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일 때, 일이 막혀서 답답할 때면 친구를 붙잡고 하소연했다. 비슷비슷한 친구들과 백날 이야기 한들, 뾰족한 수는 없었다. 그러다 어디 잘 보는 점집이 있다고 하면 찾아가 절박함을 토로한 적도 있다. '내년에 이직해도 될까요?', '앞으로 돈은 잘 벌까요?' 같은 어리석은 질문을 꽤나 진지하게 했다.
방법을 찾아다닌다고 문제가 단번에 해결 될 수 있는 묘책을 찾았을까? 그것도 단답형으로 해결 될 수 없는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그럴리가. '당장의 방법만 찾는다고 인생이 풀리지 않는다.' 이 말 뜻을 이해하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모든 분야가 마찬가지 같다. 당장 잘 되는 방법, 지금 처한 상황을 한 방에 해결해주는 방법을 찾아다닌다고 인생이 나아지지 않는다. 마음이 급해지고, 그렇게 같은 방식으로 선택한 직장은, 투자는, 사람은, 일은 또 같은 문제를 갖고 내 앞에 나타난다. 나쁜 상사를 피해서 이직한 회사에서는 더한 사람이 나타난다. A부분이 아쉬워서 다른 직장으로 옮겼는데 생각치도 못한 문제 B를 마주하게 된다. 피하면 피할수록 문제는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퇴사를 결정하는 시점에는 항상 고민했다. 퇴사를 고민하는 이유가 누구 때문인건 아닌지, 회사의 어떤 부분이 만족스럽지 않아서 그런건지, 아니면 여기서 더 배울 것이 없고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어서 그런것인지. 같은 선택과 행동이라도 원인에 따라 결과값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 선택의 이유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 그러니까 나 자신이어야 한다. 말 처럼 쉽지 않다. 매순간 세상과 타인, 보통의 기준대로 잘 가고 있는지 가늠하기 바쁘다.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함'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다가 허상속의 이상만 찾게 될 뿐이다. 이제껏 나름 계산하고 조건을 따져 고른 선택이 과연 최고였을까? 돌아보면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에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오히려 그냥 마음이 끌려서 한 의외의 선택이 인생을 다른 스테이지로 나아가게 한다. 삶의 우연성.
문제를 푸는 방법은 한 가지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모든 것은 복합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더이상 내 문제를 누군가에게 묻지 않았다. 이를테면, 한 사람의 이미지도 표정, 패션, 태도, 눈빛, 말투, 몸짓, 커리어, 취향, 취미 등 모든 것의 총합 이듯이. 현재 그 사람의 모습은 살면서 이제까지 내린 선택의 총합인 셈이다. 방향성을 잃었다고 생각할 때는 방법을 찾기보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왜 지금 헤매는 마음을 갖는 것일까. 곰곰히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 먼저다.
다급하게 당장의 방법을 찾는 대신 말이다.
전공을 택하고, 직업을 정하고 어떤 회사에 입사하게 되서, 어떻게 일하고 승진하고, 퇴사하는 일. 혹은 창업을 하거나 크고 작은 사업을 하고 무슨 일을 하든 '잘' 살게 되는 방법에는 한 가지의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 가지 이유로 결과값이 나오지 않는다.
단 번에 잘 살게 되는 방법 같은 건 애초에 없다. 너무나도 당연한 이 말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받아 들이는데까지 누구나 시간이 걸린다. 가장 중요한건, 태도와 사고방식. 인생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갖추고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결과값이 갈린다.
단편적인 how를 찾아 다니는 것 보다 why에 대한 인사이트, 성장할 수 있는 환경으로 셋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러니 한 것은 단편적 질문으로 답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좋은 사고방식을 곁에 두고 스스로 멋진 답을 얻게 된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환경을 찾아 나서고, 책을 읽고, 본질이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면서 답을 생각한다.
반대로, 답을 구하기 위해서 질문만 던지는 사람은 오히려 답을 얻지 못한다. 애초에 그 질문 하나로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를 주식 종목 하나만 찍어주세요'와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