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번째 연습>-급하지 않게, 공주와 황소

공연 D-10 평일 저녁 연습, 공연 D-7 토요일 오전 연습

by Roman

1. 서로 다른 속도의 마음들이, 마침내 하나의 화음이 되기까지 (D-10)

부제: 폭풍 같았던 평일(수요일) 추가 연습 참관기


공연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거의 발등이 타들어 가는 심정으로 평일 저녁, 우리는 다시 모였다. 다들 생업에 지친 몸을 이끌고 연습실로 모여든 이유는 단 하나, "이대로 무대에 올라갈 수는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그 전 주에도 평일 연습이 있었지만 인원은 대략 반수가 좀 안되게 왔었다. 그래서 이번 주에도 그정도 오지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주말에만 보던 얼굴들이 꽤 많이 참석해서 그 위기감이 느껴졌다. 평일 연습에는 참여할 수 없는 지휘자님 대신에 반주자님이 대신 연습을 진행했다.


최고의 성과는 여성 아카펠라 캐럴 하나가 난항을 겪고 있었는데, 심기일전해서 일정 수준 이상으로 단시간 안에 끌어올린 것이었고, 그것의 연쇄 반응이랄까 전체 캐럴곡 하나 또한 난항이었지만 뒤따르듯이 단시간에 안에 확연히 더 좋아졌다.


"빨라집니다. 자꾸 빨라져요. 무너지고 있어요."

오늘의 금기어는 '가속'이었다. 반주자님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은 "제발 반주를 들어라", "혼자 달리지 마라"였다. 신나는 곡을 부를 때면 우리는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만 반주자님을 앞질러 달려 나갔다. 마치 퇴근길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처럼, 음표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특히 엇박자가 난무하는 그 구간. "한 박자 반을 쉬고 나와야 한다"는 지적을 수십 번 들었지만, 마음 급한 우리는 자꾸만 반 박자 일찍 튀어 나갔다.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는 순간이랄까. 메트로놈을 켜놓고 연습하라는 처방까지 내려졌다.


"음정, 박자 다 중요하지만... 행복이 느껴지지가 않아요."

가장 뼈아픈 피드백은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행복'과 '가족'을 노래하는 서정적인 곡을 부를 때였다. 우리는 악보에 적힌 콩나물 대가리를 쫓아가느라 급급해, 정작 그 노래가 담아야 할 따뜻함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반주자 님은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은데, 관객이 어떻게 행복을 느끼겠습니까?"


마치 싸울 때 욕설에 감정을 실어 보내듯(?), 노래에도 감정을 실어야 전달이 된다는 비유에 연습실엔 잠시 웃음이 터졌지만, 속으론 다들 뜨끔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위로를 전하고 후원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다. 기계적으로 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가사가 가진 힘을 전달해야 했다.


"자신감이 없으니 소리가 작아지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어요."

틀릴까 봐 위축되어 우물쭈물하는 목소리들이 모이니 화음은 더욱 엉망이 되었다. "틀려도 좋으니 자신 있게 질러라!"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신기하게도 서로를 믿고 목소리를 키우니, 삐걱거리던 화음이 조금씩 맞아들어가기 시작했다.


연습은 치열했다. "10시 정각에 문을 닫아야 하니 신속하게 퇴실해 달라"는 민원이 들어올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연습이 끝나고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묘한 안도감이 든다. 오늘은 비록 박자를 놓치고 음정을 틀렸을지라도, 우리가 맞추려 했던 것은 단순히 노래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공연 당일, 우리는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흘린 땀방울만큼은 배신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2. 무대를 향한 마지막 담금질: 공주님의 마음과 춤추는 캐럴 (D-7)


마지막 연습일은 다음주의 금요일이 더 남아 있지만, 실질적으로 오늘이 우리가 갖고 있던 패턴과 서로의 일상에 최대한 지장이 가지 않는 상태에서 참여한, 자신의 생활 리듬에 맞춰서 한 마지막 연습일이라고 느꼈다. 그 금요일은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연습이라기보단 공연 그 자체여야 한다.


