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구부터 흥이 난다 흥이나!
드디어 그날이 왔다. 장 보러 가는 날. 마트처럼 내가 가고 싶다고 아무 날이나 갈 수 없는 곳. 매월 뒷자리가 2일, 7일인 날에만 열리는 김포 5일장으로. 집에서 출발했는데 옆자리에 있는 장바구니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하나 가지고 될까?’
‘입구부터 흥이 난다 흥이나.’ 장터 전체의 분위기를 돋우는 뽕짝이 울려 퍼졌다. 안으로 들어선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한눈에 담기 힘든 온갖 먹거리, 볼거리가 가득했다. 왼쪽부터 갈까 오른쪽부터 갈까, 마음이 급했다.
“탈출한다!”
낙지가 대야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다. 저렇게 기운이 좋으니 보양식이라고 하는 건가? 수산물 파는 곳에서는 싱싱한 낙지, 문어, 전복, 팔딱이는 꽃게를 팔고 있었다. 오징어, 명태, 갈치, 삼치, 가자미, 고등어, 꼬막, 굴. 바다에서 잡히는 것 중 없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종아리만큼 굵은 은갈치는 옆집 가족까지 함께 먹어도 될 만큼 큼직했다.
고소한 냄새가 났다. 즉석에서 수제 어묵을 튀기고 있었다. 깻잎 위에 다진 생선과 채소를 넣은 반죽을 올려 돌돌돌 말고 기름에 퐁당. 어묵이 기름 안에서 바글바글 끓는 소리와 맛있는 냄새가 사람들의 발길을 붙든다. 두툼하고, 탱탱하고, 기름이 반지르르 도는 탐스러운 비주얼. 김 폴폴~ 나는 뜨끈뜨끈한 어묵을 나무젓가락 쿡 찍어서 건네주셨다. ‘오~ 뜨거워 뜨거워’ 하면서도 입을 멈출 수 없는 맛이었다.
동태를 파는 사장님은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생선을 손질해주셨다. 통나무 그루터기를 통째로 자른 나무 도마 위에서 칼로 검도하듯 절도 있게 생선을 내려치셨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단호하고 노련한지 손이 닿기도 전에 동태가 잘려 나가는 것 같았다.
“어디 아팠던 건 아니지?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그러엄~바빠서 못 왔지~. 보고 싶었어~”
사장님과 생선을 기다리는 손님의 대화가 정겨웠다.
한 트럭 옆에 의자 여러 개가 일렬로 놓여있었다. 앉아있고, 서있는 사람들로 주변이 빼곡했다. 수많은 눈이 한 곳에 집중돼 있었다.
“갑니다. 하나 둘 셋”
“뻥ㅡ”
연기가 자욱해졌다. 대포같이 생긴 기계가 김 나는 튀밥을 쏟아냈다. 짧은 파마머리를 하신 아주머니가 나가서 튀밥이 든 봉지를 받아오셨다.
“먹어봐요.”
옆에 서서 구경하다 얼떨결에 몇 주먹 얹어 먹었다. 따듯하고, 담백하고, 구수했다. 나는 주먹이 크다. 잘 먹는 모습을 보고 더 주려 하시길래 “이렇게 다 주면 뭐 가져가시게요~” 맛있게 잘 먹었다 인사드리고 발걸음을 돌렸다.
튀밥으로 시동을 걸었으니 메인 요리를 먹으러 갈 차례였다. 포장마차촌으로 갔다. 석쇠에서 노릇노릇 굽고 있는 전어, 양념을 맛깔스럽게 바른 등갈비, 바다 냄새 나는 삶은 소라가 ‘어서 오세요, 들어오세요.’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잔치국수, 해물파전, 막걸리를 시켰다. 사장님은 주문과 동시에 해물과 파를 아낌없이 넣고 달군 프라이팬 위에 지글지글 전을 구웠다.
완성된 파전을 들고 사장님이 테이블 쪽으로 올 때마다 손님들은 ‘우리 건가?’ 목을 빼고 쳐다봤다. 기다리는 몇 분이 억겁의 세월같이 느껴졌다. 시원한 국물 한모금 마시고 잔치국수 면발을 훌훌 넘겼다. 젓가락으로 파전 쭉쭉 찢어서 파전 한 입, 막걸리 한 모금 마셨다. 함께 먹으니 막걸리가 꿀꺽꿀꺽 넘어갔다. 배가 하나라는 게 아쉬웠다.
장터엔 없는 거 빼곤 다 있었다. 과일, 채소, 족발, 떡볶이, 튀김, 치킨. 직접 만든 두부, 청국장, 묵. 가마솥도 있고 시골 생활의 필수품. 삽, 호미, 빗자루도 팔았다. 쇼핑 리스트엔 없지만 시골 정취가 제대로 느껴지는 밥상과 쟁반도 샀다. 은색 바탕에 꽃이 그려진 알루미늄 소재였다.
‘여길 그냥 지나갈 수는 없을걸?!’ 나를 시험에 들게 하는 데가 있었다. 옷 파는 곳이었다. 밭에서 일할 때 입기 좋은 몸빼 바지, 조끼, 예쁜 잠옷. 다 나한테 필요한 것들만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가격까지 착했다. 맙소사!
“어머, 자기야. 이건 돈을 쓰는 게 아니고 버는 거야.”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옷을 골랐다.
잔뜩 사서 돈을 잔뜩 벌었다. 계산하는데 사장님이 한마디 하셨다.
“30년은 입어도 되겠네.”
역시 장바구니 하나로는 안됐다. 바구니는 어깨에 메고, 까만 봉다리 주렁주렁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돈을 썼지만, 부자 된 것 같은 신기한 마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