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이후의 냉전 시대의 핵전쟁 위기의 기억을 다시 가져오다
(표지 출처: The Direct)
지금의 젊은 세대는 또한 이전 시대의 젊은 세대가 경험한 세계의 기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우리 전 세대의 기억을 또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래도 역사라는 것이 남겨져서 꼼꼼히 읽거나 다큐멘터리나 영화, 드라마로 보거나 이에 대해 해박한 사람의 말을 듣거나 하면서 우리는 우리보다 앞 서 살아간 사람의 기억을 전승받고 있다.
하지만, 그 전승의 과정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의 차이가 따라붙게 되고, 개인이나 정치 조직의 이해관계가 역사를 왜곡하거나, 상업적으로 팔리는 스토리가 되어야 하다 보니 각색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역사 고증 자료로 인정받는 고전이나 학술 자료, 다큐멘터리 등을 참고하면 최소한 기록된 내용으로부터 많이 벗어나지 않은 내용을 들은 것이겠지 하는 안심감이 생긴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때로 승자의 역사만이 살아남아서 기록되고 있다고도 하고, 패자의 역사는 아무리 훌륭해도 여러 과정 속에서 제대로 살아남지 않기도 하기 때문에, 전체를 복기하는 건 어렵다.
그래서 이미 벌어진 역사에 대한 상상력이 엄청나게 시공을 뒤트는 마법과도 같은 작품을 창작자로 하여금 만들어 내게끔 한다.
지금은 존재감이 사라지다시피 한 작가인 "무라카미 류"의 "오 분 후의 세계(1995)"는 대량의 경제학 서적을 읽고서 보강한 국제 정세와 경제에 대한 현실적인 개연성을 불어넣어서 2차 대전의 일본이 아직 항복하지 않고, 일본의 지하에 숨어서 연합군과 싸우고 있는 내용을 굉장히 그럴듯하게 그려내서 출간 당시 일본 내에서 엄청난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우리나라 영화 중에도 한국이 해방되지 않고 일제하에 그대로 현대시대로 접어들어서 레지스탕스로 한국인이 독립 전쟁 활동이자 역사를 되돌리려 하는 작품인 "2009 로스트 메모리즈"가 2002년에 개봉해서 "장동건"을 주연으로 채택해서 나름 흥행에 성공했다.
둘 다 대체역사물, 타임슬립물 등의 요소를 지니고 성공한 작품이었고, 이런 한일 간의 역사적 자존심을 자극하는 대체물이 서로 크로스 오버했던 것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인랑"이었다.
2차 대전에서 승리한 주축국 중에 독일이 일본을 지배하면서 벌어지는 일본 내의 극심한 빈부격차에 따른 세력 간의 극심한 반목과 전투, 첩보물을 그려낸 이 작품은 "김지운" 감독에 의해서 각색되어 한국이 통일 세력과 반통일 세력으로 나뉘어 투쟁하는 내용을 그렸다.
하지만 밀리터리 덕후에게 어필하기 위해 세련된 독일군의 복식체계와 무기 등을 스타일리시하게 사용하기 위한 가상의 설정인 "독일이 지배하는 일본"이란 요소를 뺀 리메이크작의 "인랑"이 쓰는 독일식 철모와 기관총 등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했고, "밀덕 스타일"의 효과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스태프가 만든 작품은 마치 허공에 한 주먹질과도 같아서 그만 흥행에 실패했다.
미국 영화에도 "아메리카(Amerika)"는 1987년도에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사춘기의 한국인 아이들에게도 미국이 소련에 점령당한 상황을 보여주면서, 엄청난 충격을 주는 극화로 다가왔었다. 그런 작품이 꽤 많이 드라마와 영화로 개봉되었던 것을 보면 지금보다 미국은, 상업적인 성공이 국가 이미지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겠지만, "언론의 자유, 창작의 자유, 상상력의 자유"가 확보되었던 나라였다.
핵전쟁을 불사하기라도 할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언론 플레이를 하고, 더 강력한 무기와 더 호전적인 모습을 미국이 보유해야만 더 위대해지는 것처럼 언론을 호도하는 현시대의 미국 지도자가 의기양양하게 언론을 통제하기 전부터 게임 "폴아웃('77)"은 핵전쟁이 인류에게 끼치는 비참과 인간의 권력이 자본과 생필품 등이 극소화된 핵전쟁 이후의 디스토피아에서 작용하는지를 그렸다.
그 작품이 다시 2024년도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게 된 것은 일면 새로운 미국정부의 현재 정치군사경제문화사회적 지향과는 크게 상관없는 작품처럼 보이지만, 이 다시 돌아온 국가 간의 이기심이 다시 인류의 역사를 열렬히 후행시키며, 핵전쟁의 위험으로도 몰아붙이는 세계의 움직임과 아주 무관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1945년(2차 대전 종결)부터 1991년(소련 붕괴)까지의 냉전 기간 동안 인류는 얼마나 초긴장 상태에 살았고, 민주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일촉즉발의 핵전쟁 상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며 멸망당하지 않고 살았는지,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겐 그 긴장감을 다시 설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지만, 이제는 생겼다. "1991년 이후 출생자 여러분 시간 나면 "폴아웃" 1화를 보세요".
