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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 Yoonher Oct 30. 2022

직장인, 일의 양면성

좋았다가 싫었다가

20여년 동안 일을 했다. 여러 브랜드와 회사에서, 그러니까 오랜시간 직장인으로 일을 했다. 그렇다고 '일'만 한건 아니다. 틈틈이 쉬는 시간을 챙기며 보냈다. 세 번의 갭이어도 가졌다. 결혼 하자마자 공부를 하겠다며 혼자 유학을 떠났었고 육아휴직, 10년차 쯤엔 아예 공부를 하겠다며 퇴사하고 대학원을 가기도 했다. 입학하고 6개월 후에 다시 이작하면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직장인으로서 일과 씨름하는 동안 단 한번도 '나는 일을 왜 하는지', '일은 내게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 대신, 늘 일에 미쳐있었다. 입버릇처럼 일이 좋다고도 했다. 대체 '일' 이란 무엇이었을까. 직장인으로, 남의 일을 나의 일 처럼 마주했던 긴 시간동안, 일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일을 할 때면 곧잘 활발한 상태가 되곤 했다. ENTP - INFP를 오가는 성향의 나는, 언뜻 차분해 보인다는 첫 인상과 달리 일을 할 때면 적극적이 된다. 목표를 정하면 해내야만 한다는 프레임에서 움직이다보니 자주 문제해결사가 되곤 했다. 생각한 대로 일이 성사되는 결과를 몇 차례 경험한 이후, '일'이란 무언가를 기획하고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의 짜릿함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은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다. 도구라는 말에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있다. 대학생때는 도구의 의미를 1차원적으로만 생각했다. 경영학 수업의 한 교수님이 강의시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취직 잘 했다는 기준이 뭔줄 아세요?"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이어 말씀하셨다.

"상대방이 어디다니냐고 물었을 때, 한 단어로 설명가능한 회사여야 해요."


추가로 이런저런 설명을 구차하게 늘어놓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일 = 회사네임밸류. 피상적 도구로서 일을 바라보고 취업을 준비했다. 여러 번 설명해야 하는 회사에 입사한다는 것에 대한 끔찍한 기분을 상상하면서. 나를 어떻게 더 조리있게 설명하고 포장하는 법에 대해 별도로 '공부'해 가면서. 마음 속 깊이 스스로에 대한 털끝만한 자신감을 붙든채, '일'에 당당해지는 태도를 하나씩 알아가야 했다.

 

언젠가 '일은 왜 하는가'에 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길거리에서 만난 수백명에게 '일하는 이유'를 묻고 답을 담은 영상이었다. 영상 초반에는 등장하는 분들은 '돈 벌기 위해서', '먹고 살려고'라고 답한다. 영상 중반으로 가면서 '일'하는 이유에 대한 다채로운 답변이 나온다. 나의 아이디어가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즐거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희열,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낀다는 이야기까지.


한 때, 일에 지쳐 기운이 빠진 채로 퇴근하는 날이면, 이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일'이 품고있는 의미들을 기억하고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서. 돈도 벌고 의미도 찾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꿈을 머리속으로 수차례 시뮬레이션 하면서.


일은 그 댓가로 돈을 벌 수 있다. 보통 일을 잘하게 되면 더 많은 돈이 따라온다. 직급이 올라가고 더 좋은 회사와 연봉, 큰 프로젝트를 책임지게 된다. 재밌는 일을 할 기회도 생겼다. 물론, 기회는 가만히 앉아있다고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면서 현재의 마켓흐름에서 자신을 포지셔닝할 방법을 고민했다. 아니, 매일 주어진 일을 하느라 앞만 보고 달렸다. 상반된 두 리듬이 머리속을 가득채운채 일을 했다.  


'일'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그만두자니 불안하고 계속 하자니 옳은 방향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드는 마음. 특히 직장인의 일은 그렇다. 이직과 퇴사를 하루도 빠짐없이 고민하면서도 쉽사리 손에서 '일'을 놓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일'은 좋으면서도 불안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고, 그 좋음과 불안 사이에서 방황 하다가 20년을 보냈다. 긴 시간 안에는 행복도 슬픔도, 환희와 권태도 포함된다. 오랜 연인이 헤어졌다가 결국에 다시 만나곤 하는 레파토리처럼. 다시 만나야 하는 이유도 수십 가지가 되고, 다시 만나봤자 싫어질 이유 또한 수백 가지나 된다. 그러면서도 머리속 한 켠에 맴도는 이상한 감정이 따라다닌다.  


세 번의 갭이어와 다섯 번의 이직을 한 후 몇 년 전 여름, '이제 더이상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일'이란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겉모습'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애처롭게도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유로운 마음이 들었다. 다시 시작이랄까. 직장생활 20년의 시간을 스스로 부숴버리고 흰 도화지에 다시 연필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일을 한 것 같지만 한편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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