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의 테스트
c. 커보키언의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장치
바닥에 주저앉아 있으려니 10여분 후에 공중에서 모니터가 달린 비행체가 소리 없이 나타났다.
모니터의 화면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한 남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진. 축하합니다. H단계 Highest 단계를 통과한 첫 번째 핸들러예요. 아무도 도전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지만요.”
(출처: Photo by Goh Rhy Yan on Unsplash)
“고마워요. 그래도 최초라고 확인을 해주니 기쁘긴 하군요. 그런데 먼저 테스트 관리 위원회에 따질 것이 있으니 지금 당장 연결부터 부탁해요. 만약, 통과 못하고 죽었으면 대서특필받고 징계까지 받았을 기관이니까 일단 해명과 사과부터 받아야겠어요”
진은 옷에 먼지를 털어내고 이를 악물면서 최대한 빈정거리는 투로 말한다.
“그것은 그대로 하더라도 먼저 인사부터 하죠. 통합 테스트 관리 위원회 질병 통제 본부의 커보키언이라고 합니다. 살아 돌아오신 것이 일단 다행입니다. 관련해서 문제 일으킨 부분은 시정 조치하겠습니다. 하지만 우선 진님은 검역부터 받아야 해요.”
“네..... 네 안녕하세요. 황당한 테스트를 받고 간신히 살아나고 나니 정신이 없네요. 그렇죠. 검역이든 무엇이든 일단 몸에 문제가 없는지부터 확인해주세요. 어서 와서 날 실어가요. 내 외과 의료진도 같이 있는 것 맞죠?"
진은 손을 들어 레이저를 피하면서 생긴 팔꿈치의 상처를 보여주며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옷은 다 터져 있었고 무릎은 시리고 콧 속은 답답하고 두통이 몰려온다.
'아까 의식 속으로 들어온 대머리는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실체였을까 혼동스럽지만 그런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다. 혹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지레짐작으로 평가하면 이번에도 떨어질 테니까. 간신히 살아남은 뒤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결정도 내려지기 전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테스트 자체가 무효화되거나 내게 문제가 생겨서 결과 상관없이 부적격이란 결론을 내리도록 만들면 안 돼. 젠장! 괜찮은 직업을 갖고 단지 조금 더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는 게 뭐가, 이렇게, 왜 힘든 거야?'
"나를 데리러 오는 셔틀은 언제 어디로 오는 거죠?”
화면 속의 그 남자는 질병 통제 본부의 마크를 단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운의 왼쪽 가슴에 포켓에는 필기구 몇 개와 신체 시료 채취용 시험관이 꽂혀 있다. 진이 처한 상태를 보는 의료 기관 종사자라 그런 것인지 냉정하고 최대한 감정을 숨기는 기색이다.
'하늘색의 라텍스 재질 장갑의 끈적한 느낌이 곧 나에게 악수를 청하겠지.'
“피곤한 건 당연히 이해합니다. 제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내 외과 소견 정도는 낼 수 있는 의사 자격도 갖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필요한 조치는 모두 취할 수 있을 테니 큰 걱정 않으셔도 돼요. 그쪽으로 가고 있는 셔틀 안에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응급장비도 다 이 셔틀에 실려 있습니다. 그전에 테스트의 일부라고 생각하시고 조금만 저와 대화를 나누면 좋겠네요.”
“뭐라고요? 아직 끝난 게 아니란 거예요? 전 지금 완전히 쓰러지기 일보직전입니다. 제가 받은 테스트 과제는 분명히 구형 단말기로 메인프레임에 테스트용의 시가전을 통과한 뒤에 접속해서 오류 수정하는 거 까지였어요. 수소연료 폭파라니! 그러고도 살아남았는데 그게 아직도 끝난 게 아니라고요?”
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진에게 커보키언은 별 반응 없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추가된 임무라고 해두죠. 일단 이 비행체가 안내하는 쪽으로 가면 휴식을 취할 공간이 있습니다. 치료용 로봇이 대기 중일 테니 응급치료를 하신 후 휴식을 취하고 기다리시면 됩니다. 구시가지 도착까지는 10분 정도가 남았군요. 셔틀에서 내려 그곳에 도착하려면 32분 정도가 걸릴 것 같네요. 당신은 그냥 그곳에서 기다리면 됩니다. 먼지나 땀 때문에 불쾌하다면 방안에 샤워시설이 있으니 샤워나 하면서 기다리면 될 것 같네요. 그 공간을 떠나지 말고 잠시 대기하면서 다음 지시를 기다리세요. 그럼 잠시 후에...”