이것이 하고 싶은 이야기였다 "끝".
그래놓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란 말이냐란 아우성이 있을 리도 없겠지만, 이 1화에 대해서만 좀 더 적고 가려고 한다.
이 레트로 SF물의 영리함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화 만을 충실히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충분할 것 같다. 이 이후의 시리즈 극화를 더 볼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이미 이 1화가 결정해주고 있어서다.
얼핏 "MCU"의 "하이드라"의 빌런 "레드스컬"의 외모를 잘려나간 코 모양 때문에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구울"이 별명이자 이름은 "하워드 쿠퍼"인 "월튼 고긴스"가 연기하여 1화의 맨 처음부터 나와서 브라운관 티브이와 생활양식으로 많이 봐야 1960년대 미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시대는 2077년이다. "판타스틱 4"처럼 레트로 퓨처리즘 스타일로 미래를 그리고 있음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
티브이에서 핵전쟁에 관련된 내용이 언급이 얼마 되지 않아 핵폭발이 일어나는데, 카우보이 복장을 하고 말에 올라타 파티에서 사진에 찍히며 돈을 버는 일을 딸을 데리고 다니면서 하는 이혼남 "하워드"는 자신의 딸이 폭발의 크기가 엄지 손가락 크기보다 크면 큰 폭발이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고 묻는 질문에 엄지 손가락보다 훨씬 큰 폭발이 일어난 사실을 깨닫고 딸을 안고 뛴다.
이 장면이 사실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1990년대쯤의 한국이다. 그 시대에 있었을만한 기술로써 브라운관 티브이가 컬러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냉전의 막바지 정도의 상황이다. 당대에 있었던 학술 통계 중에는 냉전 중의 핵전쟁에 대한 긴장감으로 냉전 이전 시대의 사람보다 냉전시대의 사람은 더한 긴장감을 갖고 손에 더 많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다는 내용이 나왔다고 나는 기억한다.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냉전 시기 핵전쟁 공포가 사람들의 만성적 불안, 스트레스, 신체적 긴장을 유발했다고 분석했고, 예컨대 미국 사회에서는 ‘적색 공포’와 핵전쟁 대비 훈련(duck and cover)이 일상화되면서 불안이 생활 속에 스며들었다. 그 시대의 공포감이 잠시 다시 엄습했다.
극화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까지 그 다시 돌아온 공포감이 잠시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그러나, 나보다 젊은 세대에게는 그 공포감이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1화가 주는 충격의 무게는 그래서 세대별로 매우 다를 것임이 분명하다.
그 폭발이 일어난 뒤에 지구가 자정 되었을만한 1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뒤에 핵전쟁 시에 대피해서 살아남은 이들이 살고 있었던 생존시설물이 "볼트"라는 명칭으로 불리는데, 주인공이 파국을 겪게 되는 구획이 "볼트 33"이다.
그 파국은 "볼트" 외부에서 군사적인 조직을 운영하는 집단이 일종의 약탈 부대를 보내어 "볼트 33"의 옆 "볼트 32"를 먼저 공격해서 궤멸시킨 후에 "볼트 33"과 "볼트 32"간의 결혼식을 벌이고 신랑신부가 첫날밤을 보낸 그때 "볼트 33"과 전투를 벌이게 되는 일이다. 이 직전까지 순조롭게 진행된 결혼식까지 있었던 모든 실사화된 "볼트 33" 내의 풍경은 치밀한 극사실주의를 보여줬다.
1990년쯤의 다소 느릿한 과학문명의 진화를 반영한 듯이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이나 기계를 다루는 것에는 유압식 펌프 등의 오래전 기술이 동원되고 있고, 디지털 문명의 힌트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스마트 워치 같은 것을 달고 다니고는 있지만 아날로그식으로 구동되는 것처럼 묘사되고, 무기도 재래무기식의 구동을 보여준다.
필름 영사기로 자연 풍경을 찍은 영상을 결혼식 장소에서 배경으로 계속 틀고 있는 장면도 현실감을 배가했다. 파국 중에 신랑이 신부를 죽이려고 하는데, 이에 맞서 필사적으로 신부가 칼에 찔린 이후에 다른 칼과 둔중한 물체, 유리 등으로 신랑을 찌르는 장면 등은 앞 서의 분위기와 극단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같은 예상 못한 급습에도 불구하고 "볼트 33"내의 인원은 극렬하게 저항한다.
