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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 Jun 26. 2021

<1. “진”의 테스트>-e

부러진 팔과 다른 인간 종류

1. “ 테스트


e. 부러진 팔과 다른 인간 종류


기계 팔은 부서진 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다. 커보키언의 표정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잠시 비쳤지만 고통이나 분노 따위의 감정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고통을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 팔과 신체는 부러진 이후에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생각보다 여러모로 훨씬 더 뛰어난 인물이었군. 진"


진은 부서진 팔을 쳐다보다가 강압적으로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고 그의 가운 주머니의 시험관을 꺼내어 땅에 쳐서 깨뜨린 뒤에 날카롭고 긴 유리 조각을 집어내어 눈을 겨냥한 채로 말을 건넨다.

(출처: Photo by Ivan Vranić on Unsplash)


"그 말은 혹시 내가 상상하는 그대로의 상황이 맞다는 말인가? 내 의식 속으로 떠오른 내용은 나도 모르게 '당신들끼리' 나누는 말 중에 하나가 감청된 것 같긴 한데. 당황하다 보니 그 소리 '진을 죽여라'가 나에게도 들릴 수 있다는 것을 놓친 것 같군. 아까 테스트 중에 잠깐 내 의식 속으로 들어와서 모습을 드러낸 대머리 아저씨가 당신과 내 대화를 듣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드네. 그렇지? 대머리 아저씨! 내 머리 속이든 이 사람 머리 속이든 여기 와 있는 거 맞지?"


"아직 네가 전부를 알고 이해한다고는 생각하진 말라고. 하지만 대충 큰 줄기는 알아낸 것 같긴 하네. 그래서 말인 데 시간을 좀 달라고. 전부의 이해를 구해, 진짜 설명을 당신에게 해주고 싶어서."


마치 생각을 정리하듯이 잠깐 동안 커보키언이 눈을 감고 있다가 한 10초 정도가 지난 것 같다. HH테스트 이후부터는 진이 생각하는 10초 정도가 갖고 있는 시간의 느낌은 100초 정도로 변해 있다. 그 10초 정도라면 의식 속에서 꽤 여럿과 텔레파시 같은 것으로 대화하기엔 충분한 시간일 것이다. 그의 눈꺼플 아래에서 파르르 눈이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상했던 대로 몇 명의 반대가 있었지만 겨우 설득했어. 자 먼저 당신이 상상하고 있는 것부터 말해 보는 게 좋겠네. 비슷하다면 처음부터 이야기하기보다 몇 가지 수정만 하면 될 테니까."


"당신들은 로봇, 그러니까 인격을 가진 기계인 건가? AI인 상태에서 급격하게 업그레이드된 뒤에 인간 신체에 흘러 들어와 있는 건가?"


"아니."


기대했던 질문이 아니라서인지 커보키언의 얼굴은 실망하는 기색으로 가득 찬다.


"그럼 단순히 돌연변이인가?"


"처음 시작은 돌연변이였지. 원인을 알 수 없는 유전자에 작은 변이가 지적능력을 높이고 기계 적응도를 높이게 해 주었어. 그래서 우리는 직접 뇌파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출처: Photo by National Cancer Institute on Unsplash)


'그런 돌연변이라면 모두가 훤히 알 정도로 많이 늘어나고 있어야 하고,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종류의 인류 어쩌고 하면서 엄청나게 늘어났을 것 같은데 왜 그렇게까지 늘어나지는 않았지? 지금껏 음모론 같은 스토리도 찾아봤지만 그런 종류는 적어도 내가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 상의 정보로 나타나지 않았거든.'


진은 한번 더 이들이 자신의 의식과 대화를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려고 했다. 말없이 커보키언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기다려본다.


이제야 조금 밝아진 얼굴로 커보키언은 대답한다. 그의 왼쪽 팔은 어깨 부분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라 기괴한 느낌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피를 흘리지 않았고, 기계팔과의 연결 부위에서 연료나 윤활유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기는 했지만 절단된 부위는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AD 2000년대에 모기가 문제가 되었지. 박멸할 수 있냐, 없냐 논란을 거듭하다가 결국 어떻게 되었나?">

(출처: Photo by Wolfgang Hasselmann on Unsplash)


커보키언의 생김새와 닮은 얼굴 이미지가 슬쩍 의식에 떠오르면서 그 눈이 의식 속에서 보이기 시작하고 그 눈이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해가 된다. 이제부터 시간이 제대로 흐르는 느낌이 온다. 슬로비디오 같은 현실의 영상 속도와 의식의 대화 속도 간의 상대적인 격차가 크게 느껴진다. 대략 10배 가량의 차이가 있다.

(출처: Photo by Artem Kniaz on Unsplash)


진은 신음을 절로 입으로 흘리면서도 다시 의식으로 대화를 시도한다.


'당신들은 스스로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군. 그렇게 조심조심 정말 안 알려지게 여기저기, 몰래몰래 살아남아 있다 보니 거의 드러나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고. 맞나?'


<맞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모기의 수가, 다른 모든 생명체의 수가 조절되는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조절하고 있어. 단지, 우리는 유성생식을 포기했기 때문에 자연에 기대지 않고 개체수를 스스로 조절하고 있지.>


'한 명이 죽으면 한 명을 만드는 건가?'


<보통 죽기 전에 죽어가는 우리 중 한 명의 체세포를 복제해서 또 하나를 만들어. 물론 불의의 사고나, 감염은 우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유전적인 수명의 한계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기에 완전히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전달하고 생을 마치게 되면 다시 태어난 자신이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는 거지.>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바통처럼 계속 건네면서 이어달리기하는 것처럼 살고 있다는 거야? 당신들 외의 그냥 '인류'라고 불리는 사람은 그렇다면 당신들 눈에는 그저 허깨비나 빈 수수깡처럼 보이겠네.'

(출처: Photo by Jonathan Chng on Unsplash)


<그래, 그래야 했지. 근데, 우리 과도 아닌 그 허깨비 또는 수수깡과에서 당신 같은 사람이 포착되니까 놀란 거라고. 그 유리조각은 좀 내려놓을 수 없을까? 우리가 총으로 당신을 쏘려고 했던 것은 같이 이야기 좀 해볼 만한 존재인지 테스트한 셈 치고 말이야. 날 어떻게 했다간 살아나간다고 해도 합격 통지받기가 어렵고, 우릴 이처럼 알고 난 뒤에 잘 살아남아서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다고 해도, 알다시피 그냥 서로 모른 체 살아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


'이렇게 이야기를 이끌려고 순순히 당신들이 누군지 설명해준 거군'


진은 유리조각을 바닥으로 떨구었다. 동시에 바닥에 놓인 머신건과 결합된 기계 팔을 사정없이 멀리로 걷어차 버렸다.


아니면, 앞으로 얼마나 더 복잡한 상황이 펼쳐질지는 모르지만, 커보키언을 놓아 둔채로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하다. 그 다음부터는 네트워크에서 분리되어 실종된 "그림자"계층으로 전락해서 살아가야 하겠기에 우선 협상을 해보는 것도 나쁠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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