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오자 집단이 유능함을 매번 발휘하는 설정이 흥미를 낳고 있는 이유
이 드라마가 가진 중독성을 결국에는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슬그머니 새로운 시즌 3으로 돌아온 "파운데이션"을 먼저 봐야겠다고 생각도 하고 첫 화의 내용 일부를 보기는 봤다.
그런데, 이미 수많은 SF 작품에 여러 설정을 빌려줘버린 탓에 지금 시대에는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작품에 신선함을 부여하기 위한 과장과 폭력성이 너무 지나친 게 아닐까 추정을 하게 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잔인하면서도 강력한 악당이 등장하는 장면이 거북함을 불러일으켜서 더 보기를 멈추었다.
"슬로 호시스"가 보다 상대적으로 건전하여 잔인하지 않은 작품이어서 "파운데이션" 대신에 보게 되었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이 작품에도 잔인함은 흐른다. 하지만 그 잔인함을 보여주는 악당이 결국에는 조직 내 낙오자인 이들의 팀플레이로 제압당할 것이란 낙관성이 느껴진다.
물론, "아이작 아시모프"도 복잡한 플롯과 더불어 당대에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상상을 뛰어넘는 반전을 담은 형태로 작품을 만들어왔다. 그의 작품은 때론 너무 세밀한 설정 때문에 두드러기가 날 정도가 되어서 덮기는 할 망정, 착상에는 감탄하게 된다. 그럼에도 결국에는 순수하고 똑똑하고 유능한 정의가 승리하리란 희망이 또렷해서 과도하게 순진하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 뻔함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지나치게 맵게 뿌린 드라마의 소스가 너무 매워서 눈을 뜨고 지켜보기가 어려운 마음이 들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결국에는 보겠지만, 이번엔 "슬로 호시스 시즌5"를 보고 나서다.
전작에서 본부로 쳐들어와 "슬로 호시스" 팀원 전부를 죽이려고 했던 작중 "리버 카트라이트"의 친부인 "프랭크 하크니스"의 또 다른 아들이자 막강하기 이를 데 없는 전투 능력을 가진 "파트리스"를 맞아 전력을 다해 싸웠지만, 팀원 중 하나이자 함께 호흡을 맞춰 전투 활동 요원을 하던 "마커스"가 죽음에 따라 "PTSD"에 빠진 "셜리 덴더"가 자책감에 비틀거리며 나온다.
낙오자들의 집합이란 낙인이 찍힌 채로 계속 비틀거리는 이들은 각각 "슬로 호시스"를 벗어나서 "MI5 본부"로 복귀하는 것을 꿈꾸면서도 그것이 계속 어려웠기에 결국에는 "슬로 호시스"와 "MI5"를 모두 떠나기로 결심하며 6개월 간의 휴직으로 들어가는 "루이자 가이"와 이를 말리고자 하는 "리버" 간의 약간의 섬싱 비슷한 상황도 오고 가는 깨알 같은 팀원 간의 심리 게임도 같이 나온다.
첫 장면은 언제나 시즌 첫 화가 예상을 하기 어려운 전개와 더불어 나오면서 관심을 끌어들이는 데 성공해 왔던 전통을 이었다.
홀로 사는 남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남자는 신전처럼 여자는 개처럼"이란 커다란 포스터가 있는 자기 방에서 나와 런던 시장인 "제프리"의 선거 운동을 하는 중년 남자 선거 운동원을 강력한 자동화기로 죽이고 행인에게 무차별적인 격발을 하며 시작한다. 그런데, 그냥 그 장면만 나온다면 그것은 너무 뻔해 보이는 도입부임을 잘 알기 때문인지 금세 건물 옥상에서 발사된 총에 머리를 맞는다.
혹, 그를 막기 위해 순식간에 출동 한 경찰 등에 의해서 제압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그를 저격한 이가 저격총을 분리한 다음 가방에 넣고, '흰색 승합차'를 서둘러 타고 떠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가 총을 난사하도록 만들고, 그다음 그의 목숨을 저격으로 빼앗은 집단이 있단 얘기다.
이런 도입부와 연결되는 것은 중국계의 성을 가진 혼혈 외모의 나르시시스트 내근 해커 역할로 나오는 "로디 호"다. 강렬한 댄스 음악이 흘러나오는 장면에서 그 음악을 듣는 듯이 헤드폰을 끼고 길가의 여자들에게 다가가 도발하면서 자신이 내키는 대로 멋대로 춤을 추며 등장한다.
그런 그가 춤을 추며 찻길을 건너려고 할 때 한대의 '흰색 승합차'가 그를 치려고 달려들자 뒤에서 달려온 "셜리"가 "호"를 밀쳐서 구해낸다. 이기적인 나르시시스트에 소시오패스적인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배우의 설정상, "호"는 "셜리"가 그 차가 "호"를 죽이려고 시도한 것이 분명하므로 CCTV 등을 추적해서 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때, 구하는 중에 부서진 헤드폰과 손상된 옷에 대한 배상을 해달라고 하며 적반하장의 억지를 부린다.
이런 경우에 안 맞는 "몽니"를 부리는 "호"를 뒤로하고, 일단 "호"를 노렸다면 다른 팀원의 목숨도 노리는 자들일 수 있으므로 이를 팀장인 "잭슨 램(게리 올드만)"에게 보고하려 아침 식사 중인 그를 찾아가 정황을 얘기한 "셜리"가 들은 말은 "껴져"다.
