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eersjoo Nov 04. 2023

노력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아봐."

한 친구에게 우울증을 고백했다. 

전형적인 T의 성향을 가진 그 친구는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대체 우울증이랑 우울한 거랑 뭐가 달라? 우울한 건 누구나 늘 겪을 수 있는 감정이잖아."


내가 미친년이지... 속으로 생각했다. 얘한테 머리의 이해가 아닌 마음의 공감을 바라고 고백을 하다니.  

진짜 모르겠다는 말간 눈으로 빤히 바라보며 답을 기다리는 친구에게 난 고민 끝에 이렇게 답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어도, 개그 프로를 봐도, 어딘가를 가도 나아지지 않는 것?"



생각해 보니 그랬다. 

난 어느 날부터인가 스스로 찾은 감정 소화의 방법을 써봐도 영 소화가 되지 않았다. 

뭘 해도 우울감은 나아지지 않았고, 갑자기 흐르는 눈물의 이유를 스스로 이해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별 일 아니라는 것, 별로 우울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명확히 알면서도 마음이 말을 듣지 않았다. 스스로 해결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T 성향의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그럼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아 봐. 효과도 없는 노력을 하려고 그마저도 스트레스받지 말고. 니 인생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 그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역시 T가 F에게 때리는 뒤통수는 강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래. 노력조차 하지 말아 보자. 그 정도 쉬는 시간을 가져도 돼, 이젠."


물론 난 아무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하는 게 여전히 잘 안된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하지만 곤란한 상황이 생겼을 때 이미 벌어진 상황에 당황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그 상황을 해결할 솔루션으로 빠르게 스위치를 바꾸는 그 친구의 조언은, 적어도 내 우울감을 조금이나마 감소시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차갑지만 감정보다 현실적인 아이디어로 내 감정의 소화제가 되어준 친구를 또 만날 때가 된 것 같다.  


이전 04화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