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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Yoonher Oct 30. 2022

하나도 부럽지가 않아.

재미있게 살자

몇몇이 모인 식사자리에서 누군가 툭 말했다. 사는게 재미없다고. 친구의 지인이으로 잠시 자리에 합석했던 그는, 내게 푸념을 하기에는 초면이었다. 하지만 진심같았다. 작고 동그란 뿔테안경 뒤의 눈빛이 그랬다. 부족할 것 없어보이는 그가 차분하고 단정한 태도로 앉아있는 모습은 '재미없다'는 말과 대조적이어서 슬퍼보였다.


십 년도 훨씬 전에 들었던 비슷한 말이 기억났다. 우연히 일 때문에 친해진 모 기업 회장님이 있었다. 면접 보러 간 자리에서 1시간 동안 열띤 대화를 나눴다. 이직대신 공부를 택하게 되었고, 밀라노 유학을 가서도 종종 이메일로 안부를 주고받곤 했다.


청담동 편집샵 바이어로 일을 할 때도 그는 든든한 고객이 되주었다. 에르메스 원단 퀄리티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소한 발언과 함께, 늘 새로운 디자인과 브랜드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멋쟁이였다. 넓다란 사무실에가면 해외 잡지에서나 보던 수천만원의 디자인 가구들과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이 걸려있었다. 가끔 만나 패션, 디자인,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대화의 리듬은 수다스러움 보다는 자연스러운 끊김이 있는, 느릿함을 유지했다.


한 날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셨다.


"이런 거 하나도 부러워 할 것 없어요."

기다란 원목 테이블에 브라운색 스웨터를 입고 앉아, 두 손으로 커피잔을 감싸며 말했다. 화려한 공간에, 럭셔리 브랜드가 아닌 것이 없는 삶을 살지만 즐거움이라고는 하나도 없다는 표정으로. 이상하게도 그 말이 놀랍지 않았다. 응당 언젠가 그가 한 번은 했어야 할 말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한 번도 부러워 해 본적이 없네.' 나는 그때 갓 서른을 넘긴 나이, 청담동까지 왕복 3시간을 출퇴근에 쓰고 있었다. 전 세계의 럭셔리 패션과 문화를 보고 바잉하는 일을 하면서, 아침이면 광역버스에 메달려 출근했다. 정신세계와 내 삶의 현실이 주는 모순이 귀여워서 버스 안에서 혼자 피식 웃곤했다.


당시 살던 경기도 외곽의 작은 아파트는 70%대출금의 6.5% 이자를 내고 있었다. 재미없다고,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다.   


하나도 부러워 할 것 없다,는 말에 이어 회장님은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 세 가지를 이야기 했다. 제철음식 먹기,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기. 작고 사소하지만 생동감 있는 것들을 하나씩 진지하게 꺼내며 이야기 했다. 한 가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몇 년 동안 생각을 해봤지만 그게 뭐였을까. 생각이 나지 않는 걸 보니 서른의 나이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행복이었던것 같다. 이제 그의 나이 가까이 된 나는 그 한 가지 행복이 뭐였을까, 묻고 싶어서 그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이젠 행복을 찾으셨을지, 그랬으면 좋겠다.  


인생은 참 아이러니 하다. 서로가 원하는 것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잔뜩이라서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한가득이다. 따뜻한 체온, 온기,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생의 느낌이 없이 많은 돈은 공허하다. 네이버 검색어 1위에 등장하는 이름의 화려한 삶이라도, 그토록 원하는 건 매우 기본적이라는 것을. 어릴 적부터 주변 환경을 입체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알게되었다.


그래서일까, 살면서 진짜가 아닌 화려해 보이는 삶을 부러워 해 본적이 없다. 열정이 있는 사람,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인생이 재미없을 틈이 없다는 비밀을. 젊음,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젊은 생각이 껍데기의 화려함과 시들한 정신을 모두 이긴다. 당장 가진 것이 없고 재능이 부족한 것만 같아서 불안한 그 마음을 즐기는 사람이 세상을 이기게 된다.


현실은, 우리는 서로를 부러워하고 도전을 두려워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유한한 삶의 소중한 시간을, 타인을 부러워 하느라 보내는 시간만큼 어리석은 건 없지 않을까? 자신을 믿는 것, 그것만이 우리를 한 발 나아가게 만든다.  


얼마 전, 30대 초반의 가까운 후배가 본인이 제일 돈이 없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그녀에겐 젋음이 있다. 자기자신을 믿고 뭐든 저질러 볼 수 있는 시간이. 실패해도 배우고 적용하고 더 크게 될 수 있는 시간이. 그녀의 한탄을 듣자마자 말이 튀어나왔다. 너가 최고라고, 뭐든 하고 싶은거 하면 된다고. 쫄지말고 하라고!  


재미있게 살자. 하루하루 즐겁게.

스스로, 기대지 말고,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괴로움을 해결해가는 지금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그것도 아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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