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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 가혹한 수련에 대한 우화

강박적으로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여야만 한다는 신념에 음악을 덧붙이다

by Roman

영화의 주연이 "마일스 텔러"라는 것을 마지막에 크레디트가 뜰 때에서야 알았다. 왠지 낯익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뭔가 인생이 알게 모르게 꽉 막혀 있는 비염 걸린 코를 가진 만성 비염 환자의 인상을 지닌 이 사춘기의 젊은이가 "탑 건 2"에서도 아버지의 이른 죽음 이후의 불우한 삶을 산 인물의 이미지와 연결되지 못한 것은 왜였을까?


(출처: IMDB)


그것은 각각의 영화에서 맡은 역할이 겪고 있는 고난의 질과 양이 달라서다. 그 양쪽의 고난과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의 양상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영화 사이엔 10여 년의 긴 시간 간극이 있고, 음악 영화와 액션 밀리터리물이라는 장르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위플래쉬"에서는 밴드에서 드러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고, 누릴 수도 있었을 사랑마저 팽개치게 만드는 커다란 장벽인 밴드의 지휘자 "테렌스"가 갖고 있는 자기중심적이고 강박적인 "빌런"의 무자비한 밴드원 훈육 과정이 나왔다면,


(출처: Yahoo Movies UK)


"탑 건 2"에서 자신의 동료의 죽음이 그의 아들에게도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트라우마"에 빠진 "매버릭"의 이타적으로 파일럿으로의 승급을 가로막는 모습과 상반된다.


각각의 장애 앞에서 대응하고 맺게 된 결론, 주인공이 장애에 대응하는 연기와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그의 외모도 풋풋한 하이틴에서 조금은 능글능글하고 늙수구레함도 느껴지는 청년으로 변모했기 때문에, 그 인상의 변화를 감잡지 못하는 것도 작용했을 것이다.



"위플래시"가 위대한 작품이란 이야기는 검색을 할 때마다 여기저기에서 봤다. 그리고 그것을 만든 감독인 "데이미언 셔젤"은 "라라랜드"로 흥행과 평론 양쪽에서 커다란 성과를 얻고 아카데미 6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영화제 사상 최연소 감독상 수상 감독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 이후에 만든 "퍼스트맨"은 몇 번 보려고 시도했지만, 영화 전개가 너무 더디고 어둡고 우중충한 탓에 끝까지 보지 못하기를 몇 번 반복하다가 다 보길 포기했고, "바빌론"은 할리우드의 역사에 바치는 그의 헌사로서 꽤 재미있다고 느끼면서 봤지만 "브래드 피트"와 "마고 로비"의 열연과 여러 작품에 바치는 오마쥬가 상당히 많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흥행 성적은 아주 높진 않았다.


"라라랜드"를 만든 감독이 "위플래쉬"를 만들었을 거란 사실을 미리 알지 못한 채로 두 영화를 본다면 같은 감독이 만들었다는 추리를 해내기는 꽤 힘들 수 있다. 둘 다 해피앤딩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결론을 만들어내지만, 풋풋한 첫사랑의 추억을 관객에게 되살려주는 따뜻함 가득한 뮤지컬 작품인 "라라랜드"와 비교하자면,


거칠고도 과격하게 "재즈 연주계"라는 좁은 바닥에서 성공적인 연주자로 살아남기 위해 독재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심약한 이는 자살까지 하도록 만들 정도로 극한으로 심리와 체력을 탕진하도록 몰아붙이는 권력욕과 성공욕에 찌든 밴댕이 속알딱지 같은 이기주의자가 시키는 대로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모든 굴욕과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소화하기 위해 인생의 극단까지 자신을 몰아붙이는 인물을 다루면서 재즈 연주가 장식처럼 보이는 "위플래시"는 완전히 다른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출처: The Film Magazine)



그러나 공통점은 음악적인 완성을 추구하는 외골수 같은 주인공이 재즈 연주에 몰입해서 자신의 사랑을 망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온다는 것이다. 통상 가진 것 없는 젊은이가 경쟁에서 성공할 방법인 희소한 좁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승리에 몰입”해서 살아가는 동안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얼마나 많은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게 된 그 쏟아버린 기회는 성공한 이후에도 섬광처럼 다시 회상으로 나타나며 인생의 후반부까지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괴롭히기도 하고 회한에 젖게도 한다.


"위플래시"는 "드럼 연주"에 대한 강박을 통해서 사랑을 포기하며 성공을 선택하는 과정을 계속 밟아가며 그가 증오하고 싫어하면서도 자신을 그 성공을 위해 몰아붙이고 강박에 빠뜨리도록 만드는 세상을 오히려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따라가는 현대의 예술가의 모습을 잘 드러내는 동시에 그것이 비단 "예술가"의 이야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줬다. "위플래시"라는 곡 제목이 갖고 있는 가혹하게 연주자를 밀어붙이는 영어단어인 "Whiplash(가혹한 채찍질)"는 공부를 하건 일을 하건 우리가 자기 몸과 마음에 가하고 있는 충격의 상징화된 "강박적인 몰아 붙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작품에서 바로 "라라랜드"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위플래쉬"에서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한다고 믿고 관계를 끊었던 연인에 대한 기억을 현대인이 성장과정 속에서 자신의 과거에 버리고 온 것으로 치환하면서, 좀 더 부드러운 연상작용과 더불어 풀어내기 위해 만든 작품이어서가 아니었을까?


이 두 개의 재즈 음악을 다루면서도 다른 질감을 다룬 영화는 벌어진 상황에 대한 두 가지 다른 각도의 관점에서 본 내용을 서로 다르게 풀어낸 수작들이다. 보는 순서는 어느 쪽을 봐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내 경험을 되살려보자면, "위플래쉬"를 보고 얻어맞은 마음을 추스르는 의미에서 "라라랜드"를 보는 것이 두 작품을 가능하다면 짧은 시간 내에 연달아 보기에 적합한 방법인 것 같다. "라라랜드"를 본 뒤에 한참 뒤에서야 "위플래시"를 볼 용기를 내게 된 것은 다른 질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스파이더맨" 등의 작품에서 통상적으로는 언론사의 편집장 등으로 자신이 표적으로 삼은 존재를 비하하고 프레이밍 해서 바보나 인류의 공적으로 만들어가는 "빌런"아닌 "빌런" 부류의 역할을 해온 "JK 시몬스"는 이 작품에서 오로지 하나의 미덕은 극한으로 사람을 몰아붙여 그의 한계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뽑아내는 산파 역할을 자처하는 모습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지질한 "빌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 "위플래쉬"에서 그를 그저 악역으로만 인식하기 어렵게 하는 것이 바로 그 미덕이다.

(출처: C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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