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의 연습, 그리고 공연>-각자의 선행(완결)

결국 이 자원봉사의 공연을 하도록 이끌어왔던 힘은 선행이었다.

by Roman

1. 왜 이 단체의 후원자 합창단에 속해서 지금까지 연습을 하고 공연에 서게 되었나?

이곳에 이 단체의 산하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합창단인 (한국) 후원자 합창단에 참여기를 써온 이유는 그것이 선행으로써 마땅히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 계속 내 마음이 머물고 행동이 이뤄지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 자신의 자기 현시욕이라는 욕심도 채우기 위한 바가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고픈 사교욕도 있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중독되어 온 노래방 문화가 사라져 가는 한국에서 노래할 기회를 매 연습 때마다 가질 수 있었다. 혼자 마이크 들고가 아니라 같이 악보를 쳐다보면서였지만.


주말마다 교회를 억지로나마 가고는 있으니 성가대에 들어갈 만도 한데, 찬송가나 성가만을 연습하는 것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성가는 바흐나 헨델 등이 떠오르는 시대에 유럽에서 편곡되었을 그레고리안 성가뿐이다. 미국풍의 성가는 단, 한곡도 사실 부르고 싶지 않다.


이 단체의 후원자가 되는 일에는 여러 가지 경로가 있다. 핵심은 정기가 되든 수시가 되든 우선은 기부를 하는 것이고, 이렇게 기부를 하고 있음을 타인에게 알리고 타인 또한 감염이 되듯이 기부를 하게끔 만드는 것이 이 단체의 이념대로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을 돕는 일이 된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동참하는 것이다.


유명한 모델이나 연예인을 고용해서 멋진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만들고, 이쁜 팔찌나 반지 등을 일정 이상의 기부를 하는 후원자에게 주어서 자신이 선행을 하고 있음을 자신도 기억하고 남에게도 알리는 것도 이 기부의 전염성을 높이는 또 다른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 분야의 크리에이터"라는 브런치 북에 지금까지 내가 작성해 온 글의 카테고리에 맞는 명칭이 떡하니 쓰여 있기는 하지만, 빈도상 잘 쓰이진 않아도 "소설"이 내가 쓰고 싶은 글의 장르다. 이런 종류의 참여 일지 성격의 글은 어쩌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자료를 모으는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절로 이 참여기를 처음부터 지금까지 써온 것은 일종의 전염 효과를 내 의식과 무의식이 원했기 때문이다. 의식의 요청만으론 이런 글은 절로 쓰이지 않는다.


엄청나게 큰 기부를 하는 후원자는 아니지만, 두 다리를 멀쩡히 움직여 매주 토요일 오전 연습장으로 향할 수 있었던 체력과 음정에 맞춰 발성을 할 수 있는 능력, 아주 모나지는 않게 합창단원 중에 최소한 내가 속한 파트의 어느 정도의 인원과 교감할 수 있었던 사교성, 매월 용돈을 투자하면서 '25년 4월부터 12월까지 방학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정기 연습과 수시 연습에 참여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직장 내의 동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때로 위험했다. 별로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대부분의 반응이 냉담했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딴짓을 한다는 편견을 마주했고, 이 단체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사(이를테면, 기부로 운영되는 단체로 알고 있는데, 소고기로 회식을 했다는 둥)를 들며 이 단체의 후원자가 되는 것을 잘 모르고 하는 일인 양 치부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결국 해명했지만, AI만 뒤져봐도 정확히 알 수 있는 이 단체의 기부금의 사용 비중 등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음에도 안 찾고, 가진 편견과 잘못된 정보를 다 쏟아내서 내가 뭔가 잘못한다는 이미지를 창출하는데 전력을 다하는, 결핍감으로 차서 주변에 끌어내릴 이들만 어슬렁거리며 찾는 이들과 이야길 하다가 이들과 더 이상 논쟁 따윈 하지 말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아무도 그들보다 나은 일을 해선 안되고, 윤리경제적, 정치사회적으로 올바르려고 하면 안 된다.


