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다

by 고다혜

친구들이 놀러 오는 날. 시골까지 행차하시는 귀한 손님들이니 나에게는 왕과 같다. 평소에 맛집에서 멋진 음식을 많이 먹을 테니 오늘은 이곳 스타일을 선보여 줘야겠다.


뒷마당에 두고 일 년 동안 잘 말려 놓았던 장작을 한 아름 가져왔다. 도끼로 쪼개느라 고생했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했다. 화덕 안에 장작을 엇갈리게 밀어 넣고 그 사이에 착화제를 두고 불을 붙였다.


“전원주택에 살면 밖에서 고기 자주 구워 먹겠어요!”


주택에 산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에게 제일 많이 하는 얘기다. 살아보니 그렇지 않았다. 이사 와서 몇 번 해보니 불 피우는 게 은근히 귀찮은 일이었다. 뒤처리도 번거로워 우리 둘만을 위해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야외에서 구워 먹는 건 특별한 일. 손님 오시는 날이 반가운 이유이기도 했다. 같은 분이 여러 번 오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왕을 위한 메뉴는 다양하게 준비한다. 가마솥에 불을 때서 백숙을 할 때도 있고 수육을 삶기도 한다. 숯불에 고기를 간접구이 해서 바비큐로 먹기도 하고 대하 철에는 옆 마을에 있는 양식장에서 새우를 사다가 구워 먹는다. 특식으로 새우 라면을 끓이면 ‘어우~ 국물이 완전 새우탕이다. 속이 확 풀리네~’ 면보다 국물이 더 인기다.


장작이 타오르고 불이 알맞게 사그라든 후 화덕에 솥뚜껑을 올렸다. 삼겹살은 두께가 두툼한 걸로 준비했다. 고기는 자고로 씹었을 때 육즙이 입안에 가득 차고 쫄깃쫄깃 식감이 좋아야 한다. 솥뚜껑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딱 좋은 온도다. 삼겹살을 올리자 치이이익ㅡ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고기는 남편에게 맡겨두고 친구들과 텃밭 채소 가게에 가서 상추, 깻잎을 땄다. 두 개 밖에 안 달린 애플수박도 몽땅 따왔다. 마당 한편에 있는 항아리를 닦아 얼음을 붓고 맥주와 음료수를 넣었다. 집안으로 들어가서 밥과 직접 담근 김치, 고추장아찌, 마늘장아찌를 쟁반에 담아 가지고 나왔다.


“어머머~ 이거 오봉 아냐~ 완전 레트로네!”

5일장에서 산 꽃무늬 알루미늄 쟁반이 인기였다.


‘이 집 오늘 고기 먹는다고 마을에 소문나겠다’ 굽는 냄새가 기가 막혔다. 지글지글 끓는 기름 위에 자르지 않은 신 김치를 통째로 올렸다. 여기저기 사진 찍느라 바빴다. 누구는 가마솥 위 삼겹살을 누구는 화덕 안의 불을.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창고와 울타리에 걸쳐 조명을 늘어뜨리고 스피커를 꺼내 음악을 틀었다. 해가 옆 산에 반쯤 걸린 시간이었다.


“고마워! 잘 먹을게~.”

“아프지 말자 다들”

“부자 됩시다!”

“와줘서 고마워~~”


각자 하고 싶은 말로 건배 인사를 건넸다. 항아리 냉장고는 늘 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맥주의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이 입맛을 돋워주었다. 상추 한 장, 깻잎 한 장 얹어서 고기 두 점을 올렸다.

“어, 고기 두 점 유죄”


‘남편은 남의 편이 맞구나’ 뺏기기 전에 재빨리 쌈을 싸서 입안으로 넣었다. 와…! 감탄이 나왔다. 솥뚜껑과 삼겹살이 만들어 낸 맛의 조율이 환상적이었다. 씹을수록 입안에서 사라지는 게 아까울 지경이었다.


“이야~진짜 맛있네!!!”


그 한마디 이후 친구들은 먹느라 말이 없었다. 제일 좋은 칭찬을 받은 것 같았다. 반질반질하게 볶은 김치를 고기에 둘둘 말아서 먹는 친구, 고기 한 점 고추장아찌 한 점 먹는 친구. 와줘서 고맙고 잘 먹어줘서 고마웠다.

배가 불러질 때쯤 솥뚜껑에 고기와 김치를 썰어 넣고 밥과 함께 볶았다. 밥 배는 따로 있으니까. 금방 눌러 붙어 누룽지가 되었다. 화덕에 숟가락을 들고 빙 둘러서서 각자 그릇에 담아 먹었다. ‘이런 경험을 어디서 해보겠어!’ 학교 다니던 때처럼 소란스럽게 웃으며 친구들이 즐거워했다. 배부르다던 사람들이 어디 갔는지 순식간에 밥이 사라졌다. 후식으로 텃밭에서 딴 애플수박을 잘랐다. 내가 수박에게 뭘 부족하게 해준 건지 과즙은 뚝뚝 떨어지는데 무(無) 맛이었다.


“너 시골에서 아직 많이 배워야겠다!”

친구가 정곡을 찔렀다.



이름 모를 밤 새 소리를 배경음 삼아 서로의 고민을 나눴다. ‘여긴 별이 진짜 많다’ 하늘을 보며 놀라는 친구에게는 고민의 갯수도 많았다. 친구들은 경쟁이 치열한 서울의 삶이 고단하다고 말했다. 나는 버스 노선도 하나 둘 사라지고 점점 소외되는 지역이 될 이곳에 대한 걱정을 얘기했다.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하는 성격인 나는 앞뒤 재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쫓아 시골에 왔다. 이제 와 한 번씩, 지금 하는 고민이 친구들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낀다. 학창 시절에는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걱정을 했었는데….


먼 곳까지 찾아와주고, 공감하기 힘들 수도 있는 시골 얘기에 귀 기울여주는 고마운 사람들. 늘 반갑고 귀해서 왕처럼 모시고 싶은 사람들. 나에게 손님은 왕이다.


(*지난 계절을 추억하며 쓴 글입니다^^)

이전 22화가난한 추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