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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번째 연습>-수요일 저녁 수시 연습

내구성과 끈기가 강한 단원들이 모여서 한 번이라도 더 해낸 연습의 풍경

by Roman

수요일 저녁에도 약간의 야근이 필요한 강도의 일이 있긴 했고, 유럽과 연관되어서 좀 더 해야 할 일이 있긴 했지만 마무리하고 회사 근처의 합창연습장으로 향했다. 그저 걸어서도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는 곳에서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10분의 산책 정도야 어렵지 않다.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는데, 토요일 정기 연습 때보다야 사람이 적었지만 대략 열정적이고 내구성이 높고 끈기가 강한 가운데, 이 시간에 참여가 가능한 분이 반 수 정도가 있었다. 정기 연습이 아니므로 출석부를 기입하진 않았지만 서로 노래 부르며 나누는 열정만으로도 이 참석은 충분히 보상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을 뒤돌아보니, 이 합창단에 속하신 분들이 가장 중요한 독자이므로, 그분들이 오늘 진행된 연습의 내용 중에 특기할만한 부분을 다시 찾아볼 수 있게 쓰는 것이 중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그 부분에 집중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1. 연습 시작 전: 악보와 노안

연습 시작 전, 새로 배부된 악보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악보가 확대 복사되어 큼직했는데, 지휘자를 대신 맡으신 음악 전공자인 머리가 하얀색인 "교수님"풍의 여자 단원님은 제본되어 나온 공연곡 전체의 악보 책을 펼치면서 공감을 사는 이야기를 먼저 하셨다.


"악보(의 글자가) 커야 좋다. 예전에 악기 할 때는 몰랐는데 합창단이 10년이 지나다 보니 전반적으로 연세가 올라가고 노안이 와서 큰 게 필요하다"며 농담 섞인 이야기를 건넸다. 나도 동의했다. 그 단원님보다야 내가 젊긴 하지만 이미 노안이 온 지 좀 된 50대 초반도 글자나 음표가 작거나 흐릿한 악보는 꺼려진다. 제본의 과정에서 이 합창단의 연령대를 고려한 센스에 맘속으로 박수를 쳤다.


2. 첫 번째 연습 시간: 캐럴들

아카펠라 캐럴: 이 연습 전에 지휘자님 대리 지휘자님에게 첫 곡이라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악보 그대로 부르기보다 몸을 흔들어가며 리듬을 타는(Swing) 느낌으로 부를 것을 주문했다.

또한 곡의 캐럴: 영어 가사 발음과 음정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특히 한 부분에서 음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야 한다는 점(파→미)을 반복해서 교정했다. 영어 가사라 흐름을 타지 못하고 딱딱해지는 부분에 대해, 강약을 살려 예쁘게 불러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3. 휴식 시간의 공지사항

단복 소품 혼선: 지난주 배부된 스카프와 행거치프가 섞여 나간 사건이 있었다. 남성 단원용 행거치프(반으로 접힌 작은 것)가 여성 단원들에게 잘못 전달되었으니, 집에서 확인해 보고 작은 것이 있으면 남성 단원 것이니 돌려달라는 안내가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발견되었다.


4. 파트별 연습 및 남성 중창

남성 파트: 마지막 한곡 남은 그레고리안 성가와 가요를 편곡한 남성만의 중창곡을 연습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경우에는 반주 없이 전체 아카펠라로 박자를 맞추는 것이 어려워, 메트로놈을 켜고 연습해도 소리가 잘 안 들려 박자를 놓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이곡을 반년 가까이 연습한 중에 처음으로 '그럴듯하게 잘 불렀네요!'라는 반응을 들었다. 희망이 보였다. 이곡을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어렵다는 데 있고, 두 번째는 부르면서 도파민이 분출되기 때문이다. 가사가 뭔 뜻인지 대충은 알지만 아무 생각 없다.

여성 파트만의 곡은 뒤쪽에서 따로 파트 연습을 진행했다.


5. 여성 파트곡에 박수 조력(아카펠라 캐럴곡), 전체 합창 캐럴곡의 난항 지속

흥겨운 여성 아카펠라 캐럴: 지휘자님이 요청한 손뼉 치는 동작과 노래를 동시에 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여성단원들이 호소했다. 대리 지휘자님은 "남자들이 박수를 대신 너무 잘 쳐주는데, 노래를 하면서 여자들이 박수까지 치기는 어렵다"라고 했다. 몇몇 남자단원이 흥에 겨워 잘 쳐줬다.

빠른 전체 합창 캐럴: 템포가 빨라 가사를 따라가기 벅차다는 의견이 있어 천천히 연습을 시작했다. 중간에 조가 바뀌는 부분(Key change)에서 첫 음을 잡지 못해 몇 차례 다시 시도했다. 가사 중 일부 단어를 잘못 부르는 해프닝도 있었다.


집에 도착해 도어록을 열고 들어가니 늦은 시간 가족들은 이미 잠자리에 든 것으로 보였다. 9시 40분쯤에 끝나고 집에 오니 이미 심야가 되어 있었고, 이보다 더 오랜 시간 걸려서 자기 차를 몰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온 단원들은 얼마나 더 늦었을까 싶었지만 피로가 몰려오며 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돌아온 뒤에 몇 가지 루틴인 일본어 공부와 AI를 업무 도구로 사용하기 위한 실험, "내면소통"을 읽으며, 피로가 완전히 이성을 점령할 때쯤에 잠들었다. 이런 풍경이 나만의 것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고, 누가 강제로 억압하며 시키는 일도 아닌 합창연습에 대한 단원들의 열정이 또 다른 단원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무대에 서선 관객의 열정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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