뭐 딱히 그것만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쟁터화된 직장의 세계는 자기에게 직접적인 이익이 될만한 동료나 상사 등이 아닌 이상 어떻게든 티를 잡아 경쟁선상에서 자신의 아래로 떨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그냥 일상화되어 있을 뿐이다. 요령 좋게 이것을 잘하는 이들이 더 잘 살아남는 바뀐 세태에 남을 돕는 행위를 하는 것도 멍청한 행위로 인식시키기 쉬우니, 후원단체 소속의 활동을 하고 있다는 말하기는 대부분 위험한 짓이다.


그런저런 음해와 비방, 무시, 불인정 등의 반응이 사회적으로 더 많고, 합창단 내부에서 선호하는 곡에 대한 취향을 이야기하거나 좀 더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 외부 공연도 기획하는 것에 대한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도 견디지 못하는 이의 태클을 받기도 하면서 왜 이 합창단 연습을 계속했을까?


그건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기부보다 더 나은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상의 어려운 아이를 돕는 일에는 현금만이 아닌 아이를 도와야 한다는 그 흔한 말이라도 모바일 문명 속의 과잉 생산되고 있는 정보를 넘어서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는 "아이를 도우세요"라는 메시지가 담긴 가사라도 전달할, 훈련받아 일반인보다는 좀 더 나은 음색을 갖게 된 합창단의 목소리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다른 이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올바른 일"을 추구하면서 토요일 오전의 귀중한 시간을 계속 이곳에 어김없이 투자를 하면서 나왔을 것이다. 저마다의 다른 선행을 위해서 참여해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런 목적에는 또 다른 욕심이나 욕구도 끼어든다. 인간인 이상 단 한 가지만 바라면서 순수하게 어떤 일에 몰입하지 않는다. 그 몰입 이전에 그 몰입 상태로 그를 몰아넣은 수많은 사념이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의 강력한 실행이 쌓이고 쌓여서 초반에는 초라한 실력에 대한 공격을 주로 받던 베이스가 그럭저럭 사운드를 낼 수 있는 파트가 되었다는 인정을 받게 되면서 구성원의 자부심도 올라갔다. 어떤 파트 못지않게 더 시간을 내고 열심이었던 것이 빛을 봤다.



2. 돌발 사태의 연속

공연 전의 금요일의 오후의 연습은 곡을 연습하는 것보다는 동선을 짜고 무대 위에 올라가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


반차를 내고 좀 더 일찍 사무실을 나서서 약간의 여유를 갖기 위해 조금 이른 저녁을 하고, 차를 한잔 마실 시간을 신입 7기의 일부 단원이 누리고자 했었지만, 그 전날 심야에 약간은 청천벽력과도 같이 그전까지 가정했던 모양의 단이 아닌 다른 형태의 단이 와서, 그 전주에도 했던 파트 배치와 동선이 모두 무너져 버렸다는 이야기를 듣고선 그런 여유를 누릴 마음은 사라졌다.


역시나 무슨 일을 하던 따라붙기 마련인 돌발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동시에 갑작스럽게 악보를 모두 보고 하려 했던 의도도 틀어져서 남성 중창 2곡과 여성 중창 2곡을 모두 "암보"로 불러야 한다는 내용도 불과 공연 하루 전에 통보가 되었다. 구성원에게 불만이 없었을 리는 없지만 그래도 견뎠다.


그래도 이런 공연에 대한 경험이 훨씬 많았을 것이 분명한 "지휘자"님과 "반주자"님은 바뀌어진 상황 속에서도 단원의 동요를 가라앉히고 의견을 종합하면서 배치를 다시 짰고, 이 과정에서 복잡해진 동선 교육 등에 참여하지 못한 단원은 공연에 설 수 없다는 강력한 조치를 취했다.


