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생님

by 고다혜

도자기 공방을 열고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생겼다. 내가 흙 다루는 방법과 도자기 빚는 기술을 가르쳐드리기 때문이다.


원데이클래스는 한 두시간 동안 도자기 만드는 체험을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손끝 감각에 집중해 흙과 보내는 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도와드린다. 하루 경험하러 왔다가 재밌었다고 두 번, 세 번 찾아온 분들도 있었다. 정규반 수강생은 어떻게 중심 잡아서 빚고, 깎고, 장식해 기물을 만드는지, 흙덩어리가 작품이 되기까지 모든 과정을 배운다. 빚다가 무너지고, 깎다가 컵에 구멍이 나도 '이 시간이 성장하는 연료가 돼줄 거예요~. 지난주보다 중심 잡는 건 훨씬 좋아지셨어요!' 격려해 드린다. 도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와주신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나에게 단순한 '일' 이상의 의미였다. 그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내가 알고 있는 최대한 많은 것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도자기 체험 하러 오신 분들의 반짝이는 눈빛을 보면 내가 처음 도자기 시작할 때의 마음이 생각났다. 기대와 설렘이 선율이 되어 공간을 채웠다.


“제가 똥 손인데 할 수 있을까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괜찮을까요?”


걱정과 함께 시작된 작업. 손 모양대로 변해가는 흙 형태를 보며 감탄을 연발했다.


"어머머머 모양이 바뀌네! 내 거 봐봐. 자기도 잘했네~ 자기 것도 너무 예쁘다!"


예쁘다고 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어여쁜지 모른다. 순도 100%의 순수한 기쁨을 지켜보며 나도 깨끗한 마음을 얻는다.



아이들은 활발하고 장난기 있는 모습으로 왔다가도 물레 앞에 앉는 순간 눈빛이 변한다. 처음에는 흙의 촉감을 신기해한다. '미끌미끌해요~‘ ’지렁이 같아요.' 아이마다 표현 방법도 다르다. 본격적인 만들기가 시작되면 설명해 주는 대로 따라 하며 순식간에 흙과 함께 하는 시간에 빠져든다. 흙기둥을 태워버릴 것처럼 눈빛이 빛난다. ‘공방을 들어올 때와 같은 아이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게 놀라운 집중력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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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반 수강생은 공방 근처에서 오시는 분도 있지만 1시간 이상 걸려 오는 분도 있다. 강화에서 오셨던 수강생이 있다. 내 도자기 스타일이 좋다고 먼 거리를 마다 않고 와주셨다.


"수제자로 받아주십시오."


상담 와서 하셨던 첫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활활 타오르는 열정이 나에게도 옮겨붙는 것 같았다. '무엇이든 도와드려야지!' 용기와 적극적인 마음이 내게도 큰 자극이 되었다.


정원을 예쁘게 가꾸는 수강생분은 수업 때마다 꽃을 가져다주셨다.


"화병에 꽂으면 예쁠 것 같아서요."


'델피늄, 바니테일, 램스이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특별하고 귀한 아이들이었다. 꽃을 키워본 적은 없지만 마당 관리를 해봐서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다. 돌보는 주인의 고된 땀방울이 모여서 아름다운 꽃이 된다는 걸. 아침저녁으로 가서 부지런히 풀을 뽑아야 하고 30도를 넘나드는 여름에도 놓치면 안 되는 일들은 꼭 해야 한다는 것을. 비가 퍼붓는 날이면 고개가 꺾어지는 꽃들을 보며 마음 졸이셨을 거라는 것도. 그렇게 가꾼 꽃을 내게 주신 거였다. 정성을 다해 생명을 가꾸는 자세와 부지런함을 배웠다.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배웠다.



걸어서 5분 거리. 제일 가까이에서 오는 수강생이 있다. 고2 때 와서 올해 3학년이 된 'Y'이다. 물레도 잘하고 손작업도 잘한다. 그림도 잘 그린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Y'는 '지구인 중 1등'으로 섬세하다. 감성도, 작업하는 스타일도 그렇다. 집 주변에 날아드는 새를 관찰해서 그리는 걸 좋아한다. 대상에 대한 애정과 집중력 있게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스케치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이미 그림을 그려 왔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붓 끝을 세워 아주 세밀하게 새와 풀과 꽃, 자연을 묘사한다. 선반에서 건조 중인 'Y'의 작품을 보고 다른 수강생들은 매번 놀란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따라 할 수 없는 그녀의 영역이다. 배우고 싶지만 배울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끈기와 성실함이 대단한 수강생분도 계시다. 수업 3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아서 ‘집에 가서 쓰러지시는 거 아닐까?’ 걱정 될 정도다. 열심히 하는 만큼 실력도 꾸준히 늘었다. '성실함 대상' 상패를 드리고 싶다. 물레 작업이 영상으로 볼 때는 쉬워 보이는데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완벽하게 숙달되기 전까지는 흙기둥을 흔들리지 않게 중심 잡기 쉽지 않고, 원하는 대로 모양을 만들기도 어렵다. 쓰기 좋은 도자기가 되려면 굽도 잘 깎아야 하는데 이것도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며 훈련해야 한다. 그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동안 포기할 법도 한데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네요. 마음대로 안 돼서 약이 오르는데 잘하고 싶어요."


라고 작업에 더 집중하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하는 마음이 든다. 정도 많은 분이다. 누룽지를 만들었다고 가져다주시고 달고 맛있는 과일도 나눠주신다. 무릎까지 오는 양말이 따듯하길래 내 것까지 샀다고 선물해 주셔서 겨우내 마르고 닳도록 잘 신었다. 끈기와 성실함, 나누는 마음까지. 수업 때마다 느낌표를 안겨주는 분이다.


나를 찾아주는 분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정작 배우고 있는 건 나였다. 나의 선생님. 그분들을 마주하며 매일 배우고 자란다.



이전 20화매일 열어주세요~ 김포 5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