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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26. 2021

<2. 케언즈의 일상>-a

케언즈의 수업

2. 케언즈의 일상


a. 케언즈의 수업


"생명의 기원."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40대 초반에 이미 경영학과 경제학, 문화인류학, 진화심리학, 사회심리학, 사이버 범죄학, 생물학, 수학, 프로그래밍, 뇌의학, 공학, 스포츠 의학에서 각각 박사 과정을 수료한 통합 챔피언 같은 이미지의 케언즈 교수는 큰 글씨로 칠판에 이 같은 글자를 썼다.

(출처: Photo by Sigmund on Unsplash)


바로 앞의 수강생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이버 강의에 참석하고 있는 수백만명의 학생들에게 기초적인 교양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 현장 수업을 듣는 이는 전 세계에서 추첨 방식으로 뽑혀온 어찌 보면 운 좋은 인재다. 대학교 같은 형태로 존재하는 이곳은 케언즈 교수가 실시간 무선 네트워크로 결합되어 있는 "메인 프레임"의 서버가 있는 장소로. 굳이 이전 시대의 방식으로 이름 붙이자면 "메인 프레임 허브 대학(M.F.H. University)"이었다.

(출처: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이들은 거의 대부분 인류의 위기와 재난을 방지하고, 정보의 보안 상태를 감시하면서, 세계의 모든 곳에 다 갈 수는 없는 케언즈가 요청하는 경우에 전 세계 각지의 "메인 프레임" 지점에 가서 정보 입출력 및 오류 수정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는 이로 양성되고 있었다.


이들에 대한 종합적인 교육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국가가 하나로 통합된 시대에서 지역, 인종, 성별, 인맥 등의 요소가 영향을 미치면서 인재를 키워간다면 다시금 인류는 그런 요소에 의해서 분할될 수 있으므로,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은 공평무사한 추첨 방식으로 합의되었다. 단, 130명만이 당첨된 수강생이었다.


누가 그 입출력자 과정을 밟아갈 수 있을지 최소한의 요건은 높게 설정되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교육생으로 선정되는 것은 10년 단위의 추첨 결과에 달려 있었고, 이중에 10년 후 마지막 과정까지 완료하고 합격이 되어야만 그 일을 할 수 있었다.


탈락자에겐 재수강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3회 이상 탈락하게 되면, 다른 길을 찾아가야만 한다. 그 길은 살던 지역으로 돌아가 케언즈 교수의 강의를 재전파하는 일을 하거나 다른 직업을 찾을 수 있는 교육과정을 다시 밟아가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만 과학적으로 밝혀진 내용들에 근거해서 추측할 수밖에 없어. 초기 원시 수프 형태의 바다에 번개 같은 고전압 방전이 일어나 유기물이 형성되고 이 유기물이 생명이 되었다는 기원설이 있는가 하면 동종의 무기물에 인력을 가지는 무기물이 퇴적되면서 유기물이 포함되고 그래서 생명으로 발전했다는 가설도 있지. 오늘 여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는 이유는 우리가 과거에 어디에 어떻게 있었고 현재 모습은 어떠한지 알고 있다면 좀 더 현명하게 미래를 예측하거나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야."


이제 갓 입학한 학생인 진은 수줍은 듯이 머리를 긁적이며 바로 케언즈의 앞에서 손을 들고 말했다.


"과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2주 전 수업에서는?"


엉뚱한 듯 들리는 질문에 몇 명의 학생이 웃음을 터뜨리고 모니터 저 편에서 케언즈와 진의 편으로 나뉘어서 이모티콘을 던지며 각각을 조롱하는 이야기가 나오는 가운데, 케언즈 교수는 담담하게 강의를 진행했다.


"생명의 시작, 목적, 지향점 등은 이성을 가진 존재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일이지. 저마다의 답을 내리기도 하고 말이야. 유명한 철학자들이나 위인들은 각자의 대답을 가지고 생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아. 그 편이 좀 더 보람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자 그럼 이 문제에 대해서 각자의 대답을 구해오는 것이 이번 시간 숙제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 숙제는 분량, 형식의 제한이 없어. 다만 쓸데없는 내용을 구구절절 많이 썼다고 생각되면 내가 읽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감점을 할 테니 그렇게 알도록."


그것이 진과 케언즈의 첫 대화였다.



각 수강생의 이름은 여러 지역의 문화에 따라 지어진 방식으로 달고 있었지만, 각각의 학생의 인종, 지역, 성별, 성적 지향, 취미, 성향 등에 대해서는 일체 불문했고, 네트워크 상에서 높은 보안 등급으로 노출 방지가 되어 있다.


케언즈 조차도 각 수강생의 개인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진"이 미국인인지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아프리카인인지 등을 정확하게 알 길은 일반 대중에겐 완벽할 정도로 막혀 있다.


그런 최첨단의 보안과 윤리, 규정이 적용되는 곳이지만 실제 이곳은 강의실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정돈되지 않았다. 벽에는 대자보를 연상시키듯이 메모지가 잔뜩 붙여져 있었고 가운데 둥그런 탁자가 있었다.

(출처: Photo by NeONBRAND on Unsplash)


인류의 오류를 수정하며 정리하는 시스템에 연결된 케인즈가 정작 자신의 주위를 정리 정돈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몇 개의 1인용 책상은 칠판을 향해 놓여 있었지만 그마저도 좌우로 줄 맞춘 것도 아니었다. 칠판 옆에 있는 책상에 기대 있던 케언즈는 칠판 쪽으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나름 다양성이 넘치는 시대였다.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잘 의식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지식의 폭발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지식을 만들고 기록해나갔지 기록매체도 급격히 발전해서 점점 더 많은 정보를 더 작은 매체에 담을 수 있게 됐어”


“교수님. 처음에는 종이에다 기록했던 거죠?”