이것은 일면 관용 없이 너무 잔인해 보이기도 했고, 그전까지 수개월을 이 공연을 위해 같이 연습했지만 불가피한 일정으로 올 수 없는 단원에게는 너무한 조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다음 날 공연장에 가서는 더더욱 잘한 조치였음이 드러났다.


공연장에 이르러서 겨우 최종 리허설을 하기 위해서 공연장에 놓인 단 위로 올라갈 때, 너무 좁은 단의 폭과 예상 밖으로 짧은 길이, 높이 쌓아 올려진 단이 상상했던 단과 달리 너무 가파른 경사와 높은 각단 사이의 간격 때문에 맨 위에 올라선 내겐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앞 뒤 단원 간의 간격이 너무 좁아서 여유롭게 악보를 펼치기가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었다.


만약, 전날 연습 없이 온 단원이었다면, 패닉에 빠질 수도 있었다. 단 한 명이라도 그랬다면, 그 전날 했던 연습 때문에 이 같은 돌발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합창하고자 했던 인원에게 모종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율동도 짜고 입퇴장의 순간에 악보를 주고받는 내용도 짰었지만, 단의 모양이 달라졌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생각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마이크의 배치 등도 지휘자님이 요청한 것과는 달라서 설치 담당자에게 무대에서 문의를 했는데, 역시나 이 달라진 사회에서 열심히 구성원들에게 전달된 지식대로 '이건 조정하거나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주문받은 대로 만든 것이라 일절 변형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칼같이 자르는 답변만을 들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점점 삭막해지는 일면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았다. 최대한 이기적으로 처신하며, 책임을 최소화하거나 회피하며,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 약간의 손해도 용납하지 않도록 만드는 경향은 이제 마치 현명한 방향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포장된다. 약간이라도 맞지 않는 이들과는 동떨어져 살아가라고 분열과 불안, 불신을 각인시킨다.


여기에서 그동안 능수능란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지휘자"님도 패닉에 빠진 듯한 표정까지 짓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니 오히려 단원이 자신을 챙기면서 더 이 난감한 상황을 스스로 해처 나가야 한다는 동기를 얻었던 것일까?


정신없이 합창을 하면서 물론 배운 것과는 다른 양상으로 박자가 빨라지거나 율동을 달리하거나 크리스마스용 액세서리 부착을 건너뛰는 등의 사소한 실수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무리하지 않고, 아마추어 답지 않은 음색과 조화를 이루며, 얼핏 연습은 그래도 열심히 한 음색으로 첫 레퍼토리부터 끝까지 다 불러서 마쳤다.


무대를 마치고 나서 뒤풀이 회식이 2, 3, 4차로 길어지면서야 무엇이 공연 중에 잘못된 것이었는지 등의 리뷰가 지휘자님과 여러 파트장님, 경력이 긴 단원을 통해서야 발설이 되었지만, 공연을 하는 그 순간 동안에는 돌발사태라는 위기를 이겨내고 공연장에 온 가족과 지인을 위해서도 마음에 여유를 갖고 정신 차려서 합창을 한 단원 모두의 위기 대처 능력과 쌓아온 실력은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3. 그리고 내년을 향한 금년의 마지막 회식

한참 앞서의 글에는 내가 오랜 시간 의미 없이 길어지는 차수를 늘려서 마시는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남겼었지만, 그 공연일의 밤부터 다음날 이른 새벽 무렵까지 길어진 회식 자리는 파할 때까지 계속 참여했다. 중간에 졸다가 다시 깨서 일어나기도 하면서 이 드문 경험을 더 오래 누렸다.


