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소중하다. 직업의식까지 운운하지 않더라도, 일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로 원초적이다. 오늘, 현재, 지금 내가 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욕망. 살고자 하는 발버둥이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열망이자,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다.
미숙했던 사회초년생 시절, 일을 잘 해낸다는건 마치 어른이 되기위한 관문같았다. 처음 했던 일은 고등학교졸업하자마자 시작한 집 근처 맥주집의 아르바이트였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맥주집이라고 해봤자 친근한 느낌의 펍 이었는데 '일'의 첫 경험은 하루만에 끝나고 말았다. 아르바이트를 허락했던 아버지는 '맥주집 같은 곳에서 일 하는 건 절대 안된다'고 하셨다.
그 후에도 '일'이라곤 카페 아르바이트가 전부였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그래, 이번에는 일을 더 잘해보겠어!'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시급 만큼, 손님이 오면 주문을 받고 커피가 나오면 가져다주고 제때 테이블을 치우면서 특별한 다짐같은 것을 했을리가.
제대로 '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대학교 3학년부터 시작한 패션잡지에서의 어시스턴트 일이었다. 채팅사이트의 단체 잡담 방에서 우연히 한 패션잡지사의 에디터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후, 서로 만나서 '일하기 괜찮을 것 같다'는 느낌을 확인했고 운 좋게 스타일링 어시스턴트를 하게 되었다. 꽤 힘들다고 알려진 '어시스턴트 일'을 3학년 여름방학을 마치고 대학교를 졸업할때 까지 꾸준히 했다.
일은 대략 이랬다. 기획회의를 하고 - 물론 어시스턴트는 옆에서 경청하는 수준이다 - 패션 브랜드의 쇼룸을 돌아다니면서 화보촬영에 쓰일 스타일을 고르고, 픽업한다. 촬영장에서는 포토그래퍼, 모델, 헤어 & 메이크업, 에디터등의 기획과 현실의 조율을 왔다갔다 한다. 보통 종일 촬영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점심은 시켜먹고, 촬영 중간중간 마다 커피를 사다나르는 - 물론 배민같은건 없던 시절 - 일도 어시스턴트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어시스턴트를 하면서도 '일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실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카페 아르바이트와 확연히 다른 점은, 일을 잘 해내지 못했을때의 여파가 크다는 점을 항상 인식하는 긴장상태였다. 화보 촬영날짜가 정해져 있고 옷을 픽업할 수 있는 날짜도 정해져 있다. 제한된 환경에서 뭐 하나라도 어긋나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피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머리속에 저장했어야 했다.
하루에 열댓군데의 럭셔리 브랜드들 쇼룸부터, 백화점, 홍보대행사를 돌면서 패션아이템을 픽업했다. 덕분에 청담동 골목길 동선과 브랜드 홍보담당자의 '일하는 특징'들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제한된 시간에 해내야 하는 업무는 처음 일을 배우기에 최적이었다. 덕분에 To do list를 빠뜨리지 않는 법, 우선순위 정하고 조율하는 효율성을 기를 수 있었다.
초등학교때 몇 개월 동안 소년동아일보 기자를 했다는 이유로, 꿈 리스트에는 막연히 기자가 있었다. 패션을 공부했으니 패션잡지기자가 적합하겠다는 생각도 자연스레 했다. 일을 선택할 때 유독 내 마음상태를 따져묻는 버릇이 있었다. 이를테면, '뭔가 불편한데, 왜그렇지? 어떤 점이 그렇지?' 그렇다면 이 일은 내가 원하는게 아닐지도 몰라. 언젠가부터 이러한 방식의 생각회로를 가동하기 시작했다.
패션잡지 어시스턴트를 하는 동안, 에디터와도 사이가 좋았다. 하지만, 패션잡지기자로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뭔지 모를 매거진, 홍보 바닥의 뉘앙스가 특별한 이슈없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스물 셋, 넷을 지나는 동안 근접거리에서 경험한 화려한 패션의 세계에 흥미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었다.
패션 어시스턴트일은 졸업무렵 대학 친구에게 넘겼다. 그 후 홍보대행사를 짧게 거쳐 패션브랜드에서 상품기획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그때 처음으로 일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아주 자주 했다. 팀에서 뒤쳐지고 싶지 않아서, 윗 사람한테 칭찬받고 싶어서 비롯된 인정 욕구로 시작되었다.
직접 기획한 상품을 어떤 고객이 입는 것을 목격한 이후로는, 고객만족이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목표로 일을 했다. 내가 기획한 상품에 대한 컴플레인은 있을 수 없다는 자존심이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이상을 좆는 마음은 잃기 쉽다. 금세 현실과 타협하게 되고 '이 정도면 됐지' 같은 안일한 마음이 들때도 있다. '뭘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사소한 것들 더 챙긴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 정도만 하자는 생각이 불쑥불쑥 마음에서 솟아난다. 하지만 진정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은 외부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내부에서 비롯된다. 나만 아는 나의 찌질함, 약점, 단점을 버무린 무능함을 이겨내고 싶다는 열망으로부터.
'이제까지 한 가지 일을 깔끔하게 끝낸적이 없어. 이번에는 이 부분을 뛰어넘어보자, 중간 이상으로 가보자. 말하고 행동하고 책임져보자. 더 나은 인간이 되보자. 안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번에는 진짜 해보자.' 자기자신을 뛰어넘으려는 마음이 '일을 잘하는 싶다'는 생각으로 연결된다.
일은 '나'다. 회사가 곧 내가 될 수는 없지만, 일을 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일을 잘하고 싶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아닐까. 더 좋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산뜻한 마음,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안도감. 오늘도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