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뭐에요? 대뜸 이런 질문을 받으면 당황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큰 꿈 없어요. 그냥 평범하게 무탈하게 사는게 꿈이에요."
20, 30대 초반까지 나의 꿈은 평범하게 잘 사는 것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꿈을 운운하는 것은 생경한 마음이 들었다. 꿈자체를 과대포장 하지 않기 위해서 늘 꿈은 담백하게 낮추어 포장했다. 혹시 이루지 못하더라도 심리적 타격같은 건 받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게, 하지만 잘.' 완벽하게 모순된 꿈을 꾸면서 마음대로 안되는 현실을 탓하곤 했다.
'평범'이라는 말은 지나친 큰 꿈을 꾸지 않고 현실을 자각하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었다. 적당한 꿈을 꾸는 것 쯤은 그리 욕심이 지나친 일이 아니니까, 언젠가는 이룰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주었다. 평범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십 대 막바지에 결혼을 하고나서야 깨달았다. 적은 돈으로 신혼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3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독립'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결과는 뻔했다. 평범의 삶이란 현실과는 먼 환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진 돈에다가 난생 처음 대출까지 받아서 마련할 수 있는 공간은 10평 오피스텔 전세였다. 같은 시기에 친한 지인들이 결혼하고 얻은 신혼집은 우리집의 20배가 넘는 금액이었다.
'아, 평범이 뭐였더라?' 한 방 맞은 기분으로 며칠을 보냈다. 평범의 막연함에 대한 허무였다.
평범이라는 기준은 주관적이다. 나의 평범은 '부모님의 고생'을 통해 결과론적으로 누리고 산 삶이었다. 중고등학교때, 턱 없이 비싼 청바지를 갖기 위해서는 중간고사를 잘 보면 되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좋은 태도를 보이면 그만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보니, 부모님에게 나의 요구는 늘 무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의 기준을 높여주기 위해 애를 쓰며 사셨다는 걸 몰랐다. 바보처럼.
가까운 지인이 비슷한 푸념을 했다.
"진짜 특별히 원하는 건 없고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그렇게 큰 걸 원하는 것도 아닌데 왜이리 힘들까요. 하고 싶은 일 하고, 때 되면 결혼도 하고 보통 집에 살면서 여행도 가끔가고. 대단한 거 바라는 것도 아닌데."
평범해지기 위해서 평범을 거부한답시고 산지 17년쯤 된 시점이었다.
"아니, 평범하게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평범하게 살려면 평범하지 않게 살아야 해. 그래야 너가 생각하는 '그놈의 평범'에 갈 수 있어. 너가 생각하는 평범이 대체 뭔데? 살면서 의외로 평범하기가 가장 어렵다."
후배는 대체 무슨소리냐는 얼굴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억울하다는 표정.
후배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상형도 대단하지 않아요.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요."
"아니, 이상형이 평범한 사람이라고? 차라리 돈 많은 사람이 이상형이라는 편이 쉽겠다."
평범은 모든 방면에서 평균이상이면 좋겠다는 개인의 희망을 품은 말 같다. 무난하고 이상하지 않은, 나에게 적절한 정도. 평범의 기준은 모호해서 마치 손에 잡힐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 것 같다고나 할까.
아예 어떻게 살고 싶은지 처음부터 명확한 목표를 정해봐. 평범이라는 허상을 없애버려.
너가 원하는 대로. 만약 그게 뭐 좀 특별하면 어때. 평균, 평범 같은거 지워버리고.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마음을 먹어봐. 그래도 괜찮아. 남들이 들었을때 비웃을 만한 목표를 정해. 차라리. 그 목표를 이루려고 사는 동안 너도 모르게 너가 원하는 평범에 가 있지 않을까. 우리가 말하는 평범이라는 건, 사실 우리의 욕망을 모아놓은 모습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