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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Yoonher Oct 27. 2022

좋아하는 일의 생김새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마음은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진로고민을 시작할 즈음,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한 번 쯤, 아니 수 차례 갈등한다. 잘하는 일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일은 대체 무엇인지 헤매면서부터 진로고민은 시작된다.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어쩌다 정한 전공으로 취업만 하면 끝나는 줄만 알았다. 귀여운 생각이었다. 20대를 넘어 30대를 지나면서 무슨 일을 하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끊이질 않았다.


매일같이 회사를 오가며 일하는 동안 '좋아하는 일'에 대한 상상을 자주 했다. '좋아하는 일'은 도대체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상형을 상상하듯, 좋아하는 일이 어딘가에 분명 있을꺼라고 생각했다.


남들이 좋다는 대기업을 다닌다고, 승진을 했다고 해도 만족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물론, 기뻤다. 익숙하지 않던 일을 잘 하게 되고 능력을 인정받고 생각하던 기획이 들어맞을 때는 의기양양해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던 적도 있었다. 그렇다고 '진짜 좋아하는 일'에 대한 갈증이 가시는 건 아니었다.

 

형체는 없지만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

일을 하는 동안, '좋아하는 일'에 대한 욕구는 잊지 않았다.  


불행이었을까 다행이었을까.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 행동을 하게 했다. 정답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찾아보자고. 불안한 마음도 여러 번, 왼쪽으로 갔다가 언젠가는 완벽히 반대방향인 오른쪽으로 갔다. 덕분에 다양한 직업의 세계, 회사와 브랜드, 직무를 경험했다. 무전기를 들고 몇 백평의 매장에서 현장을 진두지휘 했다가, 어느 날에는 뉴욕 컬렉션의 내 이름이 씌여진 자리에 앉아 패션쇼를 보기도 했다. 널 뛰는 기분으로 30대를 보내고 이곳이 종착지 인가 싶은 결정을 했을 때는 마흔이었다.


놀라운건 마흔이 되었을 때에도 진로고민은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을 할 것인가?의 질문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둔갑하여 따라다녔다. 안정을 택한 일에서는, '이 일이 과연 너 다운거야?'라는 질문을, 하고 싶은 일을 할 때는 '일 과 삶의 발란스'를 되물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 앞에서는 '돈 안되는 일 이잖아.'라는 생각이 앞섰다. 이 고민은 과연 '건물주'가 되야 끝나는 것일까. 자조섞인 절망을 하다가 문득, 일을 할 때 어떤 면을 좋아했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언제 설레였었는지. 언제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스스로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싶었는지. 타인의 기준, 유명한 브랜드, 스탁옵션 같은 껍데기를 걷어내고 일을 마주했다. 생각해보니 일이 턱 까지 차올라 힘들때도 반짝거리는 순간은 늘 있었다.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서로를 이끌어주던 장면들. 더 해보자고 서로 응원하던 마음. 별거 아닌 작은 움직임들에 울컥하는 순간 덕에 힘든 일이 보람으로 변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화려한 패션의 세계에서 마음에 남는 것은 시즌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컬렉션도, 차르르한 감촉의 실크 드레스도 아니었다. 사람, 우리들이 나눴던 대화, 주고받던 에너지들 이었다.


엉뚱하게도 커리어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우연히 좋아하는 일의 형태를 만났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에서 바이어를 하다가 이직을 하면서 세일즈를 하게 되었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는데도 매일이 무료했다. 기획은 만들어내는 것이고 세일즈는 기획한 상품의 재고를 없애야 했다. 능동적인 마음보다 수동적인 마음을 갖고 일을 바라보니 재미가 없었다.


무료함을 이기기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다. 세일즈의 업무에는 30명의 세일즈스태프를 관리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일에 집중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원하는 않는 일을 한다고 생각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좋아하는 일의 한 조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일은 커다란 돌맹이를 망치로 두들겨 나오는 원석과도 같다. 이리 저리 깨어지고 난 후 반짝이는 작은 단서를 마주하게 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처음 할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타인의 기준에 따르는 것이 한편으로는 당연했다. 사회적으로도 괜찮은 '회사'와 좋아한다고 생각한 '일'의 교집합을 찾았다.


점점 일이 익숙해지면서 찬찬히 내 속내를 들여야 보게 되는건 아닐까. '이상하다, 이정도면 괜찮은 일인데. 좋아한다고 생각한 일이 왜 더 이상 재미있지 않지?' 내 감정이 주는 신호가 힌트다. 진짜 좋아하는 일, 더 성장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설 용기를 그제서야 얻는다.


좋아하는 일은 어떻게 생겼을까? 호기심을 무기로 오늘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의 생김새'를 만들어 가고있다. 덧붙였다가 삭제했다가, 둥글고도 삐죽하게.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지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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