케언즈는 고개를 돌려 가까운 쪽에 있는 사브리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래 사브리나. 하지만 종이보다 더 먼저 기록 매체라고 불릴 만한 것도 있었다. 고대 중국이란 나라에서는 대나무에 문자를 기록해서 묶어 다니기도 했었지. 또 단지 기록하는 것만으로 따지면 땅이나 벽, 암석에도 무언가 그리고 쓰기도 했어. 하지만 네 말대로 대중적인 기록매체라고 할 수 있는 건 종이가 최초였어. 그렇게 다양성이 넘치고 지식이 증가하면서 긍정적인 면도 많이 나타났지만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사회를 조금씩 멍들게 하기 시작했지.”


“지식 남용을 말씀하시는 거죠?”


뒤쪽에 책상에 걸터앉아 있던 진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볼 수 있지. 더불어 양자역학에서 몇몇 지식의 발견으로 핵무기를 손에 넣은 일도 그랬지. 생각해보면 인류 최대의 위기라면 바로 그때부터였지 미숙한 정신에 너무 큰 힘을 손에 넣었던 시기.”


그때, 진이나 사브리나를 포함한 모든 수강생이나 전 세계에서 그 강의를 듣고 있던 모든 이가 전혀 알 수 없었을 텔레파시에 의한 대화가 케언즈의 의식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왜 접속 안 하시는 거죠? 채널을 여세요.>


<회의에 내가 참석하지 않는다고 달라질 게 없잖나. 그냥 자네들끼리 하게 내 의견은 자네 의견과 하나도 다르지 않네 그냥 자네가 한 번 더 이야기해주게나. 미안한 말이지만 난 이렇게 학생들과 직접 대화하는 것이 자네들과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즐겁다네.>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시는 건가요? 케언즈 씨?>


<아닐세. 난 내 뜻대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기에 굳이 참석할 필요를 못 느낄 뿐이네. 중요한 강의 시간이기도 하고 허허. 이런 시간을 갑자기 취소하거나 강의 중에 갑자기 멍 때리면서 계속 대화하다간 여러분의 정체가 드러날 수 있는 위험이 있어요.>


<알겠습니다. 하긴 케언즈 씨의 의견은 사전에 충분히 설명되었으니 굳이 참석할 필요는 없겠군요. 결과는 나중에 가까운 "진화된 신인류" 중 누구에게든지 접속하셔서 확인하시면 됩니다. 이번 사안에 대한 투표에는 대부분의 우리가 참여할 거 같으니까요.>


<그러겠네. 자 이만 다음에 또 연락함세.>


<네.>


약 5초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대화가 흘러 지나갔지만, 예민한 진은 케언즈가 뭔가를 위해 잠시 수업에 대한 긴장감을 놓고 있다는 것을 느꼈었다.


“후에 최소 수십 년가량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안정기가 있었죠?” 그래서 이렇게 지나가는 듯 물어봤다.

(출처: Photo by Boston Public Library on Unsplash)


“음 그래 진. 안정기라고....... 글쎄다. 그걸 꼭 안정기라고 할 수 있을지. 물론 그 기간 동안에 그 이전 시대에 비교하자면 의미 없는 대규모 전쟁을 어느 정도는 줄어들게 만든 공로를 인정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때로 일부 역사학자들이 마치 그 시대가 모든 문제의 해답이었던 것처럼 이야기하곤 하지만 그 이후의 사건을 복기해보자면 그 기간 동안 잉태된 문제점은 안정된 기간이었다면 생기지 않아야 했을 것이었어. 한 번 생각해보렴. 그 체제가 안정한 상태였다면 왜 지금처럼 모든 국가가 동의해서 하나로 통합되었겠니? 그 훨씬 전의 지중해 지역의 안정기라고 불렸던 팍스 로마나조차도 사실은 계속되는 주변 민족과 국가와의 끊임없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이번에는 리처드가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교수님은 국가가 이렇게 통합된 상태만이 안정된 상태라고 보시는 거예요?”


“우리가 개별 단위의 국가를 2~300개가량 유지했을 때, 지구 온난화와 전염병, 국가간의 전쟁, 네트워크 상의 보안 문제, 인공지능의 인류 공격 문제 등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대통합을 모두가 선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이것이 100% 영속 가능한 안정기라고 말하기는 어렵구나. 다만, 필요악 같은 면이 있어 유지된다고 봐야 된다.”


“선생님.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니요? 그럼 대체 뭐가 안정한 거죠?" 진은 케언즈의 대답이 답답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진실은 어디에나 있지만 아직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리고 진실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것이니 네가 선택한 진실은 내가 선택한 진실과 다를 수 있겠지. 다만, 난 오늘은 좀 더 확실한 이야기를 남기고 싶구나. 우리에게 "진실이란 바로  자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남을 통해 찾으려고 하는데서 왜곡과 혼동이 벌어지는 거야. 자 오늘 수업은 이것으로 끝내도록 하자."

(출처: Photo by Brett Jordan on Unsplash)


진은 그때 그 수업의 내용을 다시 머릿속에 복기하면서 자신이 HH테스트에서 "진실은 어디 있는가?(Where is the truth?)"라는 코드에 "진실은 나 자신이다(I am the truth)"라고 입력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 말이 진을 위험에 빠뜨린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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