주인공 "루시"를 연기하는 배우 "엘라 퍼넬"은 파국이 벌어지기 전의 상황부터 강력한 여성 히로인의 연기를 해낼 것 같다는 강력한 이미지를 전달한다. 눈코입 모두가 강력한 남성의 선 굵은 이미지의 외모를 뛰어넘는 강렬함을 갖고 있으며, 핵전쟁 이후의 생존 구획 "볼트 33"으로부터 나가 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제 핵전쟁으로부터 회복되고 있는 외부 세계의 모험을 겪는 인물로 적격이었다.
그의 아버지 "행크"를 연기한 배우가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페르소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듄(1984)"와 "트윈픽스(1990)"에서 미스테리어스 하고도 초월적인 이미지를 연기한 "카일 멕라클란"이 적에게 잡혀가면서도 딸을 아끼는 대사인 "너는 나의 세상이다"를 시청자에게 적중시켰다.
"하워드 쿠퍼"는 1화의 중후반부에 이르러서야 그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려고 찾아와 묘지의 관 속에 있는 "불사의 몸"이 된 듯한 그를 다시 3명의 범죄를 모의하는 자들이 되살려낸 다음에 무자비하게 자신을 살려낸 3인을 죽이는 잔혹함을 보여주면서 등장하는데, 그가 어떤 빌런으로 나오게 될지가 궁금해졌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볼트"밖 세상의 약탈 군대인 "브라더 후드 오브 스틸"의 충성스럽고 야심만만한 군인으로 나오는 "맥스"를 연기한 "아론 모텐"은 이중적인 모습과 더불어 증폭된 감정과 숨겨진 야심 양쪽을 극단적으로 오가는 연기를 하면서도 모자람이나 과함이 보이지 않아 내공이 느껴졌다.
다만, "레트로 퓨처리즘"으로 과거의 기술로 만들어진 미래를 그리는 방식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진행의 측면에서 보다 느린 것처럼 느껴지는 장면이 있고, 그려지는 인간의 심리도 정감이 보다 넘치고 감정이 풍부한 이전 시대의 인간의 모습과 행동과 사고, 생활양식이 그려져서 뭔가 좀 세련미가 떨어지는 것 같은 감각도 경험하게 한다.
이 내용을 적은 것은 이제 이 1화를 우선 보고 나서 2화부터 보는 것을 모두 온전한 여러분의 선택으로 남기기 위해서다. 하지만 1화에서 얻은 강력한 주제는 "핵전쟁"은 이제 인류에게 더 이상 벌어져서도 안되고 추구해서도 안될 전쟁임이 분명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던진 "반핵"이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의 개발을 앞당긴 미국의 당시 영웅이긴 했으나 그 기술이 개발된 이후 아무리 극비로 다루려고 해도 개발한 원리가 과학지식이기 때문에 타국에서도 결국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나 과학자의 유출, 학문의 공유 등에 의해서 소련과 같은 국가도 개발하게 될 것이며, 미국이 이보다 더 강력한 "수소폭탄" 등의 무기를 개발하면 그 또한 타국으로 하여금 더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게 하여 인류는 점점 더 종말의 위기를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음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그래서 그 개발을 더 심화시키고 더 강력한 폭탄을 개발하는 것에 협조하지 않고 군축에 더 한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금 이른바 "위대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근거해서 핵무기를 더 확산시키고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드는 방향으로 미국이 움직인다면, 인류는 냉전 시대와도 같은 정신병리학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더한 긴장 상태에 빠지고, 다시금 괴롭고 우울한 세계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나 그 외의 국가도 그 같은 핵보유국의 경우 더한 군비 투자를 할 것이고, 그것은 미국과 소련 간의 의미 없는 수준의 무리한 경쟁상황으로 다시금 세계를 몰아넣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각국의 무기회사를 배 불려주는 일이 되고 정책 입안자에게도 로비 등으로 쏠쏠한 이익을 보게끔 만들어줄 것이긴 하며, 그런 방산 업체 등에 투자하는 이에게도 이익을 보게 하긴 할 것이다.
그런데 궁극적으로는 그 소수 덕에 다수가 더 큰 위기에 내몰려지게 되고, 인류 모두의 종말의 시계는 좀 더 앞당겨지게 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수백 년 뒤에 인류 문명의 초기화를 다시 겪고 새로운 문명을 다시 만들어가자는 것이 이런 군비 증강 찬성자들의 주장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어디까지나 더 호의호식하고 더 많은 부와 명예와 존중을 획득하려는 게 목적일 테니.
그런데 그 권력과 부, 명예, 사랑에 대한 욕망에는 결코 만족함이나 충분하다는 기준이 명확하게 서있지 않다. 그것만을 추구하는 이에게는 멈춤이 없다는 것이 큰 문제다. 그래서 이 세계가 하루하루 더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이제 인류에게는 버거운 인공지능의 사람 대체라는 흐름과 더불어, 한동안 잊고 살 수 있었던 핵을 포함한 초강력 무기의 확산의 흐름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좋은 일이 같이 오는 것은 참으로 드문데 비해서 나쁜 일이 같이 오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자주고 더 쉽게 오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