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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Nov 15. 2022

존중이라는 말

시부모님께서 우리의 반려견을 받아들이기까지

"너의 뜻을 존중해."라는 말은 어렵다. 왠지 "나의 생각은 달라"라는 뜻이 포함되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바로 뒤에 "하지만..."이 붙어야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은 말이 아닐까 싶다.


달콩이 입양 소식을 시부모님께 처음 말씀드렸던 날,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비슷한 뉘앙스로 말씀하셨었다. 리 입에서 나온 깜짝 소식에 순간 적막이 흘렀고, 두 분의 얼굴은 미세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곧이어 침착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솔직히 반대하고 싶지만, 너희들이 이미 결정한 일이라면 우리는 그 뜻을 존중하겠다고.


어머님과 아버님은 다른 일들에도 줄곧 그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우린 너희의 뜻을 존중해." 신혼 때 나는 그 말이 어려웠다. 우리가 무슨 결정을 하든 격하게 반대하시거나 밀어붙이지 않으시는 시부모님이, 우리의 뜻을 존중하신다는 그들의 말씀이. 정말일까. 정말 진심일까 자주 생각했었다.

시부모님도 강아지를 키워보신 경험이 있었다. 다만 시골에 사시는 만큼, 강아지를 집 밖에 묶어두고 키우셨다고 한다. 아버님은 강아지가 집 안에 들어와 함께 사는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우리가 달콩이를 키우는 건 존중해주셨지만, 아버님께서 강아지와 같은 공간을 쓰는 건 또 다른 이야기였다. 그래서 시댁에 갈 때마다 달콩이를 집에 혼자 두고 가거나 유치원 같은 곳에 잠시 맡겨야 했다. 두세 시간 거리를 달려서 시댁에 도착한 뒤에도 나의 마음은 늘 달콩밭(?)에 가 있었다. 시간 맞춰서 다시 돌아가야 하는데 언제 출발하나, 걱정하면서 씨씨티비를 보거나 유치원 영상을 보거나 시계를 보았다.

매번 그렇게 급히 돌아오는 게 아쉽고 죄송해서 하루는 친정집에 달콩이를 맡기고 1박으로 시댁에 갔다. 친정집에서 잘 지내주길 바랐던 달콩이는 하울링을 하고 불안 증상을 보였다. 그다음부터는 친정 근처에만 가도 자기를 두고 가버릴까 봐 불안해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 그냥 시댁에 달콩이 데려가면 안 될까? 원래 처음이 어려운 거잖아. 두 분이 강아지 자체를 안 좋아하시는 것도 아니고."
"그니깐. 엄마한테 한번 말씀드려보자."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조심스레 말을 꺼냈 어머님도 마침 고민하고 계셨던 부분이었는지 금방 승낙해주셨다.
"그러자. 너희들도 강아지 두고 올 때마다 마음 불편하잖아. 아빠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적응하셔야지 어쩌겠어? 일단 한번 데려와 봐."

처음 달콩이를 시댁에 데려갔던 날, 시부모님은 무척 어색해하시면서도 달콩이를 예뻐해 주셨다. 달콩이가 사람한테 낯을 가려서 곁을 내주지 않는데도 거리를 두고 차분히 기다려주셨다. 심지어 아버님은 삑삑이 장난감을 계속 던져주시며 달콩이가 지칠 때까지 놀아주셨다. 달콩이는 널널한 시골 땅 위에서 도시에서는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만끽했다. 똥냄새나는 시골길도 걷고, 어머님, 아버님께서 꽃 농사 지으시는 온실 안을 마음껏 뛰놀았다. 밤에는 온 가족이 밖으로 나가 밤길을 산책했다. 잘 놀고 고단해졌는지 낯선 에서도 달콩이는 도로롱 도로롱 잘 잤다.


