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정 Oct 23. 2023

네 식구 여행, 첫 번째

#가족여행 #샌타크루즈

본식 다음 날 열린 브런치를 마지막으로 오빠의 결혼식이 끝났다.


한국에서부터 11시간의 비행, 샌프란시스코 도착, 식장 근처 숙소로 이동, 짬 내서 나온 오빠와 저녁 식사, 그다음 날부터 장장 3일에 걸쳐 진행된 리허설 디너와 결혼식과 브런치. 그렇게 마지막 일정이 끝난 뒤에 오빠, 새언니, 새로운 가족들과 나중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분명 길고 긴 축제였는데, 헤어지는 순간에는 앞선 3일이 마냥 짧게 느껴졌다.
부모님은 미국에 이틀만 더 머물다가 먼저 귀국하시기로 했고, 나와 남편은 좀 더 남아서 여행을 즐기다 돌아가기로 했다. 큰일을 치렀으니 일단 브런치가 끝난 날엔 우리 모두 숙소에서 푹 쉬었다. 그리고 남은 다음날 하루만이 우리 넷에게 온전히 주어진 가족 여행 시간이었다.

오빠의 결혼식은 숲이 무성한 Felton이라는 지역에서 열렸는데, 근처에 유명한 해변 관광지인 샌타크루즈가 있었다. 우린 오전 느지막이 숙소에서 나와 차를 타고 샌타크루즈 거리로 향했다. 본격적으로 거리를 구경하기 전, 점심을 먹으러 FIVE GUYS부터 갔다. 좋아하는 음식 1위를 물으면 주저 없이 '햄버거'라고 답하는 나와 남편인데 미국 와서 햄버거 한 번을 못 먹었으니, 보증된 맛집인 FIVE GUYS가 근처에 있는 이상 무조건 먹어주어야만 했다.

계산대 앞에서 한껏 부푼 마음으로 메뉴를 구경한 뒤 개구진 표정의 할아버지께 햄버거를 주문했다. 음료는 원래 탄산음료만 주문하려고 했는데, 할아버지 리듬을 담아 “여기 셰이크는, (자신의 불룩한 배를 두 손으로 통통 두드리며) 진짜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끝내 줘.”라고 이야기하시는 바람에 솔티드 캐러멜 셰이크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년 만에 먹은 FIVE GUYS는 여전히 맛있었고, 박스 속에 듬뿍 쌓여 있어 무료로 퍼먹을 수 있는 땅콩은 짭짤하지만 까먹는 재미가 있었으며,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대비된 인테리어 세련되면서도 마치 게임 속에 들어와 있듯 귀여웠다.


FIVE GUYS


햄버거를 허겁지겁 맛있게 먹어 치운 뒤 우리 네 식구는 샌타크루즈의 거리를 거닐며 여유를 즐겼다. “이게 얼마 만의 여유야?” 엄마는 소녀처럼 웃었다. 골동품 가게, 빈티지 옷 가게, 주방용품 가게를 구경하며 소소하게 앞치마나 행주 같은 것들을 샀다.


거리를 한참 걸은 뒤엔 해변으로 향했다. 해변 바로 앞에는 Boardwalk라는 놀이공원이 바닷가를 따라 길쭈욱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미장센 영화에 나올 법한 알록달록 놀이기구들이 예뻤다. 우리는 모래사장의 북적이는 인파 사이에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다.

엄마와 아빠의 얼굴엔 고단함이 묻어있었다. 걷는 내내 괜찮으신지 여쭤보았고 그때마다 괜찮다고 답하셨지만 갈수록 무거워지는 두 분의 발걸음은 숨길 수 없었다. 그때 실감했다. 두 분은 여행자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님을. 이제 막 아들을 장가보낸 부모라는 것을. 불과 어제까지도 엄마와 아빠는 혼주였다.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먼 나라까지 날아와, 시차 적응도 제대로 하기 전에 미국에서의 모든 일정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놀이기구를 타는 사람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꺄악 꺄악 지르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활기가 넘치는 곳이었다. 그 가운데 조용히 앉아 뜨거운 햇살과 시원한 공기를 맞으며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결혼식의 여운, 그 아름다운 장면들, 행복함, 감사함, 후련함, 지나온 그리움, 그리고 지속될 그리움... 아마도.





샌타크루즈 비치
골동품 가게에서 만난 책
매거진의 이전글 오빠 결혼식 비하인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