극 중반에 충실한 행정 요원 역할을 하는 노년의 여자 "캐서린 스텐디시"가 그가 왜 상부에 이런 상황을 보고도 안 하고 "셜리"를 무시하며, 팀원의 신변을 지키기 위해 달라고 하는 총도 안 주는지를 묻자, "잭슨"은 그것을 보고했을 때 "MI5"의 부국장 "다이애나 터버너"로부터 따라올 자신과 팀에 대한 평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음을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잭슨"이 당면한 위협을 평판 저하없이 우선 팀원이 파악하도록 유도한셈.
언론을 뒤집어 놓은 사건에 대해서 조사한 바 "무차별 난사범"은 현 런던 시장과 선거 중 경합하고 있는 상대방 후보인 "데이비드 길섬"의 책을 갖고 있는 지지자로 보인다. 그리고 "데이비드"는 이 총기 난사범이 자신의 지지자인 것 같다는 MI5의 국장인 "클로드 웰란"의 이야기를 듣고 대번에 조작이라고 외친다. 이 과정에서 이 드라마가 비판하는 것은 상황 파악보다 프레임 씌우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그리고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셜리"는 난사범을 옥상에서 저격한 이가 전투화를 신고 있고, "호"를 치어 죽이려 했던 차에 올라타는 장면을 CCTV를 통해서 포착한바, 그것이 공적이던 비공적이던 "제거팀"이 움직이고 있음을 추정하게 된다.
그리고 알고 보니 그 팀은 현재 MI5와 하부 조직인 "슬로 호시스"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난사범을 죽인 옥상에 버젓이 저격총 발사 후의 탄피를 놓아두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도 원하는 대로 암살을 진행하려고 하는 것 같은 정황을 보여준다.
이 1편의 마지막은 "호"를 제거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고 노이로제라도 걸려 있는 듯이 행동하는 "셜리"의 심증이 시청자가 보는 장면에서는 확증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끝나며, 그 이후 스토리가 궁금해지지 않는 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다.
이렇게 하나씩 연결이 되지 않는 듯한 스토리가 각각 점점으로 드라마 안에서 난삽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같은 줄기에서 만나고, "셜리"의 불안정한 상태가 죽은 "마커스"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 때문에 과민하게 벌어지는 추측인 줄 알았던 위험이 실제 하는 위험으로 인식되기까지의 내용이 매우 치밀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이 작품을 계속 쫓아가면서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이런 정도의 치밀함을 가진 극화는 사실 여기저기에 깔려 있는 것만 같은데, 자꾸 이 작품에 끌려들어 가고 있는 것은 다들 아무리 승리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자신이 해낸 일에 대해서 폄하를 당하고, 정치적인 요령과 능력이 없어서 승진이 원하는 대로 잘 이뤄지지 않고, 조직에서 인정받는 개인이나 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저평가를 받고 있는 듯한 삶을 사는 경우가 통상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남의 밥그릇이 더 크게 보이는 법이라 우리가 부러워하는 개인이나 집단은 영문도 모르고 나란 개인이자 속해 있는 집단을 부러워할 수도 있다. 결국에는 성공적이라 인정받는 이들조차 계속 자신의 능력보다 저평가받고 있다는 의식과 감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 이 복잡한 회사란 조직에 몸담고 있는 수많은 이가 경험하는 각자의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넘어서서 스트레스와 긴장감이 조금이라도 덜한 삶을 살면, 오히려 업무적인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상태로 몸과 더불어 뇌의 전전두피질의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 최신 뇌과학의 오랜 연구가 밝혀낸 내용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설사 잘 알고 있어도 쌓여온 사회적인 학습의 일화적 기억은 우리가 그런 굴레에서 쉽게 떠나지 못하게 만든다.
하나하나의 치명적인 결점으로 말미암아 퇴출 인원을 모아놓는 부서로 좌천당했다는 설정은 얼핏 평범한 사회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과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도 보이지만, 사실 대다수의 조직 구성원이 경험하는 현실을 좀 더 자극적으로 잘 드러내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 AI가 급속도로 만들어 내고 있는 인간 낙오자 집단에 속하지 않을까란 두려움은 이제는 일상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다 보니 그 극화 속의 현실 속에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고 해결해 가는, 낙오자이지만 낙오하지 않은 이들보다 오히려 더 나은 능력을 가진 "슬로 호시스" 팀원에게 우리는 동류의식을 전혀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극우나 보수 정치인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반복되는데, 그것이 그저 진영 논리에 빠진 되풀이라기보다는 힘과 권력이 있다면 무엇이든 맘대로 멋대로 해도 되는 게 아니란 얘기이기 때문에 더욱 공감이 간다.
보수가 부패와 더불은 권력남용을 항상 옹호하는 집단이란 고정관념에 나날이 더욱 강력하게 수렴하고 있는 이 세계에서 아직도 그걸 비판한다고 좌파라는 등의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 이젠 허탈한 습관이나 버릇을 지닌 이가 의미 없이 지껄이는 추임새나 앵무새의 인간 흉내 내는 소리 같은 느낌이 나날이 강해지는 지금, 벌어진 현실을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이성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
그것이 이 작품이 그 어느 시즌이든 첫 화를 보는 즉시 그 다음화를 기다리게 만드는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