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서는 ‘배달의 민족’으로 배달 할 수 있는 음식이 치킨과 짜장면 정도밖에 없다. 시골이라 그렇다. 도시에 살 때는 배달 음식 없이 못 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엔 이곳만의 사는 방법이 있었다.
초봄이 되면 마을 분들은 산에 들에 반찬이 난다며 남편과 나를 데리고 다니셨다. 냉이와 달래, 나물이 있는 곳을 알려주셨다. 내가 보기엔 냉이도 풀, 달래도 그냥 풀이었다. 같이 휙휙 걸어 다녀도 그분들은 더듬이로 감지하듯 기가 막히게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 내셨다. 한 번은 남편과 둘이서만 간 적이 있었는데 우리가 캔 건 죄다 냉이처럼 생긴 냉이가 아닌 것이었다. 생김새도 조금 다르고 향도 나지 않았을 텐데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도 배울 거 다 배웠다며.” 신났었다.
직접 캔 냉이로 끓인 된장국. 구수한 된장과 냉이의 향에서 느껴지는 흙의 정기. 그 맛은 두말하면 입술 부르튼다. 서로 만나기만을 고대하던 견우와 직녀처럼 된장과 냉이는 냉이철이 오기만을 기다린 것 같았다. 된장국으로 하나가 된 그들은 완벽한 궁합을 자랑했다.
꺾인 잎 하나 없는, 갓 캔 달래는 온몸에 수분이 꽉 차있어 잘 가꾼 화초처럼 아름다웠다. 칼로 쫑쫑 다져 간장, 고춧가루 조금 넣고 달래 간장을 만들었다. 짭조름한 간만 도울 뿐, 간장 냄새는 달래가 싹 흡수해 달래의 향긋함만 남았다. 싱싱한 달래의 아삭한 식감, 마지막에 혀끝을 살짝 치는 고춧가루의 매콤함. 달래 간장 하나로도 밥 두 그릇은 거뜬히 먹을 수 있었다.
음식 솜씨가 장금이 수준인 동네 언니는 “쟤들이 뭘 먹고 사나?” 걱정 됐는지 반찬을 자주 해주셨다. 밭에서 직접 키워서 무친 나물일 때도 있었고, 카레나 감자볶음, 멸치볶음, 전을 부쳐서 주실 때도 있었다. 겨울에는 봄, 여름, 가을 동안 키워서 뜯어서 말려놨던 나물들을 볶아서 주셨다. 반찬을 밥상에 올려놓고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그 안에는 몇 번의 계절과 언니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어느 날은 친하게 지내는 옆 마을 숙모가 전화를 하셨다.
“다혜야 집에 있어? 앞으로 나와 볼래?”
숙모가 손에 든 하얀 봉지 안에는 빛깔 좋은 붉은 생고기가 담겨있었다.
“고기 몇 팩 샀어. 신랑 퇴근하면 같이 구워 먹어.”
고기 좋아하는 우리 부부를 위해 숙모는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사다 주곤 하셨다. 그 고기 맛을 어찌 잊으랴. 입으로 먹는 게 아니고 마음으로 먹는 그 맛을.
배달의 민족이 안되는 동네에는 정이 가득한 따듯한 민족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