커보키언의 말이 끝나자마자 화면은 꺼졌다. 진은 뭐라 대꾸할 기회를 놓쳤지만 진이 가진 통신기는 이미 테스트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리저리 구르다가 망가져서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테스트 응시생의 신체가 어떻게 되었는지 같은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는 태도에도 화가 나지만, 시험 관리 기관의 인원은 갑이고 자신은 을이니 어떻게든 그 화를 다스리려고 애를 쓴다.
하긴 실제로 진이 죽어 나가도 그것은 그저 안타까운 일로 언론에 나오고 보험 및 배상금 처리 정도로 상황이 말끔하게 끝날 수 있지만, 살아남아서 시험 중에 겪은 일을 줄기 장창 떠들어 댈 진을 관리 위원회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잔뼈가 굵은 의사 등의 관료가 좋게 볼리는 없을 것이다. 조직에 위협이 되는 존재가 살아 돌아온 셈이니.
"가긴 가는데. 좀 있다 보자고. 우쒸."
구형 비행체가 안내한 방 안에는 진단 치료형 구형 로봇과 침대 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침대 위에는 갈아입을 속옷과 편해 보이는 옷가지가 있다. 유리 재질의 반투명의 샤워 룸으로 들어간 진은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기를 튼다.
로봇은 원거리에서 진이 입은 상처의 크기를 재면서 붙일 밴드와 소독액, 화상 크림 등을 일정한 크기로 조제하여 침대 옆 탁자에 올린다. 배부분이 열리면서 물을 담은 컵이 나오고 진통제 등의 알약이 같이 또르르 쟁반에 굴러 떨어진다.
(출처: Photo by Possessed Photography on Unsplash)
로봇의 얼굴에 글자로 '샤워 마치고 나면 이 알약과 물을 드세요. 밴드 중앙에 화상 크림을 바르시고, 상처 주변에 소독액을 바른 뒤에 크림 바른 부위가 상처를 덮도록 붙입니다."가 뜨고 있다. '제가 탐지한 것은 '약간의 타박상', '두통', '경미한 호흡곤란', '속 메스꺼움'입니다. 그 외의 증상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가 이어서 뜬다.
샤워를 끝낸 후 응급치료 로봇이 처방한 대로 간단한 치료와 알약 복용을 한다. 큰 부상은 없었지만 종일 긴장하여 뛰어다닌 터라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눕다시피 앉아서 쉰다. 1시간쯤 지난 이후, 화면으로 보았던 커보키언이 소리 없이 방 안으로 들어와 말을 건넨다.
'사생활 보호나 예절, 매너, 에티켓 같은 것은 말아 든 놈일세' 진은 분을 삭인다.
"안녕하세요. 아까 인사드렸죠? 저는 입출력 테스트 과정 담당의사인 커보키언입니다. 수소연료 폭파과정을 겪었으니 당신 신체에 손상이나 변이가 생겼을지 모른다는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신체 상태를 스캔하고 정상상태임을 확인한 후에야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통계상으론 수소연료 폭파를 겪고 나서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변이나 장애를 겪을 경우의 확률이 5%도 안 되니까요."
"아무리 실전 테스트라 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Double High라고 그래도 그렇지 수소연료 폭파라니요?" 진은 가시 돋친 목소리로 따진다.
"사실 수소연료 폭파는 예측 불가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지막 물리적 테스트는 다른 것이었고 수소연료 자체가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검색을 마쳤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수소 연료통이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오작동해 버렸어요."
'들을수록 가관이네, 정작 테스트 관리 기관이라는 게 그런 위험한 물건이 있는지도 미리 주도 면밀하게 살피지도 않고 응시생을 들어가게 만들었다는 거야?' 제대로 된 설명 같지도 않고 설득력도 없는 변명에 진은 점점 더 분노가 치민다.
"Double High 테스트의 경우 테스트 지역과 과정 등의 설정에 따라 시설이 갖춰진 뒤에 몇 년간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어서 아무래도 오류가 생기고 환경에 대한 점검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관리 위원회에서 진 님과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배상금을 어느 수준에서 주어야 할지도 이야기하는 중이고요. 걱정하실만한 부분이라 검토했는데, 신체적으로 향후 활동에 지장이 없다는 것만 확인된다면 합격 통지를 바로 드릴 수 있다는 답변도 받아왔습니다."