그저 합창 연습만 하고 공연만 하는 가운데에선 잘 알지 못했던 지휘자님의 다른 면모를 많이 더 잘 알게 되었고, 아직 계약 연장이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내년의 합창단 활동에 대한 포부를 단원들에게 심어주었던 내용도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지휘자님과 반주자님은 경제적 보상을 받고 있지 않고 거의 무급으로 저마다의 본업을 하는 상태에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이 합창단 활동에 재능 기부 형식으로 참여하면서도 그 동기를 잃지 않는 젊음을 다른 단원에게도 감염시켰다. 물론, 괴로운 요소도 있어 그 또한 듣게 되었지만, 어떻게 바로 도울만한 일은 아니다 보니 그저 경청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었다.


마지막 자리에선 내가 가진 꿈이 "오, 포르투나"라는 궁극의 성가 합창을 몇 년내에 해보는 것이라고 하니 그것을 위해서는 2천여만 원의 비용이 들지만 이것을 위해서 이 단체가 비용을 부담할 상황은 전혀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만을 이야기해 줬다. 또 다른 생각을 하거나 덧붙일 수 있었지만, 바야흐로 이성이 마비되고 있는 시간이었으므로 말을 줄였다.


나의 직업 경력에서 마케터로서의 비중은 크다. 이 같은 합창단이 나름의 유명세나 존재감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합창단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시그니처인양 자신 있게 소화할 수 있는 곡이 하나 있어야 하고, 그것을 부르는 모습이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야만 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내 마인드셋이다.


브랜드 마케팅을 함에 있어서 시선을 끌고 오래 기억에 남아 소비를 유도하는 신호가 되기 위해선 그 브랜드만이 가진 남다른 바가 있어야만 한다. 잘나고 더 나은 것만으로 그 남다름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브랜드가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간 바가 있어야만 하는 것처럼. 아무나 들어와서 하게 된 합창단이긴 하지만, 그 아무나는 남다른 아무나가 될 수 있는 자기만의 합창곡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단원 중에 한 분은 아주 오래 전의 연쇄살인사건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로서 제대로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용의자가 죽은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을 위해 나선 용기 있는 제보자로서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것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고 꼭 봐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이 역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안에 대한 자기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동시에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중요한 프로그램이라 그 회식일 밤이 본방 상영시간이라 먼저 회식 자리를 떠난 뒤에도 꼭 봐달라는 이야기를 남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에 있는 아이를 위한 후원활동도 중요하지만, 이 사회의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갖는 것도 일종의 선행이 되는 것이니 그 다음날에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공연까지의 연습과 공연, 이후의 이야기를 모두 종합해 보니 남아서 공연까지 우여곡절 끝에 할 수 있기까지 모두가 열심이었던 것은 단순한 동기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를 여럿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공연장에 왔던 장모와 아내, 아이의 얼굴이 나와 같이 사진 속에서 기쁜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봐서 내가 한 공연은 "올바르고 즐거운 일"이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올바르고 똑바른 방향이라고 타당한 근거를 통해서 믿고 있는 일을 하거나 그 방향으로 갈 때 제대로 된 근거 없이 그 방향을 향해 가는 것에 대해서 비웃거나 비난하는 목소리에 경도되거나 스스로 머릿속에 그 근거 없는 비난을 퍼붓는 잔소리꾼을 들어앉히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 중요한 일을 해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유튜브나 인터넷의 그 어느 공간에도 아직 이러한 합창단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동영상은 제대로 뜨지 않았다. 이 글의 표지에는 우선 이분들이 초상권 사용에 대한 권리에 대한 보상을 요청하시진 않을 거란 생각을 하며 나를 포함한 사진을 하나 올렸다. 그리고, 공연에 관련된 동영상 등은 나중에 유공적으로 동영상 배포를 한다면, 그 링크를 올리려 했으나 올라오는 것이 없어서 안 올린다.


이곳에서 글을 읽어주는 몇 분의 단원님들과 독자님들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전하며 덧붙인다.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다. 내년에도 이 같은 참여기를 쓰게 될까? 그것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쓰게 된다면 "~참여기"가 아닌 다른 형식의 제목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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