(출처: Photo by Anway Pawar on Unsplash)


"가사 상태에 도달할 수 있는 정보를 검색해서 이를 숙지하고 몸의 동작과 연계된 신체 반응에 적절히 집중시켰을 따름이지, 그전에 수련을 별도로 했던 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럼, 어떻게 심박과 호흡 수를 낮추면서 가사 상태에 단 10초 만에 돌입할 수 있었던 거죠?"


"제 신체에 연결된 알파 트랙커(무선 네트워크의 데이터와 연결되도록 하는 장치)를 통해서 검색한 데이터 내용대로 했을 뿐입니다. 아 물론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 자주 했던 가상현실 게임에서 요가 수행의 일인자인 '무사다난' 역할을 여러 번 하긴 했었네요."


진은 원통이 바닥 밑으로 꺼져감과 동시에 대기 속으로 완전히 자신의 몸을 노출시켰다. 약간 마른 듯한 몸매가 드러나자마자 형체 복원의 나노 섬유 의상이 다시 진을 약 10여 초 만에 감쌌다. 진은 알파 트레커의 키워드를 어금니를 세 번 깨물어서 작동시켰다. 그리고 입가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쉽게 나타나지는 않네요."


"놀라운 것은 평소에 수련도 한 적이 없는 진 님이 그 경지에 단 10초 만에 닿았다는 겁니다. 단지 매뉴얼과 정보만으로 그 경지에 닿는 사람은 고문헌을 뒤져봐도 신화로 나오는 인물 밖에는 없습니다. 지금 진 님의 신체에 연결된 알파 트래커로 아무리 검색해봐도 비슷한 사람은 신화 속에서 밖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진은 커보키언의 표정을 살피다가 말했다.


"커보키언씨, 말로는 대단한 일을 제가 해낸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지만, 전 사실 당신이 이것을 그렇게 대단치 않게 생각한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왜 그럴까요?"


"느끼다니요? 어떤 느낌이죠?


이번에는 아까의 장치가 작동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커보키언의 표정은 눈에 띄게 새하얗게 변한다. 이건 감정적인 신호를 통제하고 있는 장치 바깥으로 돌출되어 나온 그의 진실한 감정 같아 보인다.


"나는 당신이 당신의 생체반응이나 감정상의 변화를 감추기 위해서 작동하는 장치가 어떻게 움직이는가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어요. 당신은 분명히 감정적으로 상기된 반응과 더불어 나타나야 하는 대사를 엉뚱한 표정이나 감정상태와 함께 내뱉고 있어요. 이건 마치 부조리극이라든가 감정을 만들어내는 신체의 일부가 도려져나간 사람과도 같죠."


"내가 보이는 신체 반응을 주도면밀하게 감지할 수 있는 건가요 당신은?"


커보키언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이제는 주저앉기라도 할 듯이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를 못했다.


"왜요?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음, 물론,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보통은 그런 것에 일일이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당신처럼 황당한 위급상황을 겪은 사람들의 태도이기 마련이죠. 너무 고난도의 생명을 위협하는 테스트를 거치다가 누구라도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마저 통과하고 난 뒤에도 당신이 주도면밀한 자세를 유지하고, 그리고 내 생체반응을 살핀다는 것은...... 이건 내가 배워왔던 인류의...... 아니,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와는 확연하게 다른...... 그러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이에요. 맞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요가 수행의 최고 수준의 경지에 닿고 나서도 그런 것이 대단하다는 사실에 우쭐해지지 않는..... 그러니까......"


커보키언의 횡설수설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러니까, 당신의 예상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나 있는 게 저라는 얘기, 그걸 하고 싶은 거예요?"


"네, 네, 당신은 예측이 되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란 거예요......"


"그렇다면 나를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들의 행동을 당신은 일일이 다 예측할 수 있다는 그 얘기를 하고 싶은 건가요?"


진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시 자기 자신이 살아온 일상을 뻔하게 떠올려볼 수 있었다. 특히, 케언즈가 교수였던 시절에 그로부터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 거의 대부분이 케언즈가 말한 그대로 생활하고 그대로 움직이고, 그대로 대답하고, 그대로 모든 내용을  받아들였다. 그들이 그와 다른 생각을 말하고, 그가 예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진은 본 적이 없었다.


진은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그게 케언즈의 위대함이고, 그것을 넘어선 질문이나 생각을 갖게 되더라도 이를 가지고 그와 논쟁을 벌이는 것은 그다지 현명한 일같이 보이지는 앉아 침묵하기 일수였었다. 그런데, 이런 그의 생각을 친구들에게 말하면 놀라움을 보이는 반응을 잠시 보이던 친구들도 케언즈의 수업 한 번이나 일루미네이션 공원에서의 유희가 끝나고 나면 금세 이전과 똑같이 무덤덤하고 예측하기 너무 쉽고 순수한 사람들로 돌아가버리기 마련이었다.


"커보키언, 당신의 정체는 도대체 뭐요? 나는 내 생각하는 방식이나 관찰 방식 또는 행동양식이 너무 평범해서 항상 하품을 하곤 하는 사람이에요. 물론, 내 친구들보다는 내가 좀 더 빠르고, 좀 더 많이 외우고, 좀 더 재기 발랄하고 예측 불허한 면이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당신처럼 경악하는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에요."


커보키언은 순간 자신에게 전달되어 오는 텔레파시를 들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다소 차분하면서도 단호하게 외쳤다.


<진을 죽여라>


주저 없이 커보키언은 이미 팔 속에 내장되어 있던 머신건을 피부조직 위로 돌출시켜 진을 겨눈다. 약 0.5초 정도의 시간이 이 과정에 흘렀을 뿐이었지만, 진은 그 순간을 천천히 흐르는 영화 속 슬로비디오처럼 바라볼 수 있다. 수소연료 폭파를 앞두고 도로에 갱도를 만들기 위해 뛰어다닐 때부터 그런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커보키언의 뇌 속에 떠오른 강력한 명령어를 순식간에 같이 들을 수 있었다. 진은 커보키언을 순식간에 밀치며 사정없이 머신건이 돌출된 팔을 잡아 격투기 용어로 '암바'라고 불리는 자세를 취한다. 우지끈 소리를 내며 통째로 금속체의 팔이 꺾이면서 커보키언은 바닥에 나뒹군다.


(출처: Photo by ThisisEngineering RAE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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