'뭐지 내 머릿속을 누가 읽어다 주고 왔나? 시험이 무효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었던 것을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네 이 사람?' 진은 잠깐 의아해진다.
"이거 뭐 저에 대한 검사 결과가 안 좋기를 바라는 것처럼 이야기하시는 것 같네요? 그런가요? 제가 저지르지도 않은 수소연료 폭파를 위원회로부터 배상금이라도 받기 위해 자작극을 펼치기라도 한 것처럼 들리네요? 맞나요? 우선 잘못했다고 사과부터 하는 게 당신들이 할 일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이야기를 그대로 위원회에 알려주고받은 답변과 현재의 진 님의 상황을 제 나름대로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일 뿐입니다. 의도를 확대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사과는 분명히 저희 중에 책임질 분이 제대로 드릴 것이니 기다려주세요. 제가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기엔 적합한 인물이 아닌 것 같아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들을 기회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우선 진 님은 검역을 위한 신체 스캔을 받아야만 합니다.”
커보키언은 진의 앞에서 비행체가 운반해온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생긴 원통을 가리켰다.
(출처: Photo by Robbie Noble on Unsplash)
"규칙상 일단 6개월 전까지 사용되던 구형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일반 병원 프로그램보다는 신뢰성이 떨어지더라도 수소연료 폭파과정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장비라서요. 이걸 구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걸렸습니다. 꽤 오랫동안 수소연료 폭파 사고 후에 살아서 귀환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경우에 대한 검역 데이터가 신형에는 입력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건 일반 병원에서 요즘 사용하는 것들과 비교해서 좀 덩치가 큰 스캐너군요. 6개월 전의 구형이라면, 최신 바이러스나 세균은 검출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잖아요." 진은 피로와 짜증, 분노에 사로잡힌 채로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일단, 현재, 신형 스캐너에 수소연료 폭파과정 데이터를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구형으로 스캔하는 것이 더 시간이 적게 걸려 이 방법을 씁니다만 이곳을 벗어난 뒤에 신형 스캐너로 재 스캔해드리죠."
툴툴거리며 스캐너 안에 들어간 진은 매끄럽게 피부를 지나쳐가는 전자파의 파동을 느끼면서도 계속 커보키언을 약간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계속 이해 안 가는 일들의 연속이다. 마치 그 사고로 죽어서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가정한 상태에서 만사 준비되고 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이거 혹시 죽어야 될 사람이 죽지 않고 돌아와서 당황한 놈들이 다른 방법으로 죽이려고 애쓰는 것 같잖아?'
"수소 연료에 의해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보고서는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의 SPTS(Space Protocol Time Standard) 675년 이후로는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수소 연료에 의한 임상 실험 결과를 가진 사람들의 정보와 환자의 데이터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스캐너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신형을 써도 올바른 스캔은 정확한 변이나 바이러스에 반응하지 않습니다."
그때 스캐너의 외측 몸통 면에서 진이 눈치 못 챌 Warning 신호가 커보키언의 눈앞에 떠올랐다. Top Secret라는 글자와 더불어서 외측면의 스캐너 스크린은 온통 검은색으로 덮여 들었다.
커보키언은 수차례의 의과대에서의 훈련에서처럼, 스크린에 나타난 상태를 자신의 얼굴에 떠오르지 않도록, 안면 근육을 고정시키는 기능을 약지로 손바닥을 눌러 작동시켰다.
동시에 눈물샘과 땀샘이 순간 차단되었고, 심장의 평소 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체내의 조정장치가 작동했다. 시신경 뒤의 인공 뉴런이 눈동자의 움직임과 동공의 움직임을 컨트롤했고 망막이 스크린을 벗어난 진의 이마 쪽의 영상을 보도록 시선의 각도가 변경되었다.
'이자의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군'
진은 바로 알아차렸다. 커보키언이 일면 도발적인 진의 언어 구사에 대해서 전혀 반응이 없는 것은 분명히 "바이오 메카트로닉스 기술"이 사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신체에 데이터를 결합시키기 위한 기기가 대부분의 인류에 부착되는 과정에서 생체 컴퓨팅이 가능한 기기를 신체 반응 등을 통제하고 때로 향상하기 위한 유기물과 기계를 결합하는 기술이 발달되었는데, 그것을 일컫는 말이다.
냉소적이고 거친 언어를 주로 사용하는 진은 이런 종류의 인간들을 항상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그런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작동시킨 커보키언의 장치는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눈치채기 쉬운 힌트를 남기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단순히 기분이 나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