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사람들의 영어공부

by 고다혜

평생 영어와 숨바꼭질하듯 살았다. 영어라는 녀석이 어찌나 꽁꽁 잘 숨었는지 머리카락도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감이 잡히는 듯 해 한발 다가서면 다음날 또 한 발 멀어졌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막연히 '영어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공부했지만 실력은 늘 제자리였다. 나이가 들수록 단어를 외우면 기억나는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았다. 어쩌다 해외여행을 다녀오게 되면 '이번엔 진짜 열심히 공부해 봐야지.' 의지가 화르르 불타올랐지만 그때뿐이었다. 혼자 꾸준히 하기가 쉽지 않았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평소 자기 계발을 열심히 하는 동네 친한 언니에게 물었다.


"늘보 언니, 같이 영어 공부하실래요?"

"좋지! 내가 사람 모아볼게!"


언니의 번개같은 추진력 덕분에 멤버는 금세 모였다. 조용하지만 성실하고 단단하게 본인의 몫을 해내는 ‘몬드’님. 다독가이면서 배움에 늘 호기심이 많은 ‘봄길 지기’님. 정미소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인데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 때문에 외지에서도 찾아오는 곳, ‘아워올드밀’ 사장님. 조리 자격증을 여덟 개나 가지고 있고 히말라야와 산티아고를 혼자 다녀올 만큼 모험을 즐기는 다재다능한 '문수산 다람쥐' 정희. 30년 넘게 공부했으나 여전히 영어를 못하는 나. 그리고 마지막 멤버는 내 지인이었다. 도자기 공방에 놀러 왔다가 언니와 내 얘기를 듣고 “그럼 제가 매주 한 번씩 과제 내고 채점해 드릴게요."라며 자청한 전직 영어 과외 선생님, 그림 그리는 ‘소이컬러’ 작가님.



판이 커졌다. 멤버 중에는 영국에서 살다 오신 분도 있었다. 나는…나는…영어를 못하는데…그냥 누군가와 함께 영어 공부를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여기 내가 함께 해도 되나 싶었다. '몬드'님만 처음 뵙는 거였고 다 친하게 왕래하며 지내는 사이였다. 시간 될 때 만나서 솔직한 마음을 건넸다.


"저… 제가 영어를 못해서 너무 민폐가 될 것 같은데요..?"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같은 말이 울렸다.


"괜찮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있나요~ 같이 하면 재미있을 거예요!"


함께 하자 손 내밀었으나 막상 시작하려 하니 쭈구리가 되어 움츠렸었다. 손 꽉 잡고 끌어준 사람이 있다는 게 든든하고 고마웠다. '잘 따라가 보자.' 그 손 꼭 붙들고 같이 가봐야지.


다들 일 때문에 바쁜데도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함께 정한 교재로 공부하고 일주일에 세 번 밴드에서 인증했다. 매주 토요일은 단체 카톡 방에서 시험 보는 날이었다. 시험이라 생각하니 오랜만에 마음이 쫀쫀했다. 인생을 좌우하는 시험도 아닌데 잘 보고 싶었다. 공부를 제대로 못 한 주에는 일주일이 금방 돌아왔다. 시험 문제를 내고 채점 한다는 게 공이 많이 들어갈 텐데 '재능을 나눌 수 있어 기쁘다.'고 해주는 작가님이었다. 그 고마움 덕분에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때때로 시간 되는 사람들은 오프라인으로 만나서 '영어 공부'를 하기도 했다. 모일 장소는 많았다. 정미소 카페가 영업이 끝난 후에 모여서 '노트를 펼치지'…않고 시킨 '치킨을 펼쳐서' 단합 대회를 했다.


"Enjoy!"


영어 한 조각도 치킨에 곁들여서.


언니네서 쪽파를 뽑아서 전을 해서 먹고, 갓 캔 감자를 쪄 먹기도 했다. 매번 '영어 공부'를 하러 모인 거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식(食)'을 먼저 채웠는데 그러고 나니 '금강산'의 존재를 잊게 됐다. 잘 먹어야 공부도 잘한다고 일단 먹었는데 너무 잘 먹었더니 공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영어 말소리가 채워야 할 시간을 우리 웃음소리가 채웠다.



촌사람들이 모여서 영어 공부를 했다. 실력이 늘었는지는 모르겠다. 확실히 추억은 늘었다. 영어 학원도 없는 곳에서, 주민도 많지 않은 시골에서 마음 맞는 사람이 모여 무언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의 영어 친구들에게 마음 간지러워서 못했던 이야기를 이 글을 통해 남긴다.


Thank you guys.

I love you so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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