어느덧 입김이 나오는 계절이다. 목도리를 칭칭 감고 연습실에 들어선 단원들의 얼굴에 찬 공기가 묻어있지만, 다가올 공연을 향한 열기만큼은 뜨거운 날이었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디테일하고, 때로는 따끔하지만 유쾌했던 연습 기록을 남겨보게 되었다.


1) 소프라노는 공주님처럼, 베이스는 황소 탈출 금지

오늘의 연습은 캐롤 메들리로 시작했다. 특히 소프라노 파트에게 내려진 지휘자님의 특명은 인상적이었다.


"소프라노는 항상 공주와 같은 마음으로 하셔야 합니다."

고음에서는 밝고 화사하게 소리를 내다가, 음이 내려오면 갑자기 색깔이 변해버리는 것을 경계하라는 주문이었다. 지휘자님은 이를 '카멜레온'이나 '버건디 색깔'에 비유하셨는데, 쨍한 레드처럼 일관된 밝음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반면, 남성 파트에게는 조금 다른 주문이 떨어졌다. 너무 힘이 들어가 저돌적으로 나오는 소리를 경계해야 했다.


"황소도 아니고... 베이스만 시키면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경향이 있어요."

부드럽고 감미로운 크리스마스를 위해, 남성 단원들은 힘을 빼고 조금 더 섬세해지기로 했다.


2) 신나는 캐럴 한곡은 밥알이 뭉개지지 않게

익숙한 노래일수록 함정은 도처에 있다. 한국어로 번안되었던 해당 캐럴곡을 부를 때 늘어지게 불러온 습관이 있는데, 지휘자님은 이를 단호하게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더 짧아야 돼요."

마치 밥이 너무 질어서 떡이 된 느낌이 아니라, 고슬고슬한 밥알처럼 리듬이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뻐꾸기 시계의 맑은 소리처럼, 혹은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처럼 경쾌하고 짧게! 스타카토 리듬을 살리는 것이 이번 캐롤의 핵심이었다.


3) 대중 가요 편곡 남성 합창곡 한개와 가족을 다룬 남성 합창곡 한개

이어지는 남성 합창곡 연습에서는 가사의 의미를 곱씹었다. 남성 파트가 부를 때, 지휘자님은 '절여진 부추'라는 기막힌 비유를 던졌다. 숨이 죽어 야들야들해 보이지만, 그 안에 쌩쌩한 힘이 살아있는 소리. 투박하게 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담아 건네는 얄상하면서도 단단한 고백이어야 했다.


또한 '가족'이라는 단어를 너무 무겁거나 껄끄럽게 대하지 말고, 소중하게 다루라는 당부도 있었다.


4) 시선은 관객에게, 발끝은 조심스럽게

공연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건 노래뿐만이 아니다. 입장과 퇴장, 동선 체크가 시작되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바닥을 보고 걷는 습관은 무대 위에서 금물이다. 불안하더라도 시선은 앞사람의 뒤통수, 혹은 관객석을 향해야 한다.


특히 여성 단원들의 구두에 대한 주의사항도 있었는데, 앞코가 네모난 '스퀘어 구두'는 단상에 걸려 넘어질 위험이 있어 피해야 한다고 했다. 사소해 보이지만, 안전하고 우아한 입퇴장을 위해 꼭 챙겨야 할 디테일들이다.



D-Day를 향하여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는 다음주 금요일에 최종 리허설이 진행된다. 이 날 중에는 실제 무대를 밟아보고, 턱시도와 드레스를 갖춰 입고 진행하는 총리허설도 있을 것이다. 토요일 본 공연을 앞두고 우리의 하모니가 완성되는 순간이 될 것이다.


우리가 연습한 노래 가사처럼, 조금은 고되지만 함께여서 즐거운 이 여정이 아름다운 무대로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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