그 뒤로는 매달 달콩이를 데리고 시댁에 가서 하루를 자고 왔다. 그동안 거의 당일치기만 하다가 이틀씩 머무니 시부모님과 더없이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달콩이도 시댁에 가는 걸 좋아하고, 어머님과 아버님도 달콩이가 오는 걸 좋아해 주셨다. 가끔 달콩이를 데리고 다 같이 수목원이나 공원 같은 곳에 놀러 가기도 했다. 달콩이와 시댁에 갈 때마다 여행을 가는 것처럼 즐거웠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달콩이를 좋아해 주심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눈치를 볼 때도 사실 많았다. 달콩이를 입양한 것도, 시댁에 데리고 간 것도 결국 우리의 고집대로 한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달콩이를 데리고 시댁에 간 날에는 외식도 못하고 꼼짝없이 모든 끼니를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원래도 외식을 거의 안 하긴 했었지만 그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어머님과 아버님 앞에서 달콩이를 지나치게 예뻐하는 것도 괜히 민망했다. 둥가둥가 아구아구 내 똥강아지 그래쪄 그래쪄 하고 싶은 걸 꾹 참곤 했다. 아이한테 주어야 할 애정을 강아지한테 다 쏟는다고 생각하실까 봐. 옆 집 할머니께서는 아이를 안고 다녀야지 그 큰 개를 안고 다니고 있으면 어쩌냐고 핀잔을 주시기도 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비슷한 내용으로 한 마디씩 하시는 분들이 꼭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머님도 뭐라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해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무안함과 죄송한 마음을 가득 안고 눈동자만 바닥을 향해 굴리곤 했다. 시부모님의 자랑이 되어야 하는데 괜히 시부모님을 부끄럽게 만드는 며느리가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느낄 수 있었다.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달콩이를 진짜 가족으로 여겨주신다는 것을. 지나가던 누군가 "아이는 안 낳고 웬 강아지냐?" 하는 핀잔을 던지실 때, 언제부턴가 어머님은 그저 웃어넘기신다. 속이 상하실 법도 한데 우리를 대신해서 설명까지 해주신다. 달콩이는 유기견이라고. 입양이 안되었으면 안락사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시골 분들이나 어르신들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만한 표현을 쓰시며 천연덕스럽게, 허허 웃으며 이야기하신다. 그렇게 해주실 때마다 나는 가슴 짠하게 감사하다. 그저 달콩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들의 마음에 자리를 내어주신 게 아니란 걸 안다. 집 안을 뛰어다니는 강아지가 여전히 낯설지만, 달콩이 자리가 아이로 채워졌으면 하는 마음도 분명 있으실 테지만, 아들 내외가 미 결정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고 그저 받아들이신 것이다. 우리의 소중한 식구를 당신들의 식구로 또한 받아들이신 것이다.


한 번은 시댁 가기 며칠 전, 어머님께서 오랜만에 외식 가자며 링크를 하나 보내셨다. '외식이면 달콩이 두고 가야겠네?'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링크를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애견 동반이 가능한 고깃집이었다. 진짜 달콩이를 생각해서 찾아주신 걸까? 혹시 우연은 아니었을까? 설마 설마 했는데, 어머님과 통화를 해보니 정말이었다. 그 고깃집이 꽤 괜찮은 곳인데, 마침 강아지도 야외에 두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해서 가자고 해보셨다고. 나는 휴대폰을 들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뭉클해서. 감사해서. 어떻게 그렇게 달콩이를 받아들여주실 수 있을까. 더 나아가서 먼저 챙겨주실 수 있을까.


어머님과 아버님께 달콩이는 충분히 불편한 존재일 수 있다. 아들과 며느리만 있으면 더 자유로울 수 있는데, 달콩이와 함께하면 챙겨야 할 것도, 주변 눈치 볼 도, 활동에 제받는 것도 많다. 게다가 어머님과 아버님 세대의 입장과 문화, 또 살아온 환경에서 강아지는 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들이 "달콩이 때문에 이도 못하겠네."하고 불평하시는 걸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달콩이가 여기 못 가니까 이쪽으로 갈까?" 다른 방향을 찾아보고 제시해주신다. 그 과정이 쉽지 않을 수는 있어도, 달콩이의 존재를 탓하거나 눈치 주시지 않는다. 그저 달콩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신다.


어른이 다른 환경,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생각해본다. 물론 '존중한다'는 말이 '무조건 이해한다'는 말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더라도 결국 타인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다만, 다름을 한 발자국 뒤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 그렇게 할 줄 아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나는 과연 타인을, 다른 세대를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강아지 맨 손으로 만지지 못하셨다던 어머님은 이제 달콩이의 턱을 긁어주시고, 달콩이가 어머님의 손을 핥아도 간지럽다며 아이처럼 꺄르르 웃으신다. 강아지가 집 안에 있는 걸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님은 이제 콩이가 집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계속 살피신다. 달콩이가 심심해 보이면 장난감을 던져주시고, 식사하실 때마다 구석에 웅크리고 잠자는 달콩이를 칭찬하신다. "달콩이는 사람이 밥 먹을 때 안 달려들어서 좋아. 어쩜 그렇게 얌전하니?" 달콩이가 집 지킨다고 짖어도, 가끔 미운 모습을 보여도, 달콩이가 왔다 가면 털 바다가 되는 바닥을 보셔도, 달콩이가 이불 위로 올라가도 그들은 눈 감아주신다.


"너희의 뜻을 존중해."

어머님과 아버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존중'에는 '우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담겨있다. 달콩이가 진짜 가족의 구성원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때마다 나는 그 마음을 읽는다. 당신들이 쓰시는 '존중'이라는 표현에 담긴 진심도 이제는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과 다를지라도, 열린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해보려는 어른. 시부모님을 보면서 나도 그런 어른이 되 싶다고 생각한다.




어머